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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을 지키는 삶

평온함으로 위장한 공허함을 다스리기 위해서

by 우유좋아

루틴을 지키는 삶


40대 중반에 이르자, 인생의 전반전은 확실히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남자 기대 수명이 80세 정도니까 앞으로 나에게 남은 삶은 살아온 날보다 적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의식하며 살진 않지만, 이제부터 확률 게임에 들어섰다는 느낌은 든다. 평균보다 더 살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반대일까? 젊었을 때, 재미있게 또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들의 무게감이 점점 떨어진다. 20, 30대에는 개인의 발전, 사회적 성취 등이 중요했었다. 그러니까 대학교, 대학원 합쳐서 10년 넘게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했던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15년이 지난 요즘, 전에 한 일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무슨 일까지는 할 수 있겠고, 어떤 일은 할 수 없겠다는 예상이 된다. 직장 생활에서의 기대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나 할까? 별다른 기대감 없이 살아가는 건 참 슬픈 일이다. 40대 중반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50대는 살아보지 않았으므로 그때가 되면 다른 뭔가가 나타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 시기를 보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직장에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자연인으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나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나는 아주 규칙적인 삶을 택했다. 그냥 별생각 없이, 계속 그래왔다는 게 앞으로도 행하는 이유가 되는 그런 삶이다. 이에 동반되는 큰 기쁨과 슬픔은 없다. 늘 그래왔으니까 큰 어려움과 좌절도 없다. 아마도 일시적이기를 바라는, 40대 중반의 평온함으로 위장한 이 공허함을 일상의 루틴을 지키는 삶으로 다스려보려고 한다.


체중: 성인이 된 후로 이제껏 체중이 거의 일정하다. 스무 살에 70 kg 언저리였는데, 요즘에도 아침 공복에 70 kg, 식사 후 71 kg이다. 체중을 유지하는 특별한 방법은 없지만 삼시세끼를 꼭 챙겨 먹고, 과식, 과음, 야식을 거의 안 한다. 어쩌다 69 kg로 떨어질 때가 있는데 주말에 외식을 몇 번 하면 금새 70 kg대로 회복한다. 72 kg을 찍으면 의식적으로 적게 먹는다.


하루 커피 두 잔: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뒤, 공간이 좀 생겨서 예전의 오래된 커피 머신은 버리고, 새로운 기기를 들여놨다. 아침 공복에, 또는 아침식사하면서 한 잔을 마시고, 텀블러에 한 잔을 더 담아가 일과 중에 홀짝거리며 마신다. 오후 2시 전에 다 마시려고 노력하며, 그 후엔 거의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어쩌다가 하루에 세 잔을 마시는 날도 있는데, 기분 탓인지 정말 카페인 때문인지 밤에 잠이 잘 안 오는 것 같다.


12시간 공복 유지하기: 아이의 등교 시간 때문에 아침 식사를 시작하는 시간은 7시 20분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저녁 식사는 오후 7시 20분까지 마치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서 퇴근한다. 부랴부랴 저녁식사를 준비해서 아이와 같이 식사를 하면 7시 20분 전에 마칠 수 있다. 그 후엔 물이나 차를 제외하고는 다른 음식은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하루 1만보 걷기: 시간을 내서 산책을 자주 한다. 아침 공복에 동네 한 바퀴 20분, 출근해서 오전 일과 중에 10분, 점심 식사 후 20분, 오후 일과 중에 10분 정도 햇빛을 받으며 걷는다. 앉아만 있으면 소화가 잘 안되기 때문에 걸으려고 노력한다. 퇴근할 무렵이면 7~8000보 정도 된다. 집에서 저녁 식사 후 러닝머신 위에서 걷고 뛰며 1만보를 채운다. 낮에 햇빛도 보고, 이 정도 걸으면 몸이 적당히 피곤해서 밤에 잠이 잘 온다.


가족과의 식사: 나는 혼자 살았어도 어차피 삼시세끼를 챙겨 먹었을 사람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내 식사를 준비한다고 생각하며 가족들 식사를 준비한다. 가족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그나마 대화를 할 수 있다. 아내는 내가 한 음식들을 군말 없이 먹는다. 아이가 반찬 투정을 하거나, 밥 먹기 싫어할 때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지만, 그러면서 가족 간의 정이 쌓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루 7시간 이상 자기: 이렇게 살면 졸려서 도저히 11시까지 버틸 수 없다. 9시 반 정도되면 졸리기 시작하고, 10시 반 정도가 되면 참을 수 없이 졸리다. 재미있는 영화나 TV를 보다가도 졸리면 끄고 자러 간다. 잠자리에 들면 5분 내로 잠든다. 침대에 누워서 잠들락 말락 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이 하루 중에 가장 기분이 좋다. 한번 자면 거의 깨지 않고, 5시 반쯤 저절로 눈을 뜬다. 침대에서 좀 꾸물대다가 나와서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고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글로 남기는 이유는 이 루틴들을 계속 지켜나가겠다는 다짐이라고나 할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것들마저 없으면, 왠지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닐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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