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갚음의 굴레(아케 펀딩)

by 소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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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신 아저씨와 언니.



나는 언니를 잘 모른다.

사장님을 통해 그를 알뿐이다. 몇 번 만난 적은 있지만 친구가 되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아케언니가 한국에서의 긴 생활을 마치고 필리핀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제야 그를 가깝게 알지 못한 시간이 아까워졌다.


아케 언니는 오랫동안 재신 아저씨의 활동보조인이었다. 나는 아케 언니가 태어나면서부터 활동보조를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활동보조인이 아닌 아케 언니의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소위 말하는 ‘연예인 비자’로 한국에 온 사람이다. 그의 페이스북에 자주 올라왔던 음악 영상들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언니의 아버지는 필리핀에서 꽤 알아주는 가수였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 언니 역시도 음악적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필리핀에선 노래를 부르는 일을 했다. 그러던 2001년 언니는 가족의 생계를 돌보기 위해, 동시에 언니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왔다.


한국으로 온 이후에 언니는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노래를 불렀다. 언니가 가장 잘 부르는 한국 노래는 패티김의 노래였다. 왜인지 물어보니. ‘사람들이 좋아해, 팁을 많이 줘’라고 말했다. 그 시절의 삶은 그야말로 팍팍했다. 밥값도 제대로 안 주면서, 다른 곳에서 일을 하지도 못하게 했다. 에이전시의 횡포에 언니는 결국 도망쳤다. 아마 나의 도망과, 그의 도망의 무게는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낯선 나라에서 일을 하며 언니는 꾸준히 사랑을 했다. 어 떤남자1은 첫 만남에서 자신의 손을 잡으며 ‘내 애인이야’ 했고, 어떤 남자2는 주말마다 만나 노래하며 사랑을 했다. 그리고 어떤 남자3은 26년 전에 만났던 첫사랑이다. 마치 먼 길을 돌아온 인연처럼 자꾸 연결이 되더니만, 매일 영상 통화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의 얼굴을 아직 만져보지도 못했지만,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와의 사랑이기도 했다. 고독한 한국 생활에서 연애와 사랑은 어떤 의미였을까. 언니의 연애 이야기를 들게 되는 것만으로도 이 이야기집에 돈을 들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어떤 남자1을 만나던 2005년 천안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장님의 일터에서 우연히 일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언니가 그 친절한 욕쟁이 사장을 만나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2012년, 욕쟁이 사장은 일이 더 필요하단 언니의 말에 재신아저씨의 활동 보조일을 소개 해주었다. 재신 아저씨는 어떤 남자1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했다. ‘그 생퀴.........’ 마침내 언니는 어떤 남자1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아저씨는 ‘너는 참 바위처럼 단단한 사람이다’ 라는 말을 했고 언니는 그 말 이후로 정말로 바위처럼 살기로 했다.


재신 아저씨와 10년 3개월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2020년 10월에 이별했다. 이별을 말하는 순간마다 언니는 종종 울어서 듣는 나도 코가 멍울 멍울 빨개졌다.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다. 아저씨가 본격적으로 침대 생활을 시작하게 된 2017년 무렵, 몸이 크게 안 좋아 중환자실을 다녀온 후, 병실에서 깨자마자 아케 언니를 보면서 한 말이 있다고 한다. ‘결혼하자.’ 이 말을 정말로 했다는 것인지(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눈빛으로 말했다는 것인지, 텔레파시가 통했다는 것인지. 그 결혼이 우정인지, 돌봄인지 무엇인지. 아무것도 선명하지 않은 채로 언니는 그저 느꼈다고 한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케 언니는 미등록 이주민의 신분이 아닌 채로, 안전하게 한국에서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언니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결혼을 해서 수입이 생기면 재신 아저씨가 받을 수 있는 적절한 지원들이 끊기게 될 거라고. 아픈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이야기였다. 그 마음들은 바위보다 단단한 사랑이었다.


아저씨가 떠날 때, 언니는 병원에 찾아가지 못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잠을 자던 새벽, 갑자기 언니를 부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혀를 차며 ‘츳츳츳’ 하는 소리. 언니는 마지막으로 아저씨가 인사를 하러 온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 순간에 바로 그를 돌보러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서글퍼했다. 그 소리가 지금도 언니의 귀를 맴돈다고.


언니는 오는 11월, 21년 만에 필리핀으로 돌아간다. 그의 어렸던 두 딸들이 훌쩍 자라 아이까지 낳았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손주를 돌보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언니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단 한 번도 놓지 않았다. 켜켜이 쌓아온 사랑으로 어떤 일에도 부서지지 않을 단단한 돌이 되는 일. 바위가 되는 일. 나는 그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 기뻤다.


나는 여전히 언니를 잘 모른다. 그 날 언니가 해 준 이야기를 통해서 언니를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바위 만큼은 아니더라도, 조약돌 만한 사랑의 용기를 얻었다. 만약 조약돌 만큼 언니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면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돈을 내고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 돈으로 언니가 필리핀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물렁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돌봄과 사랑이다. 나는 인디(명재)를 통해서 언니를 알게 되었다. 둘은 서로 돌보는 사이다. 인디가 아케를 돌보고, 아케가 인디를 돌보는 사이. 아케가 재신을 돌보고 재신이 아케를 돌보던 사이. 명재가 재신을 돌보고, 재신이 명재를 돌보던 사이. 그리고 나도 어느 새 그 돌봄의 굴레에 있다. 명재가 소산을 돌보고, 소산이 아케를 돌보고. 아케가 소산의 조약돌을 돌보는. 그런 돌봄의 되갚음.


누군가 돈을 주고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그 되갚음의 굴레에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오래 오래 그 굴레에서 한 마리 조약돌로 구르며 살았으면 좋겠다.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아케 언니와 짧은 인터뷰를 나누고 글로 옮겨볼까해요. 그 돌봄의 굴레에 함께해주세욥.


⦁글은 2022년 겨울에 정리되어 나옵니다. PDF파일을 메일로 보내드려요.

⦁값은 1만원 이상, 돌봄을 갚고 싶은 만큼 보내주세요. 이명재 | 카카오뱅크 | 3333-14-8076111

⦁모인 돈은 아케언니가 필리핀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쓰입니다. 물렁물렁

⦁ 신청 : https://forms.gle/2xomp3ydXoAigmYm8

⦁문의 / 이명재 010-3460-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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