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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Jun 30. 2022

예상치 못했던 성추행 가해자의 진술?!

불송치 이유서에서 발견한 황당한 진실

6월 4일 경찰서에서 등기로 보내온 불송치 이유서를 읽고는, 사실 나의 사건이 불송치되었다는 안타까움보다 황당함과 어이없음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경찰이 무혐의로 불송치를 결정한 이유는 내가 성추행 행위라고 주장한 가해자가 나의 신체를 만진 행위에 대해서는 증거와 증인이 불충분하다는 것이었는데 (이건 도대체 어떻게 증명하란 거지??)... 그건 그렇다 치고, 한 문장이 더 있었다.

가해자가 경찰서에 변호사까지 대동하고 나타나서 조사를 받으면서 진술한 바로는, 자신은 내가 제기한 성추행 행위를 한 적은 없지만 나와 '동의 하'에 키스를 했다고... 그렇게 진술을 했더라.


뭐야...


뭐야 이거...


나는 경찰에서 진술을 할 때 가해자의 행위에 강제키스라는 행위를 말하지 않았다. 당시 차 뒷좌석에서의 상황으로 보아 강제키스가 가능하였으나, 나는 그에게 "결혼도 하신 분이 이러시면 안 되는데..."라는 말을 한 이후로 정신을 잃다시피 했고 그 뒤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추행 고소에서 진술의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었고, 증인과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는 어쩌면 그 일관성이란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나는 내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범위에서 진술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내가 정신을 잃었을 때, 즉 심신상실의 상태였을 때 키스를 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이건 준강제추행인데.

우선 역겨운 것은 뒤로 미루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런 진술을 했을까?

분명 고소하기 전에 그와 전화 통화하면서 내가 사과를 요구하며 따졌을 때는 '자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왜 이러시냐,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다...'를 반복하기만 했었는데, 왜 변호사를 대동하고 경찰 조사를 받을 때는 '동의 하'에 키스를 했다고 말을 했을까?


변호사 친구가 말하길, 보통 성범죄의 피의자들에게 변호사들은, '동의 하'의 관계나 성적 행위였다고 진술하라고 조언한다고 한다.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보듯이 말이다. 성적으로 친밀한 행위를 하기에는 나이나, 관계나, 지위 등의 관계가 어색하게 그지없는데 가해자로 지목된 측들은 하나같이 '동의 하'에 한 행위라고 진술하는 것이 그런 이유였다 보다. (물론 사랑이나 호감이 나이 차이나 지위 고하에 따라 경계 지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국경도 인종도 뛰어넘는 게 사랑인데.. 나이나 지위쯤이야. 다만 서로 진실공방이 있을 때를 한정하여하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추측하기로는... 그는 내가 경찰에 어떤 진술을 했는지, 어떤 증인이나 증거가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대한 자신을 보호해 보고자 '동의 하'에 그 행위를 했다고 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딱 잡아떼어도 자기한테 여러모로 유리한 정황이었는데 여전히 황당하긴 하다. 왜 그랬을까... 변호사가 바본가??


아무튼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불송치 이유서를 스캔했다. 영원히 박제하려고.

어쨌든, 이제 그의 말이 100% 맞다고 해도,

그는 '신혼인 기혼자'가, '목사님의 신실한 아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여자'와 '동의 하'에 키스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동의 하'에 키스를 했다던 여성은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를 했고. 이것이 불송치이유서에 팩트로 박제된 것이다.


뭔가...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무기를 하나 의도치 않게 길에서 주은 느낌이다.



사실 경찰서에 불송치 결정에 따른 이의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을 이 사건에 대한 나 스스로의 출구전략으로 삼으려고 했다. 어쨌든 이 사건을 영원히 붙잡고 있을 수는 없고 나는 또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애초에 성범죄에 대해 최대한 특별하지 않게, 누구에게나 발생 가능한 일이니... 최대한 '일상적으로' 써 보려고 시작한 이 브런치의 글도 그렇게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또 예상치도 못한 일이 발생해서 나의 눈물샘은 다시 터져버리게 되었다. 성추행의 1차적 가해보다 더 아픈.. 더 많이 아프고 비참하고 회복이 힘든... 마치 깨진 유리파편들이 가슴이 다닥다닥 박혀버린 듯한 2차 가해. 그것이 발생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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