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채 Sep 29. 2022

말다운 말이 하고 싶은 날

오전 묵언수행과 오후 5만 마디 사이에서

“가짜로 말해도 채워지나? 예쁘다, 멋지다, 아무 말이나 막 할 수 있잖아.”
“말하는 순간 진짜가 될 텐데? 모든 말이 그렇던데. 해봐요 한번, 아무 말이나.”
<나의 해방일지> 5화 중
“싫을 때는 눈앞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어. 말을 걸면 더 싫고. 쓸데없는 말을 들어줘야 하고 나도 쓸데없는 말을 해내야 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중노동이야.”
“나도 그런데. 하루 24시간 중에 괜찮은 시간은 한두 시간 되나? 나머지는 다 견디는 시간. 하는 일 없이 지쳐. 그래도 소몰이하듯이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나의 해방일지> 6화 중


말다운 말이 하고 싶다. 그것이 요즈음 말에 관한 나의 가장 큰 바람이다. 내가 <나의 해방일지>에 열광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말'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고 내가 생각하고 느껴왔던 것들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이었다.


타고난 내향인인 나는 말하는 게 힘들다. 특히 낯선 사람, 그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어른들에게 말하기가 제일 어렵다. OT다 MT다 하며 난생처음 만나는 사람들 틈에 앉아서 이런저런 말을 생각해내야 했던 대학생 새내기 시절도 너무 곤욕스러웠다. 왜 저렇게 불필요한 말들을 끄집어내어 나눠야 하는 걸까? 그냥 말을 안 하면 서로 편하잖아? 나는 그것이 늘 의문이었다. 피곤했다. 안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안 하고 싶은 게 말이었다.


물론 나도 신이 나서 말할 때가 있다. 다시 <나의 해방일지> 속 장면을 빌리자면, 16화에서 미정의 새 어머니가 "죽기 전에 미정이 수다 떠는 걸 볼 수 있을지 몰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미정이 이렇게 대꾸한다. "저 말 많아요." 나도 딱 그렇다. 어떤 사람이라고 딱 그 인물들의 유형을 표준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무엇이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을 사귀면 그에게는 끝도 없는 수다쟁이가 된다.




그런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나는 대부분의 관계에서 '듣는 사람'이고, 가능하면 말하지 않는 편이 내면에 이롭다. 말하지 않는 상황에서 더더욱 즐거움과 평화에 쉽게 다다른다. 게다가 '잘 듣는 일'은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주고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즐거우니까.


책방에서 외주 출판편집 작업을 해온 지 5년째다. 1인 사업자인 아주 작은 책방에서 나는 혼자 일한다. 말하지 않고 온종일 일할 수 있다니 (점심 메뉴를 고르라는 상사도 없고, 밥 먹는 내내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며 마주할 이들도 없으니) 너무나 편했다. 물론 지금도 편하다. 책방에서 작업하는 동안 손님이 말을 걸지 않는 한 나는 묵언수행을 하는 사람처럼 입을 앙 다물고 있다.


문제는 아이들이 자라며 생겨났다. 책방에 머무는 동안에는 자의와 강제 반반쯤으로 아무 말도 없이 일하는데, 집에서는 내가 끝도 없이 말-주로 대답-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나를 계속해서 부른다. "엄마, 있잖아요. 블라블라. 종알종알." 내가 집안일을 하느라 대답을 못하면 대꾸해줄 때까지 부르기도 한다. "엄마! 엄마! 엄마!!!" 아이들과 함께하는 한 나는 무조건 말해야 한다. 아이들의 질문에 답해주고 정상적인 수준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이가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니까. 나는 성실하게 대답한다.


상황극도 계속된다. 자동차 놀이를 할 때에도 부엌 놀이를 할 때도 나는 곁에 앉아 함께 상황극을 이어간다. 음식을 받아먹는 시늉을 했으면 "음~ 맛있다!"라는 리액션도 넣어줘야 한다. 그게 엄마인 나의 말하는 의무다. 만화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을 흉내내며 "나는 너보다 힘이 훨씬 센 악당이지 하하하!" 열연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우리 집 첫째 아이는 '언어술사' '똘똘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말 자체를 빨리 시작했고 어휘와 발음이 웬만한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으로 풍부하고 출중하다. (팔불출이 아니라 진짜입니다.) 그만큼 말하는 것도 본인이 즐기고 좋아하는데, 몸이 심하게 아플 때만 제외하면 첫째는 깨어 있는 모든 시간 동안 입을 쉬지 않고 계속 말한다. 처음 보는 사람은 백 퍼센트 놀랄 만큼. 아마 이 아이가 내뱉는 말이 하루에 5만 마디*는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하루에 보통 말하고/말해야 하는 말이 성인 남성평균 5천 마디, 성인 여성 평균 2만 마디라는 기사를 본 적 있다.)




말했다시피 아이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행동에 적절한 리액션으로 말을 덧붙이는 것은 엄마로서의 의무다. 내가 말해야만 아이들은 말을 배울 수 있다. 엄마의 말, 모국어를 내가 그들에게 심어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할 때와 육아할  간극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손님이 뜸할 때는 정말  마디도 하지 않고 작업에만 몰입하기도 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면 수천 수만 마디를 듣고 수천 수만 마디를 돌려줘야 하는 입장이 된다. 게다가 그때 듣고 뱉는 말은 어른의 말이 아니라 다섯 살짜리 어린이의 말이다.  수준에 걸맞는 단어와 수준을 골라 말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날엔 책이나 영화에 대한 내용을 담은 어른들의 대화가 그리워지고, 다섯 살짜리 아이와 주고받는 대화가 못 견딜 만큼 힘들어진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지, 하며. 30대 또래 여성과 이야기하고 싶어지고, 깊고 어려운 생각들 속에 빠져들고 싶어진다. 그 간극을 이겨내지 못한 날에는, 아이의 말에 제대로 대꾸해주지 못하고, 쫑알거리며 나를 따라다니는 아이에게 쉽게 짜증을 내고야 만다.




누구의 잘못도 없는 하루. 그러나 오전 묵언수행과 오후 5만 마디 사이에서 나는 말다운 말이 하고 싶어진다. 아니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낫겠어, 싶다가도, 해적왕이 되어 아이와 낄낄거린다. 아니 역시 말이 문제야, 말, 말 좀 그만하고 싶다. 속으로 수많은 나와 말하고 싸우며, 또 하루가 간다.


첫째의 퀴즈 맞추기. 하루 종일 아무 말 안 하기 vs 5만 마디 하기 밸런스 게임이 있다면 당연히 전자.


이전 09화 인생 총량의 법칙과 두 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