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ortbus Apr 08. 2018

10.성폭력 피해자의 가족의 역할(3)

: '최선'은 '최고'가 아니더라도 위로가 될 수 있다.

(9편에 이어서)


아빠의 전화를 받고 며칠 뒤 다시 부모님 댁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이번에는 무언가를 잔뜩 쓴 종이라던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던가.. 그런 것들은 없었다. 이미 경험했으므로. 20대 중반의 내가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은 매우 협소하고 한계 지어져 있다는 것을. 그분들은 그분들 나름의 역사가 있기에. 


부모님의 세계는 그분들이 살아오신 모습대로 형태 지어져 있고, 그 그릇에 나의 아픔이 들어갈지 들어가지 않을지는 내가 예단할 수 없다. 부모님 역시 완전하고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분들의 그릇이 무엇이든 다 포용할 수 있는 넓고 깊은 태평양과 같다고 봐서는 안된다. 그러나 또한, 그분들의 그릇이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생겼을지, 어느 정도의 깊이로 이루어져 있을지 역시, 내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무언가를 대비하고 준비한 다는 것은 건방진 '월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분들의 몫이다. 설사 아빠가 살아온 세계와 쌓아온 경험이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다 담을 수 없는 모양이라서, 나의 그릇과는 많이 다른 모양으로 형태 지어져 있어서 나를 감싸주지 못한다 할 지라도, 그것 역시 아빠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또 그분의 딸로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다만 난, 내가 살아온 세계만큼만, 그 경험치만큼만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아빠가 엄마와는 다르게 나를 이해하거나 공감해 주지 못한다고 할 지라도 당시 스물몇 살인 내가 육십이 다 되어 가는 그분의 세계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는 그저, 딸로서가 아니라, 이렇게 생겨먹은 나라는 사람으로서 내 감정에 충실하기로, 그렇게 최선을 다 하기로 했다. 


아빠를 기차역에서 만났다. 차를 타고는 별 말없이 어디론가 향했다. 고지식한 분이시기에, 유교적 질서를 중시 여기 시는 여느 중년의 아저씨와 같은 분이기에, 나는 아빠의 차가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산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별 의미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아빠의 입장에서는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고, 뭔가 본인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싶으셨겠지. 


산소로 향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산속을 걸어 올라가다가 그 길의 오른쪽으로 나 있는 샛길을 지나 조금은 외딴곳으로 향했다. 벤치가 두 개 놓여있고 뒤로는 야트막한 나무로 둘러 싸여 있으며 앞으로는 시야가 탁 트이는, 경치가 그럭저럭 봐줄 만한 곳이었다. 아빠는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건물들과 거리들을 가리키며, 저기가 우리 조상 중 누구누구가 살던 곳이라고, 또 저쪽은 그 후손들 누구누구가 살고 있고, 또 이쪽은 우리 친척 누구누구의 땅이 있는 곳이라고. 저 지명은 역사적 인물인 누구누구의 이름을 딴 곳이고... 등등. 여느 때와 같이 아빠만 즐기시는 이야기로 말을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엄마한테 들었다. 오빠가 니 어릴 때 니를 좀 만지고 그랬다고."


"...."


"그런 일 많다. 아빠도 그런 일 많이 봤다. 옛날에, 가족들이 다 가난해서 한방에 다 오글오글 모여 살고, 잠도 같이 자고 그라면 그런 일도 있고 그랬다. 별거 아이다. 뭘 니답지 않게 그런 걸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 두고 있노."


화가 났다. 그래, 난 화가 많이 났다. 아빠가 어떤 말을 할지 예상을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아니, 느낌이 들었고 나는 바로 버럭!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빠!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피해자 입장에서는 평생 가는 거야! 남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럴지 모르지만! 피해자들은 평생! 기억하고, 평생! 아파하면서 사는 거야! 모르면서 그렇게 말하면 안 돼! 그게 피해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거야!"


나의 '버럭'에 눈물이 더해지자, 아빠는 당황했다. 아빠의 무거운 얼굴에는 당혹스러움과 놀람이 뒤섞여 있었다.


피해자의 입장이라... 1940년대에 태어나 평생을 남자로, 맏아들로, 남편으로, 집안의 가장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살아왔고, 젊었을 때는 가부장적 군대식 직장생활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며 살아왔을 테고,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는 자신보다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을 다그치며 일하는, 20세기 형 리더십이 몸에 배어버린 그분이...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 같은 것을 1초라도 생각해 겨를이 있었겠는가.


