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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Jul 10. 2018

15.나의 성폭력 사건의 '매듭'을 짓기 위한 시작

: 영원한 것은 없다. 기쁨도 슬픔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

(14편에 이어서...) 


"그동안 님께서 많이 힘들어하셨던 것 같아, 메일을 읽으면서 많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시 기운 내셔서 문제 해결을 위해 상담해 오신 님의 메일을 읽으면서
반갑기도 하고, 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힘이 님 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많이 힘드셨지만, 조금만 더 기운 내셔서 저희와 함께 잘해 결해 나갔으면 좋겠네요." 



내가 가해자에게 두 번째 이메일, 그 첫 번째 이메일에서 7줄의 사과를 받고 더욱 화가 치밀어* 작성한 그 두 번째 이메일이 가해자에 의해 수신거부 처리되어 있음을 확인한 후부터 난 한국성폭력 상담소에 문의 이메일을 보냈었다. 

(*'화가 치밀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표현은 너무 부드럽다. 지금도 비교적 생생히 기억하는 그때의 나의 상태는 단순히 '화'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기에는 너무 뜨겁고 너무 격렬하고 너무 치명적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당시의 내 감정을 묘사하자면, 내 정수리에 누군가가 성냥을 갖다 대었다면 아마도 불이 붙었을 만한 그런 크기의 분노였다. 그러나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못 찾겠기에..)


내가 원하는 사과를 받기 위해 이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정확히 말하면 주고받기 시작한 단계에서 난 한국성폭력 상담소에 문의 이메일을 함께 보내기 시작했다. 위의 글은 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보낸 이메일의 한 부분이다. 


성폭력 상담소에 문의를 한 이유는 법적 절차를 문의하기 위함이었다. 형사고소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그것이 힘들다면 민사는 어떨지... 내가 가해자의 학교나 회사 등에 모든 것을 다 폭로해 버리는 것은 어떨지. 이런 내용들을 문의하며 내가 처음으로 상담소에 보낸 이메일을 지금 읽어보니, 이글거리는 나의 분노와 슬픔이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아.. 내가 이랬었구나. 이렇게 많이... 격정적이었구나.'


그런데, 그렇지만 사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스스로 모르는 척했지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고소라는 법적 절차가 아니라는 것을. 단지 내 분노의 크기를 표현하기 위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수단이 필요했을 뿐이었다는 것을. 풍선을 불 때 사실 우리는 풍선 안의 공기를 직접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그 풍선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고 그 안에 공기가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도 느낄 수도 있게 된다. 그와 같이 내가 그때 '고소'라는 수단을 언급하고 그 수단에 집중한 것은 내 분노의 크기를 담을 만한, 눈에 보이는 그 무언가를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공소시효가 이미 다 지난 것임을 알면서도, 주변에 폭로를 하여 사회적 매장을 시키는 것이 내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담소에 문의를 했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친족 성폭력에 대한 형사고소의 경우 피해일로부터 7년 간 신고할 수 있기 때문에 공소시효문제로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신적 피해가 계속되는 경우에 보통 10년 정도까지 소송이 가능하다고 법률 관계자들은 보기도 하는데요, 님의 경우는 피해가 있은지 거의 14~15년이 지났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형사고소와는 별개로 가해자가 수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라도 그 당시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응분의 보상을 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면, 이러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하여서 법적으로 문제 삼아 민사 소송으로 일종의 금전적인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가해자의 가해사실을 게시판에 올릴 경우에는 님께서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하실 수 있으므로 신중하기 생각하셔서 가능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래 그래...안다. 알고 있다. 그래도 상담 선생님의 친절하고 따뜻한 설명이 내게 위안이 되었다. 당시에는, 남자 친구를 포함한 내 주변의 친한 친구들만 나의 피해사실을 알고 있고 (사실 나와 같이 20대였던 그들이 내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는 힘들었다.), 부모님도 모르시고, 가해자는 날 수신 거부한 그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힘이 될 수 있는 누군가가 내게 공감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숨 통이 조금 틔인 것이 사실이다. 


난 상담 선생님에게 이런 문의도 했었다. 


"며칠 뒤 부모님께도 모든 것을 밝힐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이런 경우 부모님께서 알게 되면 보통 어떤 반응을 보이시는지..
너무 큰 충격으로 쓰러지실까 봐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저만 안고 살아가기엔 너무 무겁습니다."


