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 문을 닫고도 집에 50분 정도는 또 운전을 해서 집에 가야한다. 운전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요즘같이 추울 때는 엉따, 핸따를 다 틀어놓고 찬바람이 틀어오게 약간 창문을 열어두면 노천탕에 온 기분이랄까? 노래를 무지무지 하게 크게 틀어놓고(밖에서 들어보니 완전 클럽이드만)머리 속으로 오늘의 일기를 정리하고 오면 조금 기운이 생긴다.
일기를 쓰는 나는 좀 수다쟁이 같다.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하고 싶은 말들이 이렇게ㅓㅕ 많을지는 정말 몰랐다. 나는 사실 좋아하고 만나고 발견한 것들을 친구들에게 마구 소개하고 전하는 일들을 좋아하는데 그걸 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충전기 꽂는 심정으로 일기를 쓴다. 요즘같이 늦게 들어오는 날은 바로 누워 자고 싶다가도, 씻고 자면 당연히 개운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씻는 기분으로 일기를 쓰는 것이다. 약간의 좋아하는 것과 애씀이 동시에 있다. 100일만. 올해까지만, 하고 싶은 만큼 매일 해보아야지. 뽀스띠노님이 100일정도 매일 일기를 쓰면 책을 쓸 수 있다고 하셨다. 그냥 그런 심정으로 매달려 있는거다.
그렇지만 정말 신기한 일이 있다. 어제 시내랑 낮에 어죽을 먹으면서 부업이야기를 나눴다. 일을 하면서도 매년 강의라던가 다른 프로젝트들로 조금씩은 부업이 될 만 한 일들을 해왔는데, 올해는 정말 놀랍게도 그런 일이 단 한 개도 없다. 나름 낯선 큰돈이 들어와서 쏠쏠했는데. 여하튼 내년에는 정말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심정으로 할 수 있는 부업을 늘려보고 싶다고, 가령 돈을 받고 글을 쓰는 일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내내 생각을 해왔지만 일기에도 쓰지 않고 처음 말하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날 밤에 바로 글을 쓰게 되는 엄지도장을 찍게 되었다. 너무 당황해서 어 이게모람? 이게모람? 하는데 청중은 웅성웅성하고. 태연하게 넘어가보고 싶었지만 좀처럼 숨겨지지 않는 활활발발한 마음. 말을 뱉으면 언젠간 찰싹 붙는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붙을 일인가? 내 우주 왜 이렇게 농축되어있지? 나 금방 죽나?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고, 그렇지만 왜인지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잘할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들지 않지만, 고독하고 재미난 일이 될 거다. 하고 싶은 말들이 곳곳에 숨어 있을 테고. 난 그것들을 시간을 내어 발굴하고 고르게 가꾸어내고 싶다. 게다가 포도밭전통의 엄지도장을 찍었으니 도망갈 길이 없다.
2.
낮에는 뒷자리에서 매일 아픈 가혜랑 비타민 주사를 맞으러 갔다. 수액인줄 알고 주사를 핑계로 두어 시간 누워있을 겸 갔는데 엉덩이주사..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그럼 효과가 바로 오나요?”했다. 대체 무슨 효과를 얻고 싶었던 걸까. 눈이 번쩍 뜨이는 농축된 체력? 그걸로 일 밖에 더해?
엉덩이주사를 기다리는 동안 15분 남짓 멍하게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를 들고 다닌 지 한참이 되었는데 마침내 이야기를 이해 할 만큼 읽게 되었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이거 내 일기가 아닐까? 다른 차원의 내 아버지의 이야기인가? 너무 좋지만 싫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비타민 주사를 맞고 나면 코로나도 예방되고 피부도 좋아지고 면역력도 길러지고 기운이 난다는데.... 그말을 들어보니 몽골에 다녀온 후로 반짝반짝했던 피부와 아침에 번쩍번쩍 눈이 떠졌던 체력이 이해가 되니 시작했다. 몽골에서 하루종일 빛을 쬐니까 비타민이 듬뿍 스며들었겠구나! 게다가 몽몽이 준 비타민을 매일매일 챙겨먹었구나! 이거 실제하는 비타민의 힘이었구나! 그렇게 믿기로 하니까 몸에 버티는 힘이 꼿꼿하게 선 것 같다.
오늘의 좋은 일
1. 아침에 좌 호옹 우 니나 끼고 1시간 깨잠을 자며 뒹굴거렸다. 비록 그 한 시간 동안 온갖 일에 시달리는 꿈을 꿨지만. 이런 시간 정말 오랜만이라 미안했다.
2. 점심에 로마노 두잔. 첫 잔은 짜서 먹고 두번째는 리트리트커피 로스터리 커피에서 배운대로 먹었다. 둘 다 너무 맛있다. 에프 까페가 동네에 하나만 생겨도 좋겠다. 못 온다면 내가 가지 뭐.
3. 나만큼 불쌍한 장효안이 퇴근시켜주기. 그러면서 목소리 듣기. 이렇게라도 목소리 들으니까 좋기...
4. 가혜랑 커플룩.
5. 몽몽이 보내준 <에에올> 출력용 사진으로 똑같은 바탕화면 만들기. 트위터.. 히히..
6. 퇴근길에 인디가 보내준 눈알 붙인 노동이 사진. 뻥하고 터졌네.
7. 아아 잊어버릴 뻔했네. 시내가 산 동화책 구경하다 사랑에 빠진 것.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길담인가 미정작업실인가..그 책을 훌훌 살펴보면서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식사를 기다리면서 보다 울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바로 내려가 사고 싶었는데 하나뿐인 재고를 챙겨왔다고 한다. 동네책방에서 발견해서 사야지. 선물하고 싶은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도 기분이 좋아지고.
8. 선물에 쓰는 돈에 대한 말..을 언젠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