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구조를 바꾸었다. 라기보단 방을 통째로 옮겼다. 거실 곁에 딸린 작은 침실을 기존에 손님방으로 쓰던 애매한 위치의 넓은 방으로 옮겼다. 밤 10시 반에 일어난 일이다. 기운이 나지 않을 때 가구 위치를 바꾸는 꽤 좋은 버릇이 있어서 이제 침대 하나 혼자 옮기는 것은 거뜬하다. 가구를 옮기고 6개월 째 떼지 않은 샷시 보호 필름을 제거하고 창틀도 닦으니 한 시다.
가장 좁은 방에 침대, 화장대(?), 서랍2개를 욱여넣고 살았는데, 도대체 왜 그랬는지 이유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방을 옮기니 동선도 훌륭하고 아침 해가 잘 들어올 것 같다. 아침에 해가 쏟아져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나저나 3월이다. 마치 이렇게 평생 살아왔던 것처럼 이전의 일상들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백수의 생활은 쉽게 익숙해지고, 매일 다짐하고, 쉽게 젖고, 매일 죄책감을 느낀다. 매일 동기부여를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하루가 바스러진다. 출근하지도 않는데 침대에서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도무지 일어날 이유가 별로 없어서 요즘은 열심히 밥을 해 먹고 있다.
늦은 점심을 먹는다. 보통 새벽에 먹고 싶지만 죄책감이 들어 미뤄뒀던 음식을 먹는다. 그래야만 일어날 동기부여가 약간이라도 생긴다. 요리를 하면서 프렌즈 한두 편을 본다. 밥을 빠르게 먹는 편이라 밥 먹는 동안은 만화책을 본다. 책 넘길 시간이 필요해서 천천히 의식적으로 먹게 된다. 깔끔한 편은 아니지만 설거지 쌓이는 것은 싫어서 다시 프렌즈를 보면서 설거지를 한다. 그러면 보통 1~2시간이 걸린다. 먹고 간단하게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청소를 하면 금방 해가 질 시간이 된다.
마트가 일찍 닫으니까 부리나케 장을 본다. 동네나 시내의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본다. 고기는 손님이 올 때나 사 먹는 편이고, 의식적으로 멀리하고 있어서 장을 볼 때도 채소 위주로 고른다. 서천김은 선물하고 싶을 정도로 맛있고, 지역에서 나오는 두부나 달걀 위주로 구매한다. 2월에 가장 자주 먹은 채소는 봄동. 아주 저렴한 편이고(요새 값이 조금 올랐다) 국을 끓여도 좋고, 쌈을 싸먹어도 좋다. 부침가루와 메밀가루를 약간 섞어서 전을 부쳐 먹어도 맛있다.
장을 보고 밥을 준비하면 또 해가 져 있다. 그럼 또 밥을 먹고 밥에 어울리는 술을 먹으면 훌쩍 9시가 되어있다. 8시는 몰라도 9시면 자야 할 시간에 가까우니까 잘 준비를 시작하고 남은 술을 먹거나, 혹은 새로 꺼내먹으면서 책을 보거나 영상을 보거나 SNS를 하다 보면 어느새 12시가 넘어있다. 도대체 이게 무언가. 이 평안함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죄책감이 들다가도 이렇게 살면 왜 안 되는지. 혼자 달리기를 하면서 막 싸운다. 먹고, 운동하고, 적게 일하는, 그렇게나 꿈꾸던 일과를 보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하루가 아까울까. 실업급여가 없었더라면 아마 금방이라도 일에 핑계댈 수 있는 세계로 도망쳤을거다.
수급조건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적당한 일을 찾는 것이 내 일상엔 필요하다. 돈 받는 일이 아니라도 좋으니, 일을 벌리기 위해 애써야겠다. 남들이 주지 않는 일 하기, 출근 시간 없이 아침에 일어나기를 목표로 3월을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