이 또한 내 안에서는 내가 해야 할 행동, 하고 싶어 하는 행동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데, 상담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서 다시 한번 내 생각을 표출함으로써 자기 확신과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대비를 단단히 하는.. 그런 과정이었으리라. 당시에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이런저런 이메일을 이제 와서 다시 읽으니, 새삼스럽게 20대 초반의 내가 보이는 듯해서 기분이 좀 이상하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나의 어두운 모습들, 지금의 나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의 과하리만큼 슬프고 처절한 모습들. 뭐 그때의 내가 있었으니 지금의 나도 있는 것이겠지만. 그런데 만약, 그때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그때의 그렇게 과잉된 나는, 과거 한때의 내 모습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듭'이라는 이름의 메일함을 따로 만들어 상담 이메일, 가해자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정리해 놓은 것을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다시 열어보니 그 속에서 20대 초반의 나의 맨 얼굴들이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새삼 그 당시로 잠깐 돌아가 보게 된다. 주고받은 이메일 속의 글자 한 자 한 자에 집중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몇몇 문장들은 내가 어떤 얼굴로, 어떤 기분으로 작성을 했는지 기억이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 내가 그 녀석에서 반성문도 받았었네?'하면서 기억할법한데도 지금은 전혀 낯선 내용들도 있고...




가해자와 다시 연락을 취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본격적으로 요구하기 전에 난 한국성폭력 상담소와 계속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내 생각을 스스로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가해자를 본격적으로 압박하기 전에 내가 준비가 소홀하면 안 되니까. 사자도 토끼를 사냥할 때 몸을 낮추고 최선을 다 한다고 하지 않나... 하물며 나는 한번 져 본 상대에게 싸움을 걸고 있다. 반드시 이기는 싸움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 이긴다는 것이 남들 앞에서 훈장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받은 만큼 똑같이 되갚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보낸 문의 이메일 중 한 문장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담고 있었다. 형사고소도 민사고소도 아닌, 사회적 매장도 아닌 것. 또한 안타깝게도...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지만, 이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풍선 안의 공기처럼 내가 직접 확인할 수는 없는 것.

 

"그놈이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철저하게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소박해 보이는가? 누군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그렇지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아니, 그냥 불가능한, 거대한 소망이라고 본다. 이루어질 수 없는 너무 큰 꿈. 


그때 떠올린 것이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일 것이다. 형사고소를 하던 민사로 가던, 이미 일어난 일은 돌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고, 돈 몇 푼으로 해결 안 될 것도 잘 알고 있고. 그렇다고 공상과학 영화처럼 가상현실 속에 그 녀석을 집어넣어 성폭력을 당하게 만들 수도 없고. 그래서 상담소에 문의를 했던 것이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이다. 


"가해자 교육은 꼭 받게 할 생각입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조만간 제가 그 사람(가해자)을 만날 생각입니다.
만나서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직접 얘기할 것입니다.

물론 못 알아들을 수도 있겠지만,
가식적으로 알아들은 척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만나서 이야기한 후에 가해자 교육을 받으라고 이야기하고

만약 자발적 의사가 없다면 민사 고소를 하겠다고 협박하며 받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도 받지 않겠다면 그때 민사 고소를 해야겠죠."


남들 눈에는 '그게 뭐야. 결국 고소도 못하고 위로금도 받아내지 못하고 망신도 주지 못했잖아.'라고 무력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혹시나 가해자가 세월이 지난 뒤에라도 '난 내가 죄를 지은만큼 응당한 대가를 치렀다...'라고 생각하게 될까 봐, 그게 싫어서. 


그리고 이미 성폭력 상담소에서의 몇 개월에 걸친 상담을 통해서 내 성폭력 피해 문제의 본질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누군가와 나누어 짊어질 수 없는, 오롯이 나만이 보듬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나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 짊어질 수 있을 만큼 힘을 키우고 어깨를 단단히 만드는 것만이 해결책이지 그 녀석을 낭떠러지에서 밀어 떨어뜨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녀석을 낭떠러지로 밀어 던져 버린다고 해서 해결될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목표를 정한 이상, 빠르게 그러나 놓치고 가는 것 없이 이 일을 '매듭'짓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한 이 사고를 실수 없이 매듭. 짓고. 싶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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