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by 소산공원

연말에는 남해에 가야지.

9월부터 표를 예약해두고 오래 종종거리면서 기다렸다.


집에서 남해로 가는 두가지 길이 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통해 창선대교로 넘어가는 길과, 순천-완주 고속도로를 지나 남해대교를 건너는 길.


내가 좋아하는 길은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지나치는 길이다. 대전을 지나자마자 무주로 빠지면 바로 산새가 멋진 작은 도로가 이어진다. 덕유산-함양-산청같은 익숙하고 묵직한 느낌을 주는 지명들을 지나치면 지리산자락이 꽤 가까이 보인다. 사천으로 나와 어설픈 도시를 지나쳐간다. 여유가 있으면 실안해안도로를 굽이굽이 따라간다. 사천 케이블카 옆 다리를 건너면 바로 고즈넉한 남해 바다를 볼 수 있다. 잔잔한 바다 옆에 가까이 있는 나란한 밭들. 큰 길로 들어가지 않고 창선도 서쪽 바다길을 따라가면 500년이 넘었다는 후박나무가 있다. 그늘 아래엔 보통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는데 내 차가 지나가는 순간부터 내려서 사진을 찍을 때까지 여행객인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시는 바람에 쫄아서 이 후엔 후박나무를 가까이서 본 적이 별로 없다. 멀찍이 나무를 구경하다 해지는 시간을 잘 맞춘 날에 지족쯤에 갔을 때 멋진 노을이 물든 바다를 볼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남도길엔 화엄사를 가야하니 순천-완주 고속도로를 지나야한다. 지리산 권역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꽤 지루하다. 남원쯤에 왔을 때야 멀리, 넓게 보이는 지리산 자락을 만날 수 있다. 이 길을 지나면 하동ic-남해대교를 지나게 되는데 남해에 들어서자마자 '한국의아름다운길' 표지판이 나온다. 그리고 실제로 길이 참 아름답다. 최근에는 노량대교가 새로 생겼는데 '한국의아름다운길'을 지나지 않고 커다란 다리를 건너 바로 커다란 길이 나온다. 이 길에 들어서면 남해시내를 통과해 숙소까지 큰 길로만 가야한다. '남해는 정말 큰 섬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창선대교를 넘어오는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인 것이 신기하지만, 어쩐지 그 길엔 정이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며가며 한번쯤은 화엄사를 들러야하기에, 앞으로는 이 길을 사랑해야한다. 내년엔 남해의 서쪽동네를 잘 살피고 다녀야겠다.


아난티에 새로 생긴 책방에 들린 것 외에는 같은 남해를 보냈다. 그게 참 좋았다. 돌을 데려왔던 선구리 몽돌 해수욕장에도 들렀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비슷한 돌들을 찾았는데 이상하게 돌하고 같은 색의 돌이 하나도 없었다. 나의 돌은 이 마을의 돌보다 까맣고 맨질거렸다. 밤중에 만난 돌인데, 그 중에 가장 까만 돌을 희귀하게 찾은 것인가?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었다.


가족찾기에 실패하고 돌 두 개를 더 데려왔다. 돌아오며 운전하는 길에 손이 심심해 계속 새로 만난 돌을 만지작거렸다. 도착할 때쯤에 처음 만났을 때보다 돌이 부드러워져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나와 돌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변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원래 까맣고 맨질한 것이 아니고 손이 닿아 이렇게 된거구나. 나의 무언가가 닳아가는만큼 너도 닳아가면서 틈이 메워지고 있던거구나. 내 어딘가엔 너의 표면이 묻었겠구나. 우리 서로 기꺼이 닳고 있었구나. 서로를 반질반질 윤을 내고 있던거구나.


돌은 그저 가만한 존재라고만 여겼는데, 이제 이것을 관계라고 불러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많은 돌들을 더듬고 문지르며 살아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 틈이 날 때마다, 단단한 너처럼 나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그런 기도들을 올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비밀스러운 삶_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