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돌, 말_11.23

by 소산공원

1.

아침 출근길에, 좁은 동네를 벗어나 큰 길로 들어서는 길 가운데 내 주먹보다 조금 큰 땃쥐가 앉아있었다. '굉장히 존재감이 큰 쥐네..'생각하며 쥐 옆에 차를 잠깐 세우고 내려다 보았다. 당연히 도망갔겠거니 생각했던 쥐가 그 자리에서 몸이 들썩거릴정도로 크게 호흡하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피를 흘리거나 어딘가 다친 것 같진 않았다. 길을 건너던 중에 바퀴에 채였거나 어딘가 깊은 내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잠깐 쥐를 바라보다가 뒤에 차가 와서 그대로 길을 가다가 다시 차를 돌려 쥐에게 갔다. 뒤에 오던 차 바퀴에 깔려도 이상하지 않은 위치에 있었지만, 다행히 뒷 차의 운전자도 쥐를 봤는지 그대로였다. 차를 옆에 세우고 지나가던 동네 개를 쫓고, 오래 쥐를 들여다봤다. 차가 자주 드나드는 길이라 흙으로 옮겨주고 싶어 쇼핑백과 마른 수건을 꺼냈다. 마른 수건으로 쥐의 옆구리를 살짝 쥐고 쇼핑백 안으로 밀어넣으려는데 도망가고 싶은지 양 옆으로 몸을 마구 뒤집었다. 그러다 겨우 쇼핑백 안으로 들어갔는데 손바닥의 힘이 남았는지 쇼핑백의 끝부분을 꼭 쥐고 매달려 버둥거렸다. 네가 납작해지지 않았으면 싶어, 조금만 참아주렴. 하고 중얼거리며. 근처 화단에 쥐를 내려놓았다. 흙바닥에 코를 킁킁 대더니 이내 계속 거친 숨을 내쉬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버둥거리다 이내 포기한 몸. 눈빛. 한 생명이 구체적으로 꺼져가는 순간. 조르바가 생각났다.


어제밤에 쓰려다 차마 완성하지 못한 글이 있다. 그건 정면으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에 대한 것이다. 사진드라이브를 보다가 첫번째 병원에서 받은 조르바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이걸 읽을 수가 없다. 하얀 뼈와 구불구불한 내장이, 거대한 공허가 무엇을 말하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나는 조르바 사라진 자리들만 생각을 해왔는데, 조르바의 아픔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생각해오지 않았다는 걸, 외면했다는걸 또 알게 되었다. 1월이 되면 작년의 일기들을 다시 들여다보아겠다고. 그 때 마주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지냈는데 오늘 이 쥐를 만났다. 외면하지말고. 들여다보렴. 네 앞에 마주한 고통을 돌보렴. 너는 계속 나에게 말을 걸고 있구나.


퇴근을 하고 쥐를 뉘어주었던 화단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놓아준 곳에서 한 뼘정도 거리가 있는 마른 메리골드 풀 틈새로 들어가 눈을 감고 있었다. 그 까만 눈은 마지막 순간의 최선이었구나. 쥐들도 이렇게 눈을 감을 수 있는거구나. 혹시나 싶어 손가락을 대어 몸을 만져보았다. 차갑게 식은, 만져본 적이 있는 굳은 몸이었다.


2.

많은 존재들이 쉴 새 없이 죽는데, 그 시간을 마주하는 일이 인생에 몇 없다는 건 돌이켜보면 조금 이상한 일이다. 출퇴근하는 길엔 쥐보다 더 큰 것들이 매일 새로운 자리에서 새롭게 죽어나가는데. 먹이가 되느라 죽는데. 이웃들은 일하다 죽고, 외로워서 죽고, 돈이 없어서 죽는데. 길에서 죽고 전쟁으로 죽는데. 길에서 우연히 만난 쥐도 이렇게 고통스럽게 구체적으로 죽는데. 모두가 죽어버려서 살아있는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울까봐. 살아내라고. 마주할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 신이하는 일일까. 오늘은 왜 실패를 보여준 것일까.


3.

이 죽음들은, 이 고통을 쥐고 놓지 말라고 말을 건다.


4.

조르바를 화장할 때 뼛가루로 보석을 만들 수 있다는 안내를 받은 적 있다. 그런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도 해본적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자꾸 돌이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보석이 아니라 그냥 돌멩이로.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나보다 더 오래 남는 것으로. 오래 구르는 것으로. 그러다 누군가의 손에 쥐이는 것으로.


5.

내가 쥐었던 숱한 돌멩이들은 사실, 누군가가 죽고 다시 태어난 오래된 땅. 오래된 고통. 가만히 만져보는 고통의 무게들.


5.

돌이 다시 돌아온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만 같았는데..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엔 이상한 길로 돌아가는 바람에 휑뎅그렁하게 날라가버린 일봉산을 보았다.

그럼 일봉산의 쥐들은 어디로 갔을까. 돌들은. 지도로 남겨두었던 나무와 존재들은. 아무도 그 구체적 고통을 모른 채로. 그렇게 없어져버릴 일이었구나 결국 터널이 없어지려면 터널을 뚫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산을 삭제해버리는 일 밖에 없구나. 그런 세계 안에 있구나.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것을 너희도 주고 있냐는 물음. 말들이 부끄러워지는 날들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불란서의 점심_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