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작은 체구만큼이나 굉장히 마음의 그릇이 작은 아이였다.
아니 여전히 그 마음의 그릇은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옹졸하고, 고집이 세고, 이해심이 부족하고, 감정적이고, 예민하고,
그 작은 그릇에 어찌나 수많은 부정적인 것들이 많이 담겨 있는지
그러니 좋은 것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그런 마음의 그릇을 깨끗하게 하고 크기를 키우는 데에는,
많은 열 에너지가 필요했다.
더러워진 그릇에 붙어있는 수많은 부정적인 세균들을 소독하고,
딱딱하게 굳어있는 그 그릇을 유연하게 만들어 조금 더 큰 그릇을 빚어낼
그런 열을 가해줄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 에너지의 근원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트레스'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전보다는 더 나은 ,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그런 생각과 욕심에서 오는 스트레스.
그 일정량의 스트레스가
마음의 그릇에 열을 불어넣어 주면서
더러워졌던 그릇이 한번 소독되어 씻겨저나가고
이전보다는 더 많은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그런 조금 더 큰 그릇을 다시 빚어내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이 그 스트레스와 열도 정도가 있어야만 했다.
정도를 조절하지 못한 과한 스트레스는 과한 열을 만들어 냈고,
그로 인해 그릇을 키우기는커녕 되려 그릇이 녹아내리고 그 안에서 불이 났다.
그렇게 스트레스로 인한 병도 종종 생겼다.
일종의 화병이었다.
생각해 보면
직전 글에서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하다가 무너져 내린 것이
여기서 말하는 정도를 조절하지 못한 과한 열과도 동일한 것 같다.
그렇게 녹아내린 그릇을 다시 빚어내다 보니
무너져 내면을 다시 세워 올리는 것과 비슷하게
한계가 명확했다.
녹아내리지 않고, 무너져 내리지 않아야만
더 넓은 그릇을, 더 튼튼하고 높은 내면을 쌓아 올릴 수 있었을 텐데
어찌 보면
이전까지는 그 한계를 미처 느끼기도 전에 무너져 내리거나
나름의 더디지만 꾸준한 성장을 조금이라도 해왔었으니
이런 감정이나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도 그 한계가 명확하게 보인다.
이대로는 더 이상의 성장과 발전은 없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는 더 많은 더 나은 내면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바뀐 모습이어야만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 작았던 마음의 그릇이, 튼튼하지 못했던 내면이
그래도 성장과 발전의 한계를 느낄 정도는 성장했구나.
어쩌면 이전과 지금은 꽤 많은 것이 달라졌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