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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숨결이 바람 될 때>

by 우유좋아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세라믹 화분.jpg


겨우내 마당에서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한 화분 하나가 결국 깨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라믹으로 된 단단한 화분이 깨지려면 그만한 힘이 필요했을 텐데, 물 외에는 그런 힘을 가할 수 있는 원인이 없었다. 물은 얼 때 부피가 약 9% 늘어난다. 그래서 지난 겨울, 화분 위에 내린 눈이 녹아 흙 속으로 스며들고, 그 물이 얼어 부풀면서 화분에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결국 그 압력이 어느 약한 부분에 먼저 금이 가게 만들고, 그렇게 화분이 깨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플라스틱 화분은 겨우내 모두 살아남았다. 탄력이 있는 플라스틱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마당의 화분들을 보며, 나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이 떠올랐다. 하나는 플라스틱 화분처럼 환경의 변화에 순응하며, 길고 가늘게 살아가는 삶, 다른 하나는 세라믹 화분처럼 환경에 맞서고, 깨질지언정 똑바로 서서 살아가는 삶.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삶과, 현실을 무시하고 꿈과 이상을 따르는 삶.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인지는 내가 답할 수 없지만, 저렴하고 볼품없는 플라스틱 화분보다는, 비싸고 단단하지만 깨져버린 세라믹 화분이 가진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플라스틱처럼 살고 있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세라믹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최근에 읽은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의 저자, 폴 칼라니티는 깨져버린 세라믹 화분처럼 살았다. 문학과 과학을 좋아하던 그는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하고, 영문학 석사학위까지 취득한 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과학 및 의학 철학을 연구했다. 이후 의사가 되기 위해 예일대학교 의과 대학원에 진학하고, 거기서 만난 아내와 결혼했다. 그 후, 스탠포드 대학교 의대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신경외과 수련 과정은 다른 과보다도 힘들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저자가 환자의 두개골을 열고 뇌수술을 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일주일 근무 시간이 88시간을 넘지 않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그는 100시간 가까이 일했다고 한다. 병원에서 거의 살았던 셈이다. 그런 힘든 레지던트 과정의 끝이 보이고, 스탠포드를 포함한 유수의 대학 병원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며 의사이자 과학자로서의 유망한 미래가 보였을 즈음, 그는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말기 암 진단을 받으면 대개 의사든 뭐든, 일을 멈추고 치료에만 집중할 것 같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으며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기 위해 병원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아내와 상의한 끝에 아기를 갖기로 결심했다. 또한, 문학을 좋아했던 그는 한 번도 책을 써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삶의 철학과 투병 생활을 담은 이 책을 집필했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겨우 돌을 지나기 전에, 그는 끝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뒤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30대에 암이라는 큰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 모습을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은 감동적이다. 이 책은 2016년에 처음 국내에 발간된 이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100쇄를 넘기게 되었다.


그의 아내는 그가 세상을 떠난 이틀 뒤, 일기장에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좋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사람들이 지금 아빠를 칭찬하는 말들은 전부 사실이란다. 아빠는 정말 그렇게 훌륭하고 용감한 사람이었어.”


이 책을 읽고 나서야 플라스틱 화분과 세라믹 화분을 닮은 삶 중 무엇이 더 나은 삶인지 깨닫게 되었다. 결국, 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버리지 않는 삶이 가장 값진 삶이라는 것을. 플라스틱이면 어떻고, 세라믹이면 어떠한가? 자기 자신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그의 아내의 말처럼 정말로 훌륭하고 용감한 사람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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