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정도 되었겠거니 했는데 29일이 되었다. 명절이란 이벤트로 핑계를 대기엔 오래 게을렀다.
나는 생각보다 빈둥거림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일 년에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날이 아마 일주일도 되지 않는다. 혼자 시간을 보낼 때도 근처 카페에 가거나 멀리 나가서 산책을 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즐거울 때는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무언가를 읽거나 쓰거나 볼 때, 청소를 하거나 요리를 할 때이다. 나머지 시간들은 거의 낭비라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집에 가만히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29일이나 빈둥거려 버렸다. 출근 스트레스가 없으니 밤늦게까지 놀다가 오전 느즈막히 일어난다. 난방비를 아끼려고 춥게 살아서 일어나도 이불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다. 누워서 삼십분에서 한시간 정도를 뻐긴다. 원래부터 영상보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고 게을러지기 쉬워서 일부러 유튜브를 멀리하고 있는데, 요샌 넷플릭스를 보고 있다. 응답하라 1988을 드디어 보고 너무 뒤늦게 박보검의 잘 생김에 빠져버렸다.
고양이들이 외출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일같이 청소를 해야한다. 왜 매일 쓸어도 먼지와 머리카락이 눈에 보이게 뒹굴어다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쓰는 것은 조금은 패턴이 되었다. 걸레질은 정말 좋아하지 않는데 미리밀대를 산 이 후로는 전보다 자주하는 편이다. 옷장은 이틀에 한 번정도는 꺼내어진 옷들을 모두 개어넣는데 늘 지저분한 상태이다.
빨래는 4번정도 했다. 화장실이 좁아서 세탁기를 둘 곳도 마땅치 않고, 혼자사는데 세탁기는 무언가 사치스러워서 두지 않기로 했다. 이불같은 것은 세탁방에 가서 돌리고 작은 빨래는 노달에 가서 하고 집에서 말린다. 애들이 이불에 오줌을 싼 바람에 세탁방에 2번 갔다. 이렇게라도 집 밖에 나갈거리를 만들어두어야 무언가 안심이 된다.
살이 쪘다. 외식은 덜하는 편이긴한데, 먹는 양이 늘었다. 클라이밍도 못하고, 걸을만한 계절도 안되어서 그냥 먹는 족족 살로 붙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안되겠다 싶어, 미루던 요가도 등록했다. 상상하던 그런 요가(...)는 아니었지만 몸을 움직이니까 확실히 상쾌하고 의욕이 돋는다. 오늘도 싫었지만 결국 요가를 간 덕에 일기를 쓰게 된다.
책은 6권 정도를 동시에 읽고 있다. 내리막길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는 한 달 넘게 진도가 나가지 않다가 겨우 막바지다. 사놓고 읽지 않는 책들도 수두룩한데 작은 도서관에서 또 책을 빌려왔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어쩐지 빨리 읽게 된다. 자학의 시를 또 읽었고, 두 권정도 가벼운 책을 완독했다. 소설책 한 권을 읽고 있는데 소설은 어떻게 읽어야 할 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일단 뭘 읽고 있는지 기록이나 하고 싶어서 작년에 시내가 알려준 '산책'이란 어플을 활용해볼 예정이다. 올해는 무언가 쌓아가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 목표다.
미뤄놓았던 몇가지 일을 했다. 갱신기간을 훨씬 넘은 운전면허증을 재발급 받았고, 자동차검사도 했다. 여권도 갱신하고 밀린 공과금도 냈다. 실업급여도 신청을 했다. 실업급여를 얼마나 받게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로 구직활동을 할 예정이다. 돈 버는 일로 디자인 작업을 두 건 정도 했다. 디자인일에서 멀어지는 것이 막연한 희망이자 로망이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앞으로 살길이 생각보다 막연한데 실업급여란 제도가 있어서 진짜로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아마 29일이나 게으를 수 있는 것은 그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대한민국 만만세 고용보험 만만세다.
실업급여 덕에 시간이 많이 생겼다. 나에게 시간이 많이 생긴다면 어떻게 살지 궁금하다. 매일 여덟시간씩 일을 하는 대신에 살림을 하고, 미루지 않고 공과금을 처리하고 몸의 시간들을 쌓아보고 싶다.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조금 기쁘게 해보고 싶다. 만약 이 시간이 허울렁너울렁 흘러가버리면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는 대지도 말아야지. 그런 나는 조금 더 더 혹사당해도 싸고 살 쪄 있어도 싸다.
아무튼 정말로 구직활동을 할 예정인데, 워크넷사이트로 이력서를 넣는 일 말고 이력서를 잘 써보는 일을 해보고 싶다. 20대 치곤 정말 운이 좋아서 나는 그럴싸한 이력서를 제대로 한 번 써보지 않은 채로 직장을 다녔다.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막상 이력서를 쓰다보니까 참말로 재미 있었다. 내가 겪어온 일과, 장점과 단점, 가정환경 등을 글로 적으라니 막 심장이 두근거렸다. 안 그래도 정리하고 싶었던 것들이라 재밌게 써보고 다음 일에 실마리를 얻고 싶다. 이런거 하라고 준 구직활동비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