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뒤로도 잠들지 못하는 마음
숨죽여 아기를 지켜본다. 자그마한 가슴이 위아래로 들썩인다. 그러다 마침내 뒤척이며 움직인다. 누군가에겐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건 아기가 행여 죽었을까봐 숨을 쉬는지 지켜보는 행동이다. 반대로 육아 경험이 있는 이라면 잘 알 것이다. 너무나 곤히 잠들어버린 아기가 꼼짝도 않을 때면 얼마나 두려워지는지. 작은 몸이 정말로 숨을 쉬고 살아 있는지 확인을 하고서야 잠시 곁을 떠날 수 있음을.
특히 "영아돌연사증후군"에 대한 정보를 하나라도 접해본 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테다. 영아돌연사증후군이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주로 1세 미만의 영아가 돌연사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아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정말로 일어나는 일이다.
남편과 나는 아이가 잘 자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살아 있다!" 하고 농담하듯 웃곤 했지만, 그 기저에 깔린 두려움의 크기는 같았을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운, 죽음이라는 공포.
나는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 배 속에 아기가 잉태된 것을 확인했던 그날부터 단 하루도 빠짐 없이.
원래부터 내가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앞선 글들에서 이야기했듯 전형적인 INFP형 인간인 나는 보통 무계획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다. 죽음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 이상 언젠가 죽고, 그게 당장 오늘이거나 내일일 수도 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도 너도 죽을 것이다. 죽음이 두려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내 배 속에 생명이 움텄다. 산부인과 진료실에 누워 초음파로 작은 씨앗을 보았다. 그날부터 나의 천하태평한 시절은 끝이 났다. 날마다 죽음을 생각했다. 이 아이가 죽으면 어떡하지. 내가 잘못 먹은 음식 때문에, 내가 과격하게 운동하거나 달렸기 때문에, 내 몸에 어떤 병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기집이 약했기 때문에... 모든 상상은 아기의 죽음으로 이어지며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임신 초반에는 계속해서 악몽을 꾸었다. 피가 쏟아지고 아기가 죽었고 나는 오열했다. 늘 무언가에 쫓기는 중이었으며 두려워서 울며 잠에서 깼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란 뒤에도 갑자기 죽을 수 있는 사고는 도처에 널려 있었다. 특히 자동차 사고에 매일 위협당한다. 아파트 사잇길, 학교 앞 좁은 길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는 차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달리고 있고, 앞만 보거나 혹은 앞을 전혀 보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동차를 좋아하지만 얼마나 위험한지는 모른다. 자기 몸이 얼마나 작고 연약한지도 알지 못한다.
그 외에도 많은 사건과 사고가 뉴스를 통해 보도된다. 누군가는 창문으로 추락해 죽고 누군가는 목에 걸린 이물질로 질식해 죽고 누군가는 전염병에 걸려 죽는다. 엄마가 된 이후로 그 뉴스 속 사건 사고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우리 집 안팎은 안전한지,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요소가 있는지 수시로 살피게 됐다.
내 아이가 안전하게 크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를 세상 모든 아이의 엄마로 만들었다. 무수한 사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뉴스를 접하는 날이면, 나는 엄마의 얼굴로 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삼십 해 넘게 큰 사고 없이 살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바로 오늘이 너무나 큰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날마다 죽음의 두려움과 싸웠을 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다. 내가 아주 작았을 때 밤마다 우리 엄마 아빠도 나를 살폈겠지. 내가 숨을 쉬고 뒤척이면 안도했겠지. 여전히 두려웠겠지. 학교에 간 내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친구들과 놀던 내가 사건 사고에 휘말릴까봐.
오늘도 나는 불안하고, 잠드는 순간까지 아이들의 안전을 살핀다. 가끔은 잠든 뒤로도 잠들지 못해 아이들을 잃어버리는 악몽을 꾼다.
나는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 배 속에 네가 잉태된 그날부터 단 하루도 빠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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