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_11.15

by 소산공원


소산원으로 도망자가 온다는 소식에 도서관에서 일을 했다. 문 여는 시간에 출근해 약간 미뤄두었던 웹포스터 작업을 하고 혁신살롱 글을 업로드 했다. 전혀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영역인데 게시판에 형식에 맞게 글을 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웹과 모바일에서 예쁜 레이아웃을 찾아가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재능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동일 규격으로 같은 내용들을 적고 사진과 강조할 문구를 고르고, 적절한 위치와 간격들을 조정하는 일도 어렵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 일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나 경험해봐야 세부 분류들이 나눠지는 것 같다.


그래도 글을 올리고 인터뷰이분들께 전하고 좋은 피드백도 받았다. 뿌듯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글을 만들었으니 열심히 배포해야지! 어제까지만 해도 일하기가 무지 싫었는데 기운이 길어올려졌다. 다행이다. 몇개의 일을 더 처리하고 도망자를 만나러 나의 엄살원 저고리가로.


세시가 넘어서 밥을 먹었다. 예산역 앞에 역전앞해장국집 맛있도라! 만나자마자 우다다다 수다와 엄살들을 늘어놓았다. 도망자랑 얘기하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대체로 같은 고민 안에 있기 때문이다. 도망자가 힘들어하는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세상의 모든 즐거웠던 기억들이 사라지고, 평생을 그 구멍 안에 빠져 살고 있다는 느낌. 허우적거리는 마음. 그럼에도 벗어나고 싶은 의지가 조금도 생기지 않는 그런 순간들. 도망자의 오랜 엄살원이 되고 싶다.

그렇지만 저고리가에선 도망자보다 내가 더 많은 엄살을 떨었다. 사장님과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일, 결국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일에 오래 애 써온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시간으로 태워버린 마음들과 나의 그릇을 가늠하기.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멀어지거나 사라지는 존재들이 아닌가. 우리는 적어도 함께하는 시간 안에서 다정하자고. 바등바등 하더라도 서로의 다정을 응원하는 존재가 되자고. 낮에 국밥집에서 도망자와 나눈 이야기와 같았다.


도망자를 엄살원에 맡겨두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날씨의 요정과 해파리소년을 들었다. 네비개놈이 안성으로 가는 최악의 길들만 안내해주어 돌아돌아 집에 도착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집에 오는 길에 계속 생각했던 것은 화엄사의 종소리였다. 타종횟수를 검색하다가 이런저런 글들을 보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더듬고 싶은 글이 하나 있었다.



범종을 칠 때 나오는 소리는 음(音)이 아니라 성(聲)이다. 다시 말하자면 종음이 아니라 종성인 것이다. 이것은 우레 소리를 뇌음이라 하지 않고 뇌성이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이 입술이나 혀를 움직여 조작해 만든 소리를 발음이라 하고, 악기를 음계에 따라 소리를 조합해 내는 것은 음악이라 한다. 불교에서 음교(音敎)라 하는 것은 음성으로써 교법을 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음교는 불법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일 뿐 불법 그 자체는 아니다. 종을 쳐서 나는 성은 결코 꾸미거나 조작된 소리가 아니다. 체가 본체적 존재로서 형이상적이라면, 용은 오관(五官)으로 감지할 수 있는 현상으로 형이하적 세계에 속한다. 범종을 쳐서 나는 소리는 곧 체를 드러내기 위한 용이요, 범음(梵音)을 듣게 하는 일종의 방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이 글을 보고도 역시나 다정과 태도에 대한 생각을 했다. 사람의 본체를 드러내는 것은 결국엔 말과 몸뿐이다. 그 말과 몸이, 본질의 메시지와 닮아가도록 하는 일은 자신을 가담으며 완성해나가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수단이라도 다듬는 것,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는 것, 좋은 성(聲)을 꾸며내는 것, 지어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억지로, 사람다운 일을 조금했다. 막상 뱉어보니 억울하지 않았다. 조금 더 사람인체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나저나 몇가지 일들을 미뤄서 속이 다 시원하다. 당분간은 균형을 찾으며 일을 해야겠다.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ps.

이렇게 일기가 추상적인 날은 비밀 일기를 쓰는 날이다. 비밀일기를 씀에도 불구하고 보여지는 일기를 쓰는 이유는 내가 얼마나 다르게 말할 수 있는지, 기망할 수 있는지 보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리산 여행_1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