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이번주는 보일러 정책을 좀 바꾸었다. 외출할 때 12도 정도로 맞추어두고 집에 돌아오면 18도를 유지하며 일주일 정도 지냈는데, 지난주보다 기름 사용량이 늘어버린 것이 아닌가! 검색을 해보니 우풍이 많은 집에는 실내온도보다 온돌로 맞추어놓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온돌 43도 정도를 유지해놓으니 보일러가 자주 돌아가도 바닥도 차지않고 공기도 적절히 덥혀진 것이 맘에 들었다. 그래서 마냥 따뜻한 줄만 알고 후끈하게 온수매트 안에서 찬 공기를 쐬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보일러실이 있는 베란다로 나가자마자 입김이 번지고 창문 유리가 꽝꽝 얼어버렸다. 여기 남극이 아닌가... 이렇게 추운 날씨였다니. 세탁기 쪽 물도 꽁꽁 얼어있고 보일러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하룻밤 문안인사를 올리지 않았다고 이렇게 무력해지실 줄이야... 다 내 잘못인 것.
부랴부랴 주전자에 물을 덥히고 뜨거운 물을 부으니 '뻑' 소리가 났다. 또 검색해보니 너무 뜨거운 물을 바로 부으면 얼음이 깨지면서 관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것! 그러면 정말 좃되는거다. 네이버에서 시키는대로 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 비닐로 싼 후 관을 감쌌다. 그동안 너무 더러워서 차마 넘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던 보일러 뒷편으로 넘어가 온수관을 찾아냈다. 입구쪽은 그래도 따순 기운이 도는데 한 뼘정도 내려가니 관이 언 것이 느껴졌다. 네이버가 시키는대로 드라이기로 녹이려는데 보일러가 있는 곳엔 전기콘센트 같은 것이 없다. (도대체 전기공사한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던 것이지 대체ㅠㅠㅠ) 있는 멀티탭을 다 연결연결해 드라이기로 수도를 녹였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면서 왔다갔다리 관이랑 언 발을 녹이면서.. 그렇게 삼십분...... 마침내 온수가 콸콸 쏟아졌다. 해냈다! 맥가이버 소산! 늠름한 내 자신! 보일러 집사 자격증 2급 - 겨울 온수관 녹이기 과정에 합격한 느낌! 쾌하고 좋은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늦어서 씻지 못한 채 출근. 온수 물을 졸졸졸 틀어놓았다.
명절
헤어진 건 나인데 어쩐지 엄마가 무지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동생이랑 엄마랑 싸웠는데 도무지 영문을 잘 모르겠고...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한참 통화를 안하다가 생일날 아부지가 슬쩍 전화를 해왔다. 엄마한테 전화를 하니까 흥칫한 투로 전화를 받는다. 나는 왜인지 모르지만 미안하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카톡으로 '담니랑 토요일에 갈게 고기 구워먹자~'라고 했는데 '삼겹살'이라는 답이 왔다. ㅋㅋㅋㅋㅋㅋ귀여운 윤숙씨......
겨울의 엄마와 아부지는 굉장히 무력해 보인다. 밭이고 뭐고 꽁꽁 얼어 있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 하루종일 누워있거나 티비를 보며 빈둥거린다. 농촌의 방학. 그래도 윤숙씨는 요새 유튜브 요리 채널에 빠져서 꽤 맛있는 반찬들을 해낸다. 윤숙씨는 반찬도 김치통만큼 한다. 유선생(유튜브를 재미있게 부르는 말)을 보고 무말랭이를 했다는데 세상에 그렇게 많은 무말랭이는 처음보았다. 원래 많아야 무 한개 정도만 말리는 것이 아닌가..? 얼만큼 했냐고 물으니 갯수가 아니라 손으로 높이를 가늠한다. 무가 탑처럼 쌓여있었다는 얘기다. 함께 나온 청국장을 동생이 맛있게 먹으니 뿌듯해하면서 대번에 내년에 콩 밭을 늘려야겠다고 한다. 내년엔 산더미같은 청국장을 먹게 될 것 같다. 집에 갔다오니 냉장고가 꽉 찼다. 며칠을 파먹어야겠다.
집들이
명절을 앞뒤로 호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연례행사 중 하나. 겸사겸사 집들이를 했다. 윤숙씨가 또 산더미같은 만두소를 만들어두어 챙겨와 도란도란 만두를 만두렀다. 시내랑 경주는 마치 한남 아버지들처럼 만들지 않아서(혹은 만들어서) 타박을 주었다. 시장에서 간단히 장을 봐온 음식과 각자가 챙겨온 명절음식을 먹었다. 시내 어무니가 해주신 LA갈비, 뚜정이 할머니 동네 영월에서 온 메밀배추지짐, 가혜가 챙겨온 계절 한정 더덕, 다솜이가 산 식혜로 돼지파티. 이제는 다음날 출근을 해야하는 늠름한 직장인이기에 눈물을 훔치면서 일찍 파. 오랜만의 호스트의 자아. 행복했다. 윤숙씨의 음식과 남은 음식들이 더 해서 냉장고가 넘친다. 큰일이다.
술
집들이 하면서 가혜한테 '친구야 술 마실거니?', '너가 마시면..', '나도 너가 먹으면' 이란 대화를 하고 맥주를 8캔을 사다두었는데 없어졌네. 언젠간 어른되면 술 장식장.. 이런데에 양주나 맥주를 잔뜩 진열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는데, 장식할 새가 없을 것 같다. 다행히 빈 병을 미련없이 잘 버리는 어른이 되었다.
필사
필사는 이랬다가 저랬다가. 일단 생각나는대로 책을 잡고 옮기고 싶은 페이지를 적는다. 기준이 생기면 좋은데 일단 해본다.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서문을 옮겼다. 막상 적고 나니 안 보이는 문장이 보인다.
<동사 '느끼다'에는 '서럽거나 감격스러워 울다'라는 뜻이 있다. 어쩌면 사유와 의지는 그런 느낌의 합리화이거나 체계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