두 아이가 차례로 수족구병에 걸렸다
추석 연휴를 눈앞에 두고 갑자기 둘째 아이가 열이 올랐다. 겨드랑이와 등에 두드러기 같은 물집도 올라와 병원에 가보니 '수족구병(手足口病, hand foot and mouth disease)'에 감염되었다 한다. 수족구는 이름처럼 손과 발과 입을 비롯한 온몸에 수포가 생기는 전염성 질병으로, 아이들은 고열에도 많이 시달린다. 초등학생 미만인 아이들 사이에서 아주 쉽게 감염되는 병이라 수족구에 걸리면 완치가 될 때까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시설에 등원할 수 없다.
둘째는 처음 하루 반 정도를 꼬박 고열을 앓고 꽤 괜찮은 컨디션을 유지했다. 그러는 사이 친정집에 가기로 약속한 날짜가 다가왔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 가족은 긴 여정에 올랐다. 두 아이 모두 지금까지 한 번도 수족구에 걸려본 적이 없어서 이 질병에 대한 심각성을 몰랐고, 신도시인 친정집 근처에는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이 순천보다 많으니 안전하고, 그러니 가서 잘 쉬기만 하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돌볼 어른들이 늘어난다는 점은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우리 부부에게 마음이 놓이는 구석이기도 했다.
수족구 증세가 심하면 음식을 아예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해서 수액을 맞아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던데, 둘째는 음식도 곧잘 먹고 잘 놀았다. 잘 노는 아이들 모습에 즐거워하는 부모님 모습을 보니 '힘들어도 오길 잘했다.' 싶었다.
그런데 둘째의 수족구가 첫째 아이에게 옮아 첫째도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다들 자기 성격따라 육아를 할 텐데, 내 경우 세부 계획이나 대책이 없으면서도 상황을 쉽게 낙관할 때가 많은 INFP 성향이 육아에도 반영되곤 했다. 그래서 쉽게 생각했다. 둘째가 병원에서 처방받은 바르는 약이 있고 해열제도 충분하니 첫째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먼저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아이의 수족구 또한 먼저 경험해본 친정 오빠가 우리 아이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과 조카는 이번 추석에는 서로 만나지 못하게 조치했다.) 둘째가 병원에서 받아온 약은 해열제와 항히스타민제 그리고 바르는 연고가 전부였는데, 열을 내리고 가려움을 완화시켜주는 약이었다. 그런데 오빠 말에 의하면 수족구의 경우 그 자체보다도 뇌수막염 등으로 진행될 수 있는 합병증이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항바이러스제를 꼭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잔뜩 겁을 먹어 발을 동동 굴렀다. 이미 상태가 많이 호전된 둘째는 병원에 데려갈 생각도 못하고, 부랴부랴 열이 끓는 첫째 아이만 데리고 연휴 첫날 문을 연 소아과를 찾아갔다.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오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게다가 아이들은 해열제를 먹고 열만 내리면 잘 놀았다. 간식도 밥도 곧잘 먹었다. 순천으로 돌아오는 날에도 꽤 괜찮은 정도로 컨디션을 유지한 탓에 나는 또다시 쉽게 상황을 낙관해버렸다.
그런데 돌아온 뒤부터 마음고생이 시작됐다. 먼저 아팠던 둘째는 수포가 반 이상 딱지가 져서 아물고 더 이상 열도 오르지 않기에 충분히 치유된 것 같아서 한 번 더 병원에 데려가지는 않았는데, 수포와 모기 물린 상처가 많았던 한쪽 다리가 붓기 시작했다.(둘째 아이는 다리에 딱지가 생기는 게 보일 때마다 참지 못하고 다 뜯어냈다.) 고열로 치솟지는 않고 열이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던 첫째는 콧물도 흘리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아, 불안하다. 둘째는 항바이러스제를 먹은 적이 없다. 어제라도 다른 병원에 한 번 더 가볼걸 그랬어. 첫째는 수족구 열도 다 떼지 못했는데 수상하게 기침을 한다. 아이들이 더 많이 아프게 되면 어떡하지. 괜히 멀리까지 데리고 다녀왔나. 모든 게 내 욕심이었나. 그 욕심 때문에 아이들이 고통받나. 걱정이 되어 미치겠다.
이럴 때 INFP들은 꽤나 구체적인 최악의 상상을 한다. 잠깐의 망상인데 아주 멀리까지 간다. 예를 들어 나는 수족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아이들이 합병증에 시달리다 사망하여 가슴 찢어지는 슬픔과 고통에 빠진 엄마의 입장이 되어 장례식장에서 오열을 하고 있는 망상에 휩싸이는 식이다. 정말이지 하등 쓸데없고 상황을 극복하는 데 1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망상이지만, INFP들은 자주 이런 생각에 빠져 고통받는다.
그리고 그 현실성 없는 상상이 현실의 나를 괴롭힌다. 그때부터는 정말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는 거다. 지금이라도 당장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아이들은 내가 모르는 질병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게 아닐까? 나와 남편은 이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까?
그 뒤로도 몇 번 병원을 오가고 아이들을 걱정하며 불안에 떠는 밤이 이어졌다. 다행히 두 아이 모두 수족구는 끝이 났고, 첫째의 감기도 둘째의 상처 감염증도 호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질병들을 떨쳐낼 때까지는 INFP 엄마는 불안한 망상을 멈추질 못한다.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반복되는 일.
틀림없이 좋아질 테지 쉽게 낙관하다가,
갑자기 꽤나 구체적이고 최악인 상상 속에서 불안을 얻고 허덕인다.
그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줄을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