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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Apr 28. 2018

12."성폭력 피해자답게~" 어렵지 않아요..

: 착한 여자는 천국으로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

며칠 전,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안태근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서지현 검사가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았다. 첫 번째 인터뷰보다 더 큰 용기와 각오가 필요했다는 두 번째 인터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어떤 것인지, 책 속의 이론으로써가 아니라 몸소 겪었을 것이기에 더 망설이고 더 깊이 고민하고 결정했을 두 번째 인터뷰. 시종일관 진지하고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눈물을 삼키며 있는 힘껏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신 그분의 용기와 당당함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다가...


진행자 김어준이 특유의 유머스러운, 그렇지만 의미 있는 질문으로 분위기가 바뀐 그 순간, 서지현 검사가 웃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 자기 검열의 센서가 '위잉----' 하며 저절로 작동했다.


'어...! 웃으시면 안 좋을지도...!!'


이와 같은 생각이 든 이유는, 같은 여성으로서, 성폭력 피해 경험자로써 서지현 검사가 더 이상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분이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두 가지 마음이 들었다. 웃을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본인이 그렇게 원하시는 대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있으신 것 같아서 기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못난, 모자란 사람들이 저 웃음마저 비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덜컥 겁이 났다. 과잉반응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분이 웃으시는 순간, 내 속에서 경보음이 울렸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 성폭력 피해자는 못생겨도 안되고 예뻐도 안된다. 가슴이 너무 커도 안되고 너무 작아도 안되며, 많이 배워도 안되고, 나이가 너무 많아도 안되고, 이혼을 해도 안되고... 참, 유흥업소에서 일을 해도 안되지. 참참! 정치적이어서도 절대 안 된다. 가부장적 한국사회에서 보호받아 마땅한 여성은, '우리들'의 '딸'이나 '여동생'처럼 (도대체 그들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리고 약하고 순결하고 청순한... 그런 존재들이어야 하고, 성폭력의 피해 이후에도 피해자로서의 덕목(?), 즉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이미지를 잘 지켜 나가야 한다. 그래야 피해자로서 보호도 받고 나중에 착한 남자 만나서 시집을 갈 수도 있고...   ....  쓰다 보니까 욕이 저절로 나오는군. 참, 욕을 잘 하는 사람도 실격이다. 여러모로... 난 실격이다:)


이런 고정관념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성폭력은 어쩌면 친숙한(?) 소재로써 어떤 큰 사건의 복선이 되거나 원한의 시작점이 되긴 하는데, 거기서 피해자는 그저 피해당하기 위한, 그리고 등장인물 모두를 엮어 넣어 갈등 구조를 만들어 내는 존재로만 소모될 뿐... 입체적인 인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 더 이상 깊게 다루면 껄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드라마 속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은 뭔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야 한다. 어두운 곳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자학을 하거나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거나. 아니면 피 묻은 칼을 들고, 그 칼도 항상 조악하지..., 암튼 그런 칼을 들고 복수를 꿈꾸지만 항상 복수에 실패하고. 또 복수에 성공한다 해도 뭔가 행복해하는 얼굴을 볼 수가 없다. 회환에 가득 찬 표정.. 딱 그 정도?


.... 왜?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스러운, 남성스러운 전형적인 모습에 대한 기대를 하고 그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이라고 배제하듯이, 성폭력 피해자'다운' 모습에 대해서도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피해자가 피해자다운 모습을 하고 있으면 '몹쓸 짓'을 당한 불쌍한 여자로 동정의 대상이 되지만 그 틀에서 벗어나면, ‘피해자 맞아? 꽃뱀 아냐?’ 혹은 ‘저러니까 당하지…’ 등의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렇다면 '피해자 답다'는 전형적인 틀이 싫은 사람들은 '피해자 답지 않음'을 선택하면 문제가 잘 해결될까? 아마도...비교적 너그러운(?) 반대의 프레임이 적용되어, ‘피해자인데도 밝네. 피해자이지만 잘 지내네. 피해자 답지 않게 잘 웃네'... 등등의 또 다른 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말했듯이, 누군가 이렇게 외치면 모두 다 코끼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결국 '피해자 다움'에 속하는 것과 '피해자답지 않음'에 속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둘 다 피해자 개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이 아닌, 주변에서 만들어 놓은 특정한 프레임을 덮어쓰는 것이다. 마치 1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노력, 강요된 '여성스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이 본의 아니게 '남성스러움'과 닮아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난 누군가가 규정해 놓은 프레임인 '피해자 다움'에 들어가 동정받는 것도 거부하지만, 그 반대의 틀, ‘피해자답지 않음’에 들어가는 것도 거부한다. 그냥, 불교철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Now Here', 바로 지금 이 곳에서 가장 나 다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매 순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 


누군가는 내가 결혼을 안 하면 '에구.. 쯧쯧. 성폭력 피해자니까...'라고 생각을 할지도 모르고 결혼을 하면 '성폭력 피해자인데 결혼을 했네? 남편이 참 좋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을 할지도. 나중에 이혼을 하면 '역시... 성폭력 피해자니까 그런 거겠지...'라고 할지도. 모든 경우에 다 적용 가능하다. 성격이 좋아도 나빠도, 연애를 많이 해도 잘 못해도. 공부를 잘해도 공부를 못해도. 성에 대해 많이 알아도 잘 몰라도... 끝이 없이 이어질 수 있다. 진짜 나와는 전혀 다른 어떤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끝이 없이 생산될 것이고, 어떨 때는 순순히 받아들여질 것이고 또 어떨 때는 내팽개쳐질 것다. 참... 우습다.


몇 해 전, 카라가 부른 프리티 걸이라는 노래의 가사 중,


나와 맞는 옷에 또 받쳐주는 말투/ 센스 있는 포즈 그냥 되지는 않죠/ 생활 상식은 기본 시사 상식은 선택

다 끊임없는 노력이죠.../ 마음은 예쁘게 표정은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하면서 잊지 말아야 하죠/ 두 눈을 깜박이며 살짝 미소 지으면/ 이젠 모든 게 완벽하죠


그래, 참 쉽다.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로서 보호받으며 '당당하게(?)' 사는 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위의 노래 가사처럼 '끊임없이' 노력하면 된다. 정숙한 옷에 언제나 신중한 말투, 조신한 포즈.. 살림 잘하고 내조에 힘쓰는, 절대 정치적이면 안되고. 마음은 예쁘게 표정은 온화하게, 백치미를 뽐내며, 박장대소 대신에 은은한 미소. 자, 이제 모든 게 완벽하다.


만약 그러기 싫다면? 그것 역시 딱히 어렵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다. 한 가지만 각오한다면 말이다. 똥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는 말처럼, 욕, 비난, 가치 없는 자들이 내뱉는 오물들을 당당히 뒤로하고 내 갈길을 가는 것. 그것만 하면 된다. 참... 쉽.. 죠?;;


우테 에하르트의 책 제목이기도 한,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는 말이 있다. 이때 어디로든 간다는 것은, 아스팔트가 갈려 있는 길을 평탄하게 유유자적하며 간다는 말이 아닐 것이다. 울퉁 불퉁한 길을, 그 길을 막는 누군가, 무언가를 만나더라도, 그것을 헤쳐내고 앞으로 나아간다...라는 말일 것이다. 그래도 난, 타인에 의해 천국이라고 명명되는 그곳에 무사히, 안전하게 '배달'되는 것보다는, 비포장 도로라도 어디로든 향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린 그 길을 택하고 싶다.  


선택의 시간이다.

 

건투를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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