아빠는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야, 그라면 우야노 (=그러면 어떡하냐). 이미 일어난 일을. 니 엄마도 카더라 (=얘기하더라). 자기도 어릴 적에 그런 일 겪었다고. 엄마가 울면서 카길래 (=얘기하길래), 내가... 등 두드려 주면서, 내가 켔다 (=얘기했다). 당신도 참 바보라고. 뭐 그런 걸 아직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냐고. 늙어 가면서 바보같이... 니도 신경 쓰지 마라. 니는, 어, 니는 씩씩하고, 반장도 많이 하고, 리더십고 있고, 속도 깊고, 어, 괘안타 (=괜찮다)."


살면서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적이 거의 없다. 지금껏... 세 번? 나의 아빠는 선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에겐 고마운 분이고... 여러 가지로 나와 맞지 않는 부분도 많고 친구처럼 스스럼없지도 않지만, 인간으로서는 그분의 역사를 존중할 있는 분이다. 그래서 화는 내기는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곧, 시간차는 조금 있었지만, 곧 있었다. 그분 입장에서는, 환갑이 되어가는 그분의 세계에서는 아마도... 저게 최선의 위로였으리라. 본인은 최고의 위로를 하고자 했으나, 결코 최고가 될 수 없는 위로. 하지만 그분 개인의 역사를 조금씩 엿보며 살아온 나이기에, 최고는 아니지만 그분의 최선의 노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식들과 마음 터 놓고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분. 우리 사회의 많은 아저씨 혹은 할아버지 중 한 사람인 나의 아빠. 나이가 들어 육체적으로 늙어가면서, 이삼십 년을 같이 산 자신의 아내와 이야기 나누는 방법을 새로이 배워가는 분. 본인이 잘못했을 때 오히려 버럭, 더 소리를 질러버리는... 잘못이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성숙한 사람의 진짜 용기라는 것을 배운 적이 없는 분. 본인의 부모가, 형제가, 직장이, 사회가... 나중에는 자신이 꾸린 가정이, 그리고 결국은 자기 스스로가 자신에게 던지는 채찍질 속에서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오신 분. 그분의 어찌할 바 몰라하는 그 표정에서 난, 그분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발견했다. 그 접점은 객관적으로는 아주 좁더라도, 아마도 성폭력이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주제 앞에서는, 우리 둘 사이에서의 최대치일 것이다.


아빠와 딸.

남성과 여성이라는 차이. 삼십 년이 넘는 나이 차이. 한국이라는 지리적으로는 고정된 공간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천지가 개벽할 만큼 변해버린 사회적 환경의 차이...


그래, 난 아빠의 최선을 받았다.


조금의 시간 차는 있었지만, 가슴 아린 뜨끈함이 내 마음 한 구석에서부터 비집고, 밀고 들어왔다.


... '고맙다'...


"아빠, 나 괜찮아. 학교에서 상담도 다 받았고... 그냥, 아빠 엄마한테 얘기가 하고 싶었어. 이제 얘기도 했고, 괜찮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나 사과도 받았어. 그러니까 내가 잘 알아서 할게. 걱정 마."


이렇게 말한 것 같다. 그리고는...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다시 아빠 차를 타고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갔겠지. 그리고는 아마도 밥을 같이 먹었겠지. 그리고는... 그리고는... 지금까지 그 성폭력에 대해서는, 가해자인 오빠에 대해서도 아빠와는 별 말없이 지내고 있다. 엄마와는 가끔씩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그냥 '엄마 아들'이라는 호칭으로 그 아이가 얼마나 어린 사람인지, 오빠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나와 아빠는 '그냥' 잘 지낸다.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친 아빠의 잔소리에, 내가 몇 살인 줄 아냐며, 삼십 대 중반이라고, 이젠 밖에 나가면 아줌마 소리 듣는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그러다가 좀 심했다 싶으면, 또 좀 잘 해 주기도 하고... 그냥 그렇게.


그리고 나만의 생각일지는 모르겠으나,

아빠도 어쩌면 그때 그 일로, 내가 자신이 낳은 딸이지만, 자신이 모르는, 도저히 알려해도 알 수 없는 세계를 살고 있고, 또 거기에 맞게 형태 지어진 나만의 그릇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아닐까.

그 그릇이 아빠의 것과는 크기도, 깊이도, 모양도 같지 않아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그러다가 귀퉁이가 살짝 부스러지기도 하고 또 금이 가기도 하지만, 원래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나의 그릇이 깨질 것 같으면 부모라도 거리를 넉넉히 두고 그 곁을 떠나야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이미 단단해져 버린 어리지 않은 자식과, 원래부터 단단했던 부모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적당한 정서적 심리적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 것이다. 아빠도 아주 아주 조금은, 무의식적으로 나마 알게 된 것이 아닐까...


:) 

매거진의 이전글 9.성폭력 피해자의 가족의 역할(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