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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May 28. 2024

'마이크로어그레션'을 당해 보셨나요?

: '다수'에 의해 +'지속'적으로 바늘에 찌린다면...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이다. 업무 련 회의가 다 끝난 자리에서,


A:     ㅎ박사님은 왜 이 연구원에 지원했어요?

나:    ...(살짝 당황).... 저도 뭔가 기여하고 싶어서요.

A:     이 연구원이 서울에 있는 것이 큰 장점이죠?!

나:    ..(응??)....예에...뭐 그것도 장점이죠.

A:     요즘 국책연구원들이 다 지방으로 내려가고 해서..

나:    예, 요즘 강원도, 세종시로 많이 가더라고요.

A:     그래서 여성들에게 이 연구원이 서울에 있는 것이 큰 장점으로 작용할 거예요. 아이들 교육하기에 좋으니까.

나:    .........................????..

B:     ㅎ박사님은 그전에도 서울에 있는 연구원에 계셨습니다.

A:     아, 그래요?

나:   ...저는 가정이 없어서요.



Micro + aggression = 미세한 공격

미세먼지처럼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리고 면역력이 강한 사람은 한두 번 공격을 당했다고 해서 큰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일상에서 자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불쑥,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게 되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심대하게 해치게 되는... 차별. 그러한 차별을 마이크로 어그레션, '미세한 공격' 혹은 '먼지차별'이라고 한다.


마이크로 어그레션의 특징은,

다른 공격보다 개개인의 '악의' 또는 '의도'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다양성 인정 및 이방인과의 공존에 대해 미성숙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친절한 아이스 브레이킹, 혹은 친근감 표현의 수단으로 던져지는 말 한마디가 공격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일천하지만, 자기 나름의 다정함 및 친근감으로 다가온 공격자에게, "당신의 공격 때문에 아픕니다"라고 문제제기를 하면, '유별난 사람', '예민한 사람', '냉정한 사람', 그리고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으로 찍히게 된다. 이것이 두려워 문제제기조차 포기하는 경우도 많고. (사실 어제 저 대화에서 난 맥락 파악에 꽤 시간이 걸렸었다. 연구원과, 서울과, 여성과, 아이, 그리고 교육을 연결짓지 못하여...)


그렇지만, 아프다.

바늘에 한번 찔리면 별 것 아니지만, 한 공동체 안에서 여러 사람에 의해 지속적으로 찔리면, 그 얼얼함은 상당히 오래가며 불쾌함은 폐부를 깊숙이 찌르게 된다.

그 미세한 공격이 아무리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공격한 사람 개개인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찔린 곳을  반복적으로 계속 찔리는 사람은 그 공동체에서 도망치고 싶어 진다.


그것이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거의 인식되못하고 있는 마이크로 어그레션의 특징이고 해로움이다.



캐나다에서 생활하던 초기에는, 누군가가 나에게 "너 어디 출신이니?"라고 묻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질문이 무례하고 인종차별적이라는 다른 캐나다인들의 지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질문이 왜? 나처럼 고유한 영어 엑센트가 있는 유색인종에게 그런 질문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한 해 두 해 캐나다에서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고,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자... 난 지쳐갔다.  


'아... 그만 좀 물어보지. 지친다. 지겹다. 내가 이 사회에서 사는 동안 언제까지 이 질문을 들어야 할까... 진짜 궁금한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되더라. 이 단순한 질문에 내가 이렇게 지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나의 고유한 영어 엑센트를 만든 나의 배경이, 그들이 단순하게 묻는 나의 출신지가 나에 대한 고정관념을 알게 모르게 형성하게 됨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동양인, 동양여자, 한국출신, 한국여자 :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보살핌'에 능숙하다거나, 수학을 잘한다거나, 부지런하다거나, 심지어 손이 작다거나(내 손은 그리 작지 않다...), 수줍음이 많다거나, 나아가 성적으로 밝힌다거나/성적으로 보수적이라거나(이건 둘 다 해당되더라).



그래서 어제 그 회의 이후,

반년만에 담배에 다시 손을 대었다.

그 한번의 대화 때문이 아니다. 반 년동안 이 조직에서 조금씩 조금씩 찔리고 긁히고 했던 기억들이 똘똘 뭉쳐져 명치를 세게 들이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조직에 계속 있을 있을까? 그것이 페미니스트 여성 학자로서 옳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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