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15분 눈 또 번쩍. 바로 일어나 포트에 물을 올려놓는다. 물이 끓는동안 고양이 밥 그릇을 닦아 새 밥과 새 물을 놓아준다. 요새는 아침에 배가 고픈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컵스프를 해먹는데, 컵스프 봉지를 탁탁 터느 소리에 니나가 달려온다. 비닐 소리는 기가막히게 알아차린다. 따뜻한 물과 스프를 챙겨서 노트북 앞에 앉는다. 오늘은 양다솔의 첫 뉴스레터가 나오는 날이다. 양다솔의 책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지만 올해의 명심문 '네, 하고 합니다'를 가르쳐준 사람이라 처음으로 구독을 해봤다. 아침마다 좋은 글들을 찾아 읽는 습관이 생기면 좋을 것 같다.
얼마 전에 삼성에서 직원들에게 성과급 10만원을 그것도 포인트로 주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마도 그 기사를 보고 쓴 글인 것 같았다. 모두가 주먹을 턱치며 분노하지만, 뒤돌아서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회사 생활 안에서 홀로 허리돌리기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세상의 혼잡함에 한 발짝 떨어져 관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존재함으로서 자기 위안을 삼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각자도생의 공간에서 가장 고고해서 더 슬픈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낮에 시내랑 귀여운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12시 10분에 나갔는데 돌아와보니 2시. 프랑스인이 따로 없다. 그나마 일이 적당하게 있다. 무지무지 좋아서 일부러 느릿느릿 일을 했다. 내일 주문한 소파가 온다는 것을 알고 5시부터 사과나무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구판장을 한차례 접은 후 사과나무 창가 선반에 물건들을 진열해두었는데, 관리를 하지 않아 먼지가 뿌옇게 앉고 물건들이 엉망진창으로 쌓여있어 늘 거슬렸다. 물건들을 박스에 싸그리 때려넣고, 모듈선반을 옮기고, 바닥을 쓸고. 때려넣은 재고들을 다시 꺼내서 본격적으로 정리하고 분류하는데, 갑자기 큰 현타가 왔다. 내가, 우리가 대체 뭘 한거지. 제로웨이스트를 한답시고 이렇게 많은 물건의 기한을 관리하지 않아 결국 버리게 만들고. 새로 들여서 쌓이게 만들고. 그냥 시도를 해본다는 이유만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좀 많이 부끄러웠다. 어떤 목적을 위해선 아무 것도 안해야 될 때가 있고 참아야할 때가 있는거다. 언제나 시도가 좋은 것이 아니다. 이 마음을 나누고 얘기하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올해 안에 정리를 하자고 얘기를 했다.
아무튼 단톡방에 말하고, 갑자기 사과나무에 재고를 맡겨두고 나몰라라 하는 놈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시내랑 낮에 나눈 이야기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일을 도모하는 것은 언제나 결국엔 자신을 수행하는 일이다. 나의 기대와 타인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 하고 있는 일들과의 간극을 좁히는 일. 그럼에도 나의 최선과 기대를 탓하지 않는 일. 결국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이 사람들과 오래 함께하고 싶으니까. 계속해서 마음 안의 소요를 달래고 잘해보려고 애를 쓰는 것. 그러다 작년인가 올 초인가. 생색을 내고 싶은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이거 진짜 큰일이구나. 좃됐구나. 누군가가 나의 공을 세우자고 주장하면, 그 관계엔 균열이 생긴다. 그 마음을 잠재우느라 고생했던 시간이 잠깐 있었다. 이런 맘이 들 땐 좋은 생색을 내야한다. '나 이렇게 고생했으니, 너네 당장 나에게 고맙다고해.', '고마워~'. '응 그래~.' 좋은 생색내기엔 훈련이 더 필요하다. 가까울수록 더 많이 말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하다. 그렇지만 늦었으니 내일해야지.
연말이 되니까 슬슬 내년엔 뭘 해야지~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내년 나의 목표는 '뭘 해야지'가 아니라 '뭘 절때 안해야지, 일 벌이지 말아야지.' 이다. 꼭 하고 싶은, 해오던 몇 가지 일들만 빼고 정말 일 벌리지 말아야지! 할 수 있어도, 할 줄 알아도 참아야지! 그것만 해도 이미 마음이 바쁘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차에서 돌아오는 길에 겨울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만추 여행을 보내서 그런지 이제 가을이 충분하다고 느끼기도 했는데, 인내심 강한 길엔 아직도 벚나무 단풍이 달려있다. 그래- 네가 버틸 때까지, 나도 충분히 누려야겠다. 모든 인내하는 것들이 아름다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