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즈앤올_12.06

by 소산공원

오늘은 다섯시 오십분 기상. 어제 술기운으로 쓴 일기를 다듬으며 아침을 보냈다.

호옹이가 창문 틀에 앉아 창문을 열려고 애를 쓰는데 그걸 쳐다보다가 눈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 제법 펑펑. 출근길이 고될까 일찍 나왔는데 역시나 집 앞에 장터국밥까지 가는 길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다행히 두시간만에 출근 성공. 오전에 마치려던 일을 끝낼 수 있었다.


토모요씨가 천안에 오셨다. 토모요씨는 뭐랄까. 인생에 갑자기 훅 들이친 다정의 파도같은 사람이다. 2019년 천안에서 전시와 워크숍을 하신 적이 있는데, 사장님의 부탁으로 짧게 북면 집을 내어드린 적이 있다. 그 때 잠깐 얼굴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요란스럽게 바쁜 해여서 기억에 많이 남진 않았는데, 그 인연만으로 토모요씨는 몇 년간 계속 때없이 선물을 보내주신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귀여운 고양이 영상을 보내주시거나, 보고싶은 친구들 게시물에 태그를 걸어주시거나. 처음에는 낯설기도 하고, 그냥 사람을 잘 챙기는 분이시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해가 거듭될 수록 꾸준히 이어지는 안부를 보곤, 진심어린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엔 겸연쩍다가, 어느 날엔 그 마음을 되갚으면서 살고 싶어졌다. 다정은 한번 겪으면 다시는 이전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놀라운 전염의 힘이 있다. 다정으로 한 발 나아가기.


올해 초, 조르바가 떠났을 때 토모요씨가 보내주신 그림에 깊은 위로를 받은 기억이 있다. 얼마나 오래 조르바를 생각하셨는지, 내 슬픔에 닿으려고 애쓰셨는지 느낄 수 있는 그림이었다. 아침부터 창문에서 눈을 본 덕분에 조금 울쩍했는데 토모요씨가 조르바 얘기를 꺼내주셨다. 조르바 너구리 닮았다고..... 오랜만에 조르바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어서 고마웠다. 서랍에 넣어두었던 사진을 선물로 드렸다. 꽃밭에서 찍은 너구리. 웃으며 찔끔 눈물을 흘리셨는데 내 울음을 나눈 기분이 들었다. 오늘 토모요씨를 만나게 된 것은 조르바의 선물이구나! 다정의 전염! 그래서 많이 슬프지 않았다.


저녁엔 시내랑 애껴두었던 본즈앤올을 보았다. 이 감독은 극단의 상황에 놓인 서툰 존재를 만들어내고, 그것들의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 같다. 콜바넴은 탁월하게 성공한 것 같고, 본즈앤올은 '내가 이 사랑까지 알아야해..?'라는 느낌.

콜바넴에서 '나를 네 이름으로 불러줘'라는 한 장면의 대사를 쓰기 위해서 그런 영화를 만들었나...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면, 본즈앤올은 '유 잇미, 본즈앤올'을 말하기 위해서 달려온 영화 같았다. 먹어치우는 행위와, 키스와 애무와 사랑이 점령하는 삶을 겹쳐서 보여주지만...... 키스는 키스고 먹어치우는 것은 곱창전골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도무지 닿고 싶지 않았다. 구체적인 세계를 잃은 것만 같았다.


또 다시 몽도에서 읽은 신용목의 책이 생각났다.


사랑을 환상 속에 두는 자는, 사랑에는 이미 이해와 포용이 들어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거나 사랑하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은 자기자신을 위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편리하고 절대적인 일상 밖의 알리바이일 뿐이다.

하지만 늘 새롭게 도래하는 일상의 사태 속에서 사랑은 끝없이 이해하고 끝없이 포용해야만 지켜지는 일종의 태도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서로 동의하에 추리고, 사랑한다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될 것을 지켜야 한다. 말하자면 사랑을 일상의 영역으로 불러온 이들은 사랑을 삶의 조건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요컨대 사랑은 사랑의 높이에 있을 때 끝내 누추하고 일상의 지대에 있을 때 마침내 숭고하다. 수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일상을 믿는 쪽을 택한 반면,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사랑을 꿈처럼 사유했던 것이다.

내가 이 사랑에 더 성실했으니까, 괜찮아.

저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은 사랑하며 '살았던' 사람에게만 있다. 적어도 그들은 자기 삶 속에 사랑을 들이거나 사랑으로 제 삶을 채우려고 했던 사람이다. 반면 사랑과 일상을 분리시켜 사유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절대성을 고집한다. 그들의 말은 일상을 낙원으로 꾸미는 희망에 차 있지만, 낙원이 될 수 없는 일상은 쉽게 절망으로 바뀐다. 그 절망이 서로를 착취하고 마음을 억압하리라는 짐작으느 어렵지 않다. 그렇게 사랑을 액세서리처럼 둘렀던 사람은 기껏 이런 말을 한다.

나를 사랑하긴 했어?

<신용목, 재 中>




그냥...평범한 로드무비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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