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항상성

by 소산공원

모두가 그렇듯 반대의 속성을 가진 것에 매력을 느낀다. 게으른 나와 가장 반대편에 존재하는, 꾸준하고 성실한 태도로 사는 사람들. 한 가지 일이나 운동을 오랫동안 하는 사람들, 일상의 루틴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한다. 요령 없지만 작은 일도 열심히 하는 지금의 남자친구도 사랑스럽다. 오랜만에 읽은 아무튼 시리즈의 ‘아무튼 계속’의 김규석 작가는 딱 내가 선망하는 정반대의 삶이다.


몇 년 전 북면에 살 때, 20살 이후 처음으로 룸메이트가 생겼다. 같이 살기로 한 언니는 혹시라도 생활의 습관이나 해야 하는 일이나 하지 말아야하는 일들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크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나는 매일 맥주를 마시고 씻고 잠드는 일 외에 생활습관은 거의 없다 라고 말했다. 언니도 역시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때의 큰 불편함은 없었으며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정말로 생활 패턴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뭘 해도 괜찮았다.(라기 보단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파악하지 않았다) 그것이 언니를 힘들게 했다. 언니는 생각보다(나보다) 패턴이 많은 사람이었다. 김치통을 들 때는 뚜껑에 닿지 않게 수평으로 들어야하며, 잼을 먹으면 입구와 뚜껑을 깨끗하게 닦아 놓아야 하는 것, 모든 식품은 밀봉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언니의 남자친구와 함께 살면서는 더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매일 집 안에 있는 화분들에게 햇빛을 쬐어주고, 마루와 바닥과 냉장고를 청소하는 부지런한 일상. 그들은 나에게 그런 삶을 강요하지 않았지마, 나는 머지않아 객식구로서 방 한 칸의 존재감을 차지했다. 며칠씩 외박하고, 함부로 머리카락을 흘리고 다니고, 맥주캔을 쌓아가는 나와 함께 살기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그 동거생활은 타인의 ‘생활양식’의 존재를 발견한 첫 번째 경험이었다. 살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냉장고를 정리하고, 바닥을 닦고, 빨래를 널어놓는 일. 그 반복적인 패턴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고집하는 일은, 꽤나 멋있어 보였다.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몸이 겪어온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일상을 중요하게 다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멋있는 일인지를 그들과 함께 하며 배울 수 있었다.


‘아무튼 계속’에서는 일상의 항상성에 대해 말한다. 그것이 왜 중요한지,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사실 별로 귀 기울여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일상을 유지하고 돌보며 생활을 부지런하게 해낸다. 자신의 리듬을 다듬을 수 있는 루틴을 만들어 낸다. 일상 안에 존재하는 식기들과 식물들의 사소함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런 루틴 속에서 일상의 안락함을 누릴 수 있다곤 하지만, 나는 일상 속에서 세계를 예민하게 보는 방법을 배웠다고 믿는다. 거실의 실내화를 말하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 인생은 그것을 다 해내기도 충분하지 않다.



살면서 정신력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겠지만, 대부분 그릇된 가르침이다. 정신과 육체는 분리할 수 있는 이원적 개념이 아니다. 무엇보다 거꾸로 됐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정신력은 십중팔구 흔들린다. 일상의 항상성도 마찬가지다.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따르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는 일종의 집념은 오래 가지 못한다. 대신 외모부터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다른 느낌이 들지 않도록 일상성을 갖추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봤을 때 어제 봤는지 며칠 전에 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도록 낮은 존재감을 체화하는 것이 항상성을 지속시키는 근원이라 할 수 있다.

-닌자가 되고 싶었다, P.33-



혼자서도 평온하게 지내는 일상은 건강한 삶과 정신을 지켜주는 견고한 울타리다. … 파스칼은 1600년대부터 이런 본지를 꿰뚫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머물러 있을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평온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피해야 할 세가지, P.76-



갑자기 생각나는 난다의 리빙포인트편.. 이런 거 좋아한다. (출처. 어쿠스틱 라이프 9권)



출퇴근하는 직장이 사라진 이후로는 약 한 달 째 불규칙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침대 위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글을 쓴다. 몸이 너무 게을러져서 동네에서 요가를 등록했다. 꾸준히 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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