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준비를 시작하자_12.12

by 소산공원

일기를 기다리는 독자가 두 명이 있는데, 왜 어제는 일기를 안 썼냐고 매일 묻는다.

내 일기인데 왜 허락도 없이 안 쓰냐며 뭐라고하고, 이제 안 쓴다고하니, 왜 그런 걸 혼자 마음대로 정하냐고 그런다. 웃겨 죽겠다.

뭔가 쓸 것이 없는 날에도 써야한다는 집착 같은 것이 생겨서 마음을 좀 내려놓기로 했다. 비밀일기를 쓰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밤에 너무 졸린데 무리하게 되는 것. 이제는 하고 싶은 말이 넘치는 날에만 쓰고 모아서 근황을 올리는 정도로 해야지. (또 내 맘대로 정한다고 뭐라고 하겠지!)


오늘은 멀쩡한 사무실을 놔두고 정컵 골방에 들어가서 일을 했다. 내 방 같이 아늑하고 좋았다. 주 5일을 잘 보내기 위해서 월요일은 쉬듯이 일하기, 수요일쯤 놀아주기, 금요일 빨리 퇴근하기. 정도의 리듬을 가지는 것이 상당히 좋다. 잘 놀고 잘 쉬는 법과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동시에 고민한다. 어차피 내가 떼 돈을 가져갈 수는 없을테고. 다만 지금 하고 있는 작당들을 조금 더 돈을 버는 일들로 만들고 싶다. 곧 백수가 되는 친구와 백수를 꿈꾸는 친구들과. "누나 나 짤렸어 사과나무 취직시켜줘" 얼마 전 이런 문자를 받고 덜컥 겁이 났는데, 뭔가 안전장치가 된 것 같기도 해 좋았다. 시도해도 굶어죽지 않은 정도로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 년 굴려봤으니까, 내년엔 조금씩 계획을 세워봐도 좋지 않을까.



몇가지 뉴스레터를 열심히 챙겨보는데, 요새는 가혜가 일하는 단체에서 보내는 뉴스레터를 열심히 본다. 김태흠 도지사가 당선된 이후에 행정이 입맛대로 망가지고 있다. 인권조례를 폐지하고, 농민들을 위한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사각지대 노동자를 위한 예산을 없애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100여개의 조직이 '위기충남공동행동'을 만들어 의회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왜 내 친구가 이렇게 추운 날에 길에서 농성을 해야하나. 농민들이, 노동자들이, 가난한 활동가들이 길에서 떨어야할까. 세상이 조금이라도 느리게 망가진다면 다 이들 덕분일텐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텐데. 외롭고 쓸쓸한 풍경이다.


일기를 보는 사람들이 내 친구가 열심히 쓴 뉴스레터를 봐줬으면 좋겠다.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FriaNlfuCubaZxssYwMTNspVu9cumUE=

>>지난 뉴스레터 모아보기

https://page.stibee.com/archives/160703


아무튼. 이 와중에 진하랑 얘기하다가 수선워크숍을 기획했다. 원래는 조금 천천히 홍보를 하려고 했는데 오늘 나답지 않은 포스터를 만들었다는 말을 들어 열받아가지고 기분 전환할 겸 만든 포스터. 나답게 마우스로 슥슥. 휴우 살 것 같아.

진하는 손으로 만드는 일의 스승님이시다. 사실 뭔가를 직접 배운 기억은 아주 까마득하지만, 작업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승으로 모시기 충분한 친구다. 특히 신발과 양말, 떨어진 옷을 수선하는 일은 너무 매력적이다. 나도 얼마전에 애끼는 양말이라는 것이 생겨서 슥슥 구멍을 메워보았는데, 진하 피드에서 본 사진처럼 이쁘게 되지 않아서 시무룩했다. 이제는 배울 기회가 생겼다! 시내는 매일 구멍난 신발을 신는다고 구박하는데, 메우다가 바닥에 빵꾸가 날 때까지 신을거야!

새로운 물건을 사는 일도 너무 좋아하지만, 헌 것을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헌 물건을 계속 고치고 살 수 있으면 더 좋겠다. 그러다가 새 물건을 사지 않는 날이 오는 것이 언젠간 도래할 꿈.. 같은 것이다. 아무튼 아끼는 양말, 옷, 가방엔 구멍이 뿅뿅 나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구멍난 채로 그냥저냥 잘 입고 다니지만, 진하랑 수선워크숍을 하면 멋진 무늬들이 탄생하겠지! 헌 것을 돌보는 새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수선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출발하고 싶은 사람들 모여라!




내년에는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런 작은 작당을 벌이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작은 모임, 배움의 기획들은 사과나무 안에서 꾸준히 해나가고 싶은 일이다. 피가 도는 것 같다. 이제서야 내년에 하고 싶은 일들, 해선 안되는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연말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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