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돌아왔다_10.15-16

by 소산공원

1.

돌이 돌아왔다. 저고리가에서 이틀을 보내고 집에 막 가려고 운전석의 문을 여는데 돌이 바닥에 떡하니 있었다. 여봐라는 듯이. 내가 그 바닥을 몇 번을 뒤지고 살피고 손을 넣어 더듬었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라고 친구에게 말하면서도 손이 덜덜 떨릴 만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추측1은 9월 22일 공주에서 인터뷰를 한 이후 유구에서 인디몽몽이랑 꼼장어를 먹고 저고리가에서 자던 날. 돌이 어떤 이유로 차에서 내렸고 저고리가에 있는 많은 돌들이랑 이야기하다가, 이제는 집에 가고 싶어서 올라탄 것. 추측2는 돌하고 나 사이에 거리가 좀 필요해서 블랙홀 같은 곳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좀 평안을 찾아 돌아온 것. 그러니까 나는 돌이 나타나 반갑고 사랑스럽다기보다 너무 놀랍고 당황스러워서 충분히 반기지 못했다. 섭섭했으려나....차원의 문이 자꾸만 열리고 점프를 인지하지 못한 채로 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에브리씽에브리웨어올앳원스>를 봐야겠다는 강력한 욕망이 들어 저녁 표를 예매했다. 영화를 보고나니 이 미친 무한한 멀티우주 안에서 돌이 돌아온 일 따윈 전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아 라따구리...........아아 이 우주 안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웃긴 영화,,,,,,,,,,,,, 얼른 스트리밍으로 나와서 좋았던 장면들 수십 번 돌려보고 싶다. 생각만 해도 막 가슴이 웅장해지고 폴짝폴짝 뛰고. 진규샘 리뷰에서 말한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도 너무 알겠는데, 이 영화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의 장면에서 끝난다면, 총알이 눈알로 변하는 장면, 마지막에 도너츠 앞에서 둘이 결투하려고 각 잡다는 장면, 핫도그 손가락 우주 안에서 이 세상원수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 라따구리 구하러 가는 장면 다 없엇을거아냐...말하면서도 설렌다 후.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 같은 쫄보가 혼자보기는 조금 무서울 만큼 그래픽이 아찔해서, 나중에는 꼭 누구랑 같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바스터즈 처음 봤을 때보다 8배정도 짜릿하다. 다정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 그 말에 거의 멱살 잡히면서 살아가는데 이 영화는 그냥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는 느낌. 진짜 힘찬 다정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아멘.


2.

돌아오는 길에, 섭섭했을 돌의 손을 꼬옥 잡았다. 너도 나를 위해서 이렇게 꼭대기에서 굴러주었구나. 고맙다....... 어제는 좋아하는 친구들의 손을 몇 번이고 꼬옥 잡고 만지작거렸다. 내가 많이 좋아했던 친구는 약간.. 이상한 표현이지만 피부 껍데기가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세상에 그런 것을 만져본 적도 없는, 아 아기만큼! 부드러운 손을 가졌는데 그 손을 오랫동안 다정하게 만지작거렸을 우주가 떠올랐다. <에에올> 대사처럼, 어떤 것을 선택하면서 새로운 우주들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포기하면서(이 또한 선택이긴 하지만) 우주들이 탄생되는데. 그런 포기의 순간들을 지금의 내가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묘하게 버려온 것들이 그리워진다. 허나 이런들 저런들. 내가 앞으로 버릴 것들에 대한 대화를 오랜 밤 동안 나누었다.


3.

나의 포기들이 만들어낸 숱한 우주들이 있다면, 나는 어디쯤에서 살고 있으려나. 양자경은 우주 중에서 가장 못난 우주를 살고 있었는데 (“당신은 무엇이나 할 수 있어, 왜냐면 무엇이든 다 못하니까ㅋㅋㅋㅋㅋ”) 나는 가장 못난 것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를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왜냐면 우주에서 보내준 너그럽고 다정한 친구들을 이미 만났으니까!


4.

이틀을 저고리가에서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친구들이 뿅 하고 사라져있다. 이게 이틀연속이라 조금 당황스럽다. 지난밤의 소란이 마치 꿈처럼 느껴지는 몽롱한 낮을 보냈다. 그래도 모처럼, 이틀이나 늦잠을 자며 에너지를 채우고, 지난주의 너덜함을 회복했달까. 돌을 다시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공세리성당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이라 대형버스를 타고 순례를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지만 그것대로 좋았다. 마침 딱 성당이 100주년이 되었다. 박물관을 돌아보니 1922년 10월에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100년 된 성당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약현성당처럼 압도적인 느낌이 받진 않았지만 스테인레스 창문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밖의 소란과 다르게 본 성당엔 아무도 없어서 넉넉히 기도를 하다왔다. 머리 속을 스치는 모든 친구들의 이름들을 떠올리면서 평안을 빌었다. 제 친구들은 다정하고 좋은 세계를 만드는 걸 돕는 친구들인데요. 이들의 짐을 덜어주시면 저의 짐도 줄어들 것 같아요. 기도를 할 때 손바닥이 아주 커다랗고 편편한 바위처럼 느껴졌다. 돌산처럼 아주아주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는 느낌. 그런 바위를 두 개 겹쳐놓고 부드럽고 힘 있게 밀어내는 느낌.


5.

다즐링북 오픈 기다리면서 산책. 안성천변만 좋은 줄 알았더니 금석천변도 좋구나. 특히 해지는 쪽 하늘이 환히 보이는 길을 만났다. 노을이 예쁜 날 꼭 보러 와야지. 끄트머리까지 걷다가 잠깐 앉아서 하늘을 구경하는데, 강 건너편에서 머리카락이 없는 어떤 사람이 쿵푸 같은 무술,,, 을 연습하고 있었다. 나는 맘대로 하늘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싶은데,,, 그 사람을 보고 찍는 것처럼 느껴질까봐 맘껏 사진을 찍지도 못하고,,,,,,,,


6.

뭔가 오랜만인, 맘대로 한 일요일이어서 좋았다는 일기. 호두와글 글을 전해야하는데 브런치가 안 된다. 카카오 유니버스에 너무 오래 기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브런치를 마지막에 복구하는 것 정말 열 받네. 은행은 재빠르게 대처했으면서! 내 일기 사라지기만 해봐라! 갑자기 든 생각인데 카톡 멀티프로필이 공개 되서 문제가 생겼다는데.. 브런치 작가의 서랍이 공개되진 않겠지?,,, 그럼 큰일이 나겠는데,,, 다른 우주로 가게 되는데,,,,,,,





매거진의 이전글공주 나들이_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