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옷을 꺼냈다. 몇 년간 가장 늦게 겨울 옷을 꺼낸 해가 아니었을까. 니트를 입고 싶어서 며칠 조바심이 났다. 매년 옷을 여러 번 정리해서 버리는데도 옷이 많다. 초록 계열의 니트만 5개…. 가장 오래된 것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몸이 커지고 있다) 카키색 니트, 그다음은 발랄한 연두색의 플랫 한 니트, 연한 연두색의 목티, 찐한 초록의 목티, 작년에 산 보기 드문 초록의 카디건. 니트는 관리하기가 무지 어렵지만, 티셔츠만큼 좋다. 무늬가 없어도 어색하지 않고 막막 매일 입을 수 있다. 좋은 니트를 사야 좀 오래 입는다. 의외로 좋은 니트는 구제 샵에 가야 구할 수 있다. 옛날에 나온 옷들이 소재가 훨씬 좋다. 그중 부드럽고 괜찮은 브랜드의 옷들을 구한다면 오랫동안 보풀 없이 입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막 여기저기 구멍이 나기도 하는데 약간 그런 구석이 좋다. 구멍도 숑숑 나고 그걸 기워서 입기도 하고...
아무튼 7시에 일어나서 겨울옷을 꺼내고 빨래를 세 차례나 돌리고 대청소를 하고 났는데도 10시 30분이다. 볕에 니트를 말려두니 잘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냉장고를 털어 파스타를 해 먹었다. 말라비틀어진 가지와(이게 냉장고에서 잘 말라비틀어지면 건가지가 되는데 이게 좀.. 맛있다) 3주가 지났는데도 전혀 익지 않은 토마토와 분홍 소시지와 마늘과 엄마가 준 명이나물 장아찌를 막 볶아 파스타를 만들어먹었다. 마지막에 노른자를 넣고 훅훅 저어 먹으면 내가 좋아하는 끈적한 식감이 되고 그냥 이래저래 먹을만하게 된다. 와인이 한 입정도 남았길래 같이 먹었다. 그래도 11시 30분...
집에서 1시 30분에 나가야 해서 뒹굴거리다 삼십 분 정도 낮잠을 잤다. 낮잠이라니 사치스러워라... 호옹이 배 아래에 왼 손바닥을 넣어두고, 신지훈과 박소은을 들으면서 잤다. 어쩜 이렇게들 노래를 잘하고 가사들도 잘 써낼까.
아! 가사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해봤다. 그런데 접근방법에 대해 1도 몰라 사실 열심히 찾아보진 않았다. 그렇지만 내 싸이월드 시절의 글들은 노래 가사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시절의 일기는 정말 추상의 절정... 나만 아는 단어들 안에 나만 아는 감정들을 꼭꼭 숨겨놓았다. 지금도 그걸 버리지 못하고 일기 중에 숨겨놓는 말들이 있긴 하지만 밖에 보이고 싶은 글들은 그나마 정돈을 하는 편이다. 어쨌든 가사라는 것은 음악 안에 말을 숨겨놓아도 전달할 수 있는 장르니까. 조금은 어울리게 적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유튜브를 타고 듣다가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젼'이 자꾸 나와서 틀어두었는데, 연출이 구려서 도저히 볼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저런 세계관을 만든 것이며 억지로 mz에 맞추려고 노력한 자막이나 연출 엉엉... 꽤 괜찮은 밴드들이 나온 것 같은데도, 나중에 가면 얼마나 더 구린 연출을 해댈 것인지 상상이 되어서 애정을 갖고 멈추었다. 그렇지만 건진 밴드들이 있지. 좋은 밴드 공연에 가고 싶다! 드럼 연주 라이브로 보고 싶다!
낮엔 송악으로 인터뷰를 갔다가 선명하게 존재하는 자연의 에너지를 느끼는 선생님을 만났다. 애쓴 하루에 집에 돌아가는 길목에 피어있는 꽃에서, 하늘과 흙에서 기운을 얻는 사람. 거기서 받은 에너지를 돌려주려고 노력하는 사람. 송악에는 반딧불이 700마리가 동시에 날아들었던 스팟이 있다고 하는데, 그곳이 복원되면 친구들과 가보고 싶다. 호와 호와 하면서 분명한 기운을 함께 얻고 싶은 친구들.
안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울렛에서 들렀다. 12살의 선물을 고르는데…. 12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다! 무얼 하고, 무얼 좋아하지? 1층과 3층 사이를 몇 바퀴를 돌다가 결국 문구점에 가서 귀여운 것들만 잔뜩 집어넣었다. 12살이란 대체 뭘까? 12살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살도, 11살도, 13살도. 모든 나이의 친구가 있는 사람도 있을까? 매년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날 때마다 1살씩 갱신하는 그런..? 그럼 12살의 선물 경향을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아쉬운 일이다.
오늘의 무한반복 신지훈. 시가 될 이야기.
그래서 속절없이라는 말은 '단념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이.'라는 뜻이라는데, 속절의 어원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다고 한다. '속절' 은 제사 때 외에 풍속에 맞는 차례를 지내는 때(ex. 설이나 추석)를 말한다고 하는데 그게 어찌해서 어찌할 도리가 없이라는 뜻으로 쓰였는지 어원은 모른다고 한다. 상상을 하자면, 명절에 제를 올려야 하는데 도무지 가난하고 궁핍한 살림에 제를 지낼 수 없으니 이번엔 '속절없이 지냈어.' 이런 거였으려나. 어찌할 도리없이 가난한 살림. 가난한 단념.
유의어는 내가 다 좋아하는 말들이다.
부득이하다. 속절없다. 역부득하다. 하릴없다.
윽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