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진탕동지들이랑 오랜만에 삼치와 오뎅 2차까지갔다. 술을 많이 먹기도 했는데, 말을 많이 해서 힘들었다. 말을 하면 후련하긴한데 개운하진 않다. 다시 주워담을 수 있다면 그러고싶다.
아무튼 어제 그렇게 술을 먹고도 7시에 눈이 떠져서 잠이 오지 않았고.. 아침에 양치를 하고 침대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일을 좀 하다가 책도 읽다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뭔가를 하면 남들은 미라클모닝이니 뭐니, 뿌듯해하던데 그런 생각보다는 '나 도대체 뭐하는거지 이 아침에 잠 안자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이런 이상한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일찍 일어나니까 평소보다 기운이 일찍 빠진다. 보통 6-7시가 지치는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4-5시 정도로 당겨진 것 같다. 아유 피곤해!
술 먹고 차를 두고 왔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출근. 그런데 버스타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일인가. 버스 안이 원래 이렇게 예뻤나. 천안에 도착하기 전까진 안성의 시골길을 따라가는 노선이다. 2022년 가을 플리를 들으며 창 밖을 실컷 봤다. 살펴보니 내 플리는 거의 가을에 만들어졌다. 운전을 안하고 움직일 수 있으니 좋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중교통은 무궁화호. 맨 뒷자리 왼쪽 창가에 앉는 걸 좋아한다. 그 다음은 버스의 맨 뒷자리 왼쪽창가. 그 다음은 우등 고속버스 맨뒤 왼쪽 창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지하철이다.
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으면 버스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다. 또, 편하게 양보를 안할 수있다. 지하철을 싫어하는 이유는 외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눈이라도 감는 날엔 마음이 너무 쓰여 내내 불편하다. 게다가 왼쪽 창문도 없고... 아무튼 오랜만에 버스로 출근하니 재밌었다. 술 먹고 두고 온 보람이 있다.
목천에서 가혜랑 시내랑 점심을 먹었다. 시내는 몇년전까지만 해도 도대체 청국장을 왜 먹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이젠 자기가 먼저 청국장을 먹자고 한다. 크면서 입맛이 바뀐다는 것 정말 신기. 할머니가 알아서 메뉴를 챙겨주신다. 손님이 점점 많아져서 혼자 응대하기 힘드시니까, 직접 카드를 결제하라고 주방에서 큰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잉 거기 앞에 카드기 있지? 카드 꽂아. 팔 곱하기 삼은 이십사. 이만사천원 눌러. 그리고 오케이를 눌러. 응응 그래 잘가아'. 귀여워 히히. 잉어빵을 사먹으러 갔는데도 계좌번호를 적어놓고 '셀프입니다. 알아서 가져가세요' 이런 글이 써있다. 아저씨가 시간이 나셨는지 옆에 앉아계시다가 "가져갈까요?" 물으니까 "안 바뿌니까 내가 줄게유"하신다. 히히 귀여워 목천은 셀프의 동네인가봐.
고향산장 산책길로 넘어갔는데 가을이 와글와글 있었다.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떨어지는데 마음이 또 도곤도곤. 작년 딱 이맘때쯤에 지금처럼 친구들이랑 밥 먹고 산책을 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일을 하는게 무지무지 좋았다. 돌탑에 별 것 없는 줄 알면서도 돌탑까지 또 걸어가고, 작년에 앉았던 의자에 앉아서 작년에 찍었던 사진과 비슷한 사진을 찍고. 이거 되게 좋은거구나. 좋아하는 장소를 매번 다른 계절에 가는 것도 좋지만, 매번 갔던 시기에 다시 가봐야겠다. 시간 뒤에 길게 줄을 선 느낌이었다.
가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뒷자리 쟁탈전)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했다. 시간을 들여 해야하는 일이 하나 있지만, 어쨌든 마음이 훨씬 편해서 이것저것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돌봤다. 이렇게 다정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나 싶었는데 그놈들이 또 소변기에 물을 채우고 있다. 벽면에 글을 써붙여놨는데도 정말. 정말 그게 그렇게 어렵냐고ㅠㅠㅠㅠㅠ 아 정말 변기를 부셔버리고 싶었는데 진짜 이새끼들은 소변기의 부스러기만 봐도 오줌을 갈길 놈들 같다. 하 어떻게 다정하게.... 가르치나. 오줌싸고 있을 때 막 그냥 들어가서 뒤에 줄 서 있어볼까. 폴리스라인이라도 쳐놓을까 후. 진짜 이제는 오기가 생겨서 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이러다 정말 소변기없애기운동본부 만들 것만 같아 후하.
잠시 짬이 나니 역시 부지런히 일을 벌이게 된다. 호두친구들하고 천안의 노포를 모아서 이야기로 엮어 책을 만들기로 했다. 돈도 안되는 이런 일들을 왜 도대체 이 바쁜 시기에 벌이냐구! 그치만 이제는 우리는 제법 주제를 알아서 시간을 오래 들여 만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goeul 강릉편>을 보고 좋은 가게들을 기록하고 모아둘까 싶어서 제안을 한 것이었다. 지난 회의엔 각자가 좋아하는 공간들을 조사해서 공유했다. 10개를 채우기가 힘들어서 조금 좌절… 이렇게 오래 산 동네에서 좋아하는 공간이 별로 없다니…. 그치만 그걸 나누고 공유하는 시간이 너무 재밌었다. 각자가 가진 이야기들이 있고, 모아보니 꽤 오래된 가게들이 많았다. 회의를 하다가 새로 생긴 가게들보다는 오래된 가게들 중심으로 풀어나가기로 했다.
fast 천안. 성무용 시장 시절에 도시의 슬로건이었는데, 그것만큼 천안을 설명하는 탁월한 단어는 없는 것 같다. 빠른 도시. 나는 1999년, 천안에 아파트가 막 생기던 시절에 이사를 왔는데 지금은 그 동네도 꽤 큰 가로수가 자라는 낡은 동네가 되었다. 논밭, 산, 공동묘지였던 곳엔 전부 빼곡히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지금도 오래된 동네를 깨부수며 아파트를 짓고 있는 도시. 프랜차이즈가 테스트를 하러 오는 소비도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애정을 붙일 수 없는 이유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낡은 것을 소홀하게 대하는 도시에서 오래된 가게들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우리도 노포가 있다! 회의를 하고 보니 어렸을 때부터 찾아가던 곳, 조금씩 커지긴 했지만 예전의 맛을 지키며 장사를 하는 곳, 영혼을 담아 운영하는 곳, 동네를 오래 지키고 있는 곳 등 이야기를 가진 공간들이 꽤 있었다. 패스트천안에서 그나마 속도와 균형을 유지해주는 곳들. 그런 공간을 찾아다니며 기록을 하는 건, 우리가 이 도시에 애정을 붙이고 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외부의 여행객이 아니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될거다.
일년 동안 찬찬히 밥을 먹으며 다녀야지. 여러가지 재미난 특집들도 있다. 기대하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