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ㄱㄴㅁ_11.09

by 소산공원

재미있는 머리를 했으니, 웃고 있는 편이 조금 더 보기가 좋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 놓친 계약도장을 다시 찍으러 센터에 들렀는데 이 머리를 하고 계약을 하러 가는 어른...이라 생각하니 조금 창피하고 웃음이 났다. 시내와 가혜에게 전날부터 놀리지 말라고 약속을 받았다. 놀리진 않았는데 시내가 한참동안 나를 쳐다도 보지 못하고 눈을 피하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오후에는 어려운 일이 있었다. 속상함, 화남, 이런 단어들이 스쳐지나갔는데 결국엔 어려운 일. 이라고 말하기로 했다.

일이 한번 어랏- 하고 어긋나기 시작하면 끝까지 문제가 생기긴 하던데 역시나 그랬다 :)

몇 차례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고는 한참동안 부들부들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대할 일이 아닌데 화가 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메모장에 나눌 이야기를 기록하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사장님한테 전화를 했다. 막상 전화를 하려고 보니 할 얘기는 별로 없었다. 이럴 때 사장님은 명확한 답이나, 지레 오바하며 공감하는 척도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말한다. 일하다 보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사과나무가 그런 경험이 적은 편이긴 하지만, 이 일을 하다보면 숱도 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러니 훌훌 털어버리고 다른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마침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만약에 내가 힘든 일을 겪을 때 문제 상황을 조목조목 짚어내거나 나에게 불편함을 주었던 사람을 함께 욕하게 되면 어딘가 쪼그라든다. '사실은 그런 것은 아닌데... 나도 뭐 잘못한 부분이 있지..'라는 생각. 문제를 그렇게 납작하게 본다면 결국엔 미운 감정만 남기 때문이다. 사실 일하다가 힘든 일은 전에 훨훨씬씬 더 많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진짜 별로였어'라는 감정만 남아있지 세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배운 것도 없이 싫은 사람만 생긴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한 감정이 나아지지 않아, 찬찬히 생각했다. 왜 내가 지금 이렇게 서운한 마음이 들지?

1. 작업에 대한 노고를 충분히 이해받지 못해서 >> 이건 그럴 수도 있어 뭐.

2. 서로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오해가 있어서 >> 이건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였으니 다시 이야기를 하면 된다.

3. 작업물이 잘못나와서. 만족하지 못한 결과물 때문에 >> 이거다. 그렇담 이 과정에서 내가 놓친 부분은 무엇이지? 내가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건가? 그렇담 내가 게을렀구나.


이런 과정을 거친다. 사실은 제작물이 잘 나왔더라면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일텐데. 이 과정에서 내가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책임을 지면 될텐데. 커뮤니케이션의 오해는 조목조목 따지기보다는 서로 작업중에 어려웠던 점들을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그리고 이런 한계상황들이 있으니 우리가 해낼 수 있는 부분은 이정도였다, 라고 말했으면 좋았을텐데. 마음을 고쳐먹는다.


조금 가라앉히고 메시지를 보냈다. 전보다 좋은 답이 돌아왔다. 앞으로는 해결하면 되는 일이다. 내가 다치지 않게 돌봐야지. 게으르지 않게, 나아가야지.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어쨌든 서로의 어려움과 실패를 감내하는 사과나무의 힘 덕분이다. 혼자 이것을 메운다고 생각하면 아마 서로의 책임을 묻는 공방이 이어지고 너덜너덜한 감정만 남았을 것 같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돈으로 하면 돼. 우리는 더 괜찮은 작업, 더 나은 삶을 가꿔나가면 돼.


여튼 덕분에 남은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내일은 지리산에 간다. 지리산에 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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