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저고리가에서. 광덕산을 넘어 구불구불 좁은 길을 따라 저고리가에 갔다. 우리 시골집에 가는 길이다. 예산 사장님네는 부모님이 사는 유구와 생활 권역이 겹쳐서 가까운 곳에 친정이 둘이나 있는 느낌이다. 이모랑 외숙모가 일하는 유구 하나로마트에서 와인을 사고 장구경을 하고 충남식당에서 올갱이 해장국을 먹고 저고리가에 들어갔다. 올 겨울 저고리가엔 새로 난로가 들어왔다. 가자마자 와인을 까서 불 앞에서 만화책을 읽고 낮잠을 잤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새덕후를 따라 가창오리떼를 보러갔다. 우아한 황새를 멀리서 봤다. 가창오리떼가 호수 가운데 마치 선처럼 쌓여있었다. 먼지처럼 흩어지고 날아오르는 모습은 볼 수 있었는데 날이 흐리고 반대 쪽으로 날아가서 포로로 웅장한 장면을 보진 못했다. 비가 톡톡 떨어지는 것이 좋았다. 예산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어 새에게도, 새 덕후에게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밤엔 가게를 준비하는 주영의 요리를 먹었다. 준비하고 있는 메뉴를 시식해보고 평가하는 자리였지만 사실 다 맛있어서 그냥 이렇게 오랫동안 시식회만 해도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또 홀랑 까먹어버린 대만식 두부튀김과 튀긴 라자냐, 곶감말이, 언덕 위 텃밭에서 몰래 훔쳐온 파와 닭구이, 마늘쫑볶음..... 요리사인 친구가 해준 음식과 얻어먹을 주방과 불이 있는 집. 세상에서 이렇게 좋은 친정이 또 있나...
다음날은 전날 남은 닭과 누룽지를 끓여먹고. 툇마루에 나란히 누워서 볕을 쬐었다. 에너지를 몸 안에 꽉 채우는 느낌이 들었다. 찬바람을 쐬면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집에 와서 낮잠을 또 잤다. 포근한 이불 속에 누워있는데 창문을 햇빛이 쏟아지고. 우리는 일상을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을 잘 아는 것 같다, 고 말하면서.
밤엔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일기를 쓰고 필사를 하고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 좋아하는 부분을 읽어주기도 한다. 오늘 읽은 것은 정혜윤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중, '달,B95'.
해 지고 달 뜨는 것을 지켜보던 의자도 다리는 반쯤 흙이 되었다. 그 의자에 앉아 해 지고 달 뜨는 것을 지켜보다가 잠시 넋을 잃던 것처럼, 스르르 소멸 속으로 들어가면 좋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사는 것이 좋다. 자신의 손과 몸을 놀려 일을 하는 것이 좋으니까. 늘 변함없이 곁에 있지만 그러나 매일 밤 조금씩 변하면서 재생하고 부활하는 '달'을 볼 수 있는 이 곳에서. (...) 최고의 행복은 몸을 놀려 일하고 자기 손으로 뭔가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의 삶은 자연의 시간과 다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사람들은 소수다. 거의 사라졌다. 이들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자신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이런 삶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다. '자기파괴'다. 우리가 파괴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살고 이야기하고 사랑을 나누고 우리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할 공간이다. 그런데 노동하는 인간이 달과 함께 지구에서 축출되기 전에, 더 먼저 쫓겨난 것이 있었다.
(...)
나는 우리 인류가 곁에 있던 것이 사라져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리는 것을 슬퍼하는 능력을 잃지 않았기를 바란다. 우리 인류가 아무런 감동이 없는 세계에서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인류가 어떤 일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 그만둘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상상력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우리 인류가 새들의 비행을 상상할 수있기를 바란다. 우리 인간의 심장은 3백 그램이다. 새의 무게는 113그램이다. 우리는 그 작은 새의 용기에서 배울 것이 많다. 난기류와 폭풍우와 번개 속을 나는 새의 용기를 배울 수만 있다면 우리의 용기도 달라질 것이다.
일상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것과 새의 용기를 배우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볕과 흙과 새와 불과 요리와 친구에 감동하고, 그 세계를 구하는 일에 골몰하면서 살고 싶다. 이런 주말이라면 충분하다. 오늘처럼 볕이 따뜻한 날엔 봄이 가까워지는 것이 설레서 참을 수가 없다. 이번 집은 바람과 햇빛이 잘 들어서 뭔가를 잘 가꿔낼 수 있을거다. 에너지를 가득 채운 몸으로 봄을 기다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