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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Oct 22. 2022

엄마는 꼭 동네 아줌마를 사귀어야 할까?

새로운 관계 형성에 대한 물음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 뒤에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내가 운전하던 차를 들이받았다. 3주째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직도 긴장한 근육들이 풀리지 않아서인지, 몸이 고장 난 부위를 부지런히 고치고 있는 탓인지, 유난히 잠이 쏟아지는 요즘이다. 한번은 퇴근 후 잠깐 짬이 나서 책상 의자에 앉았는데 그 상태로 잠이 들어 아이들 하원 차량을 놓칠 뻔했다. 부랴부랴 뛰쳐나와 떠나려는 버스를 붙잡아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과 같은 정류장에서 함께 등하원하는 어린이집 친구가 있다.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동안 나와 그 친구의 엄마는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 매일 보는 사이이니 내가 요즈음 왜 그렇게 병든 닭처럼 시들시들했고, 나사 빠진 사람처럼 정신을 놓고 헐레벌떡 뛰어다녔는지 이야기할까, 잠시 망설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은 단순히 나의 일상 소식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내밀한 정보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끝내 교통사고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며 처음으로 가까운 친구가 생겼을 때부터, 이미 여러 차례 고민했던 문제였다. 내 아이의 친구의 엄마에게, 내 내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꺼내 보여야 할까? 우리는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으며, 그건 과연 얼마나 진정성 있는 관계가 될까? 아이들이 동갑이며 같은 어린이집에 다닌다는 사실 외에 우리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까? 나와 나이 차이가 꽤 나더라도? 취향이 전혀 다를 수도 있을 텐데? 우리는 더 친해져야 하는 걸까, 동네 친구로?

 



물론 "아이들이 서로 친하면 엄마끼리 가까워지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내가 자라는 동안 지켜본 우리 엄마도 그랬다. 내게는 오빠가 있는데, 더 어린 나보다는 주로 고학년인 오빠 일 때문에 엄마는 학교 행사에 참여했다. 오빠 친구의 엄마들과 우리 엄마가 가까워지는 건 자연스러워 보였다. 또 성격이 쾌활하고 에너지 넘치는 우리 엄마는 어디서는 친한 친구를 잘 만들곤 했으니까.

 

아이들이 친하면 그들의 부모끼리도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기본적인 성격은 타고나겠지만, 아이들의 말버릇이나 마음 씀씀이는 주로 부모에게서 영향을 받는 것이기에,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고 서로의 행동거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끼리 친구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은 확률로, 아이들이 친하면 부모들 간에도 큰 문제 없이 소통하고, 또 마음이 잘 맞는다면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는 거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부모끼리도 친구가 되는 일이 의무는 아니다. 당연히 아닌데, 자꾸 의무처럼 느껴진다. 내 아이가 집에 돌아와서 자꾸만 이야기하는 그 친구, 하루 두 번씩 꼭 얼굴 보고 인사를 하고 작은 대화를 나누는 보호자, 그들과 꽤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엄마에게는 잘 해내야만 하는 일종의 과제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물론 내 아이와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의사소통을 하는 친한 친구가 어떤 아이인지 잘 알아두고 싶고, 그 가족들과도 우호적으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뼛속까지 내향인인 나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친구를 사귀는 일 말이다.




서른 해도 넘게 살았지만, 나는 여전히 친구 사귀는 법을 잘 모른다. 신이 있다면 정말 감사하게도,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갈 만한 주변머리는 주지 않은 대신, 언제나 다른 누군가가 내게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게 해주셨다. 나는 새 학기에 새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외톨이인 적이 없었다. 한 학기가 다 가기 전에는 꼭 친한 친구들이 여러 명 생겼다. 소극적인 아이인 게 느껴졌는지 주변 친구들이 더 나를 다가와주었고 챙겨주었다. 나는 여러 친구들에게 귀여움당하며 성장했다.


그래서 나는 당혹스러운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초년생 시절을 지나온 후로는, 그런 관계 맺기의 문제 때문에 신경 쓸 일이 없을 줄만 알았는데. 게다가 나는 너무나도 홀가분하게 프리랜서 자영업자로 혼자 일하고 있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에너지가 닳기 시작하는 INFP인 나는 엄마가 됐고, 자꾸만 아이의 선생님과 아이 친구의 부모와 소통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세상 사람들은 아이 친구의 엄마랑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나는 그게 너무 버겁다.


나는 심심하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새 동네 친구를 사귀어 그들의 집에 놀러가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누구를 더 깊이 있게 사귀지 않아도 충분하다. 나는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 무리에 끼어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다. 내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혼자 읽고 쓰고 보고 걷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스스로를 많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서른넷 지금은, 그런 내가 이상하지도 않고 부족하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내게 묻는다.

"별별이네 집에 땡땡 장난감 있다는데... 나 별별이네 집에 놀러가보고 싶다!"

스스로 그렇게 안 할 줄 알면서도 매끄럽게 대꾸한다.

"우왕 진짜? 엄마가 별별이네 엄마한테 집에 놀러가도 되는지 물어볼겡!"

물론 별별이네 엄마에게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하원 버스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모과나무.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모두 너무 많아서 그냥 혼자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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