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아침_11.19-20

by 소산공원

오늘의 아침은 도망으로 썼다. 공룡에서 즐거운 밤을 보내고 반쯤 잠이 들었다. 새벽녘엔 선잠을 자면서 모기가 있구나 자꾸 무네... 어랏 또 눈에 물렸네...하면서 꿈인듯 아닌듯 지나왔는데 거울을 보니 양쪽 눈이 밤탱이가 되어있었다. 꿈이 아니었구나! 이 겨울에 왜 모기가 있담! 한달전쯤, 공룡식구들을 만날 때 선 채로 눈에 모기를 물려 고생했는데, 공룡에 와서 또 이런 일을 겪다니! 이 쯤되면 영길샘이 나 잘 때 모기침을 눈에 쏜 것이 분명하다 . 여하튼 이번에는 양눈이 밤탱이가 된 채로 낯선 사람들을 만날 자신이 없었다. 도망갈 기운이 생겨 아델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공룡을 나섰다.


청주에서 진천의 시골길을 통과하면 안성까지 국도로 갈 수 있다. 돌아가는 길엔 진천 종박물관이 있다. 화장실이 급해 들리게 되어서 변기에 앉아있는데 뎅.... 하고 깊은 종소리가 들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내려놓을 것이 없는데 뭘 더 어떡해...... 안성에 근접해선, 배티성지에 들렀다. 전에 한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다. 꽤나 규모가 큰 성지였다. 안에 예배당에 들어갔는데 커다란 공간 안에 아무도 없었다. 성지의 이야기들이 담긴 촘촘한 스테인드 글라스들이 멋졌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또 바위같은 손을 쥐곤 기도를 했다. 나의 고독, 나의 미움과 마음. 그리고 또 상상할 수 없는 고통들과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리며. 따뜻하고 풍성한 기도의 시간을 보냈다.


안성에 도착해 집 앞에서 국밥을 먹고 씻고 누웠는데도 겨우 12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에 커다란 기쁨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주말이 길어지는구나!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2시. 영화를 보고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산책을 했다. 오랜만에 안성천 2코스 걷기. 너무 오래 누워있어 허리가 계속 아팠다. 겨울의 천변엔 사람이 적었다. 다음주엔 꼭 운동을 시작해야지.


어제의 공룡은 체인지온 컨퍼런스를 핑계로 한 데낄라 모임이었다. 체인지온을 시작할 땐 너무 졸려 도망가고 싶었으나........끝나고 나니 공룡의 친구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왜 이렇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공동체나 운동을 위해 애를 쓰지? 늘 존경하는 측면과 동시에 안쓰럽고 심지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애끼는 마음이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고 안전했으면 좋겠으니까. 그렇지만 영상을 기록하는 활동가라는 것은. 내가 상상하는 속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투쟁의 현장의 속도에 맞게 기록해야하는 일. 순간마다 같은 호흡을 하고, 그 움직임을 담기 위해 먼저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으니 늘 긴장하고 준비해야하는 사람들. 설해샘이 왜 이렇게 절은 다리로 항상 뛰어다니면서 헐떡이는지. 왜 이렇게 몸이 아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놓지 못하는 것인지. 아픈 채로 사는 것인지. 그 이유들을 조금은 알 것 같아서 아프고 고맙고 또 멋졌다. 이들의 곁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보다 더 자주 안부를 물어야지. 카라멜 커피 함께 먹으러 가야지. 달력사야지.


그나저나 청주는 여러모로 멋지다. 오래된 동네와 집 나무들이 골고루 남아있다.

구본주 전시도 못봤으니까.. 조만간 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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