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있음_2.24-25

by 소산공원

1.

요즘은 낮의 햇빛이 좋다. 창으로 해가 들어오면 일을 하다말고 산책을 하거나 나가놀거나 낮잠을 자거나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하고 또 맥주를 마시다가 밤에 늦게까지 일한다. 그러다보니 일주일이 또 호딱 가버렸다.


금욜날은 평택에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 일곱집매'에 다녀왔다. 일곱집매는 일곱개의 집이 자매처럼 친하게 지냈다는 옛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기지촌에서 일했던 할머니들이 자신의 존재를 지우지 않고 목소리를 드러내는 곳, 지지하며 기댈 수 있는 공간이란 걸 잘 드러내는 이름 같았다.


'젊은 시절 기지촌 클럽에서 지내며 민간외교관, 달러벌이 역군으로 칭송받았으나 노년에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사회의 차별과 가족의 외면응 받으며 살다가 외롭게 떠나신 여성들을 기억하는 공간이며, 끝내 사회를 향해 걸어 나와 살아온 세월을 당당하게 증언했던 목소리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박물관 설명 중


전시물 중 유신 때 외국인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배포했던 수첩이 있었는데, '귀하는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며 책임과 의무들이 구구절절 써져있다. 그 대표들은 조용하고 쓸쓸하게 사라지고 있을테다. 그나마 이런 전시공간을 통해서야 '빈방없음'의 역사를 쓸쓸하게 기억할 수 있는거다.


그녀는 노년에 홀로 독방에서 살았다. 사람들이 그녀가 떠난 것을 안 것은 사흘이 지난 후였다. 다음 주 어느 날 그녀가 살았던 방 앞에는 “빈방있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빈방있음”에서는 그녀가 살았던 방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 설명 중


<끼니:보잘 것 있는 음식에 대하여>는 할머니들의 공간으로 찾아가 밥을 얻어 먹고 남긴 기록이다. 할머니방에서 만난 것들의 그림과 요리레시피가 적힌 책이 있다. 우리가 갔을 때 전시관이 닫혀있어서 주변에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오셔 문을 열어주셨다. 공간 여기저기 불을 켜주시곤 춥다며 다방커피를 권하셨다. 추우니까. 여쭈어보진 못했지만 만약 기지촌에서 일하던 할머니가 맞다면 우리는 끼니까진 아녀도 커피를 한잔씩 얻어먹은 것이다. 전쟁과 폭력의 역사 속에서 피해자들은 대부분 고통받는 납작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피해자들 역시도 다채로운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이라는 것, 밥을 짓고 밥을 먹고 먹이고 대접하는 존재라는 걸 또 새삼.


2.

천안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기 전 잠깐 배도 꺼지게 할 겸 집에 들렀다. 분명 배불러서 들렀다고 해놓고 에피타이저 맥주를 시작해서, 선물로 사온 맥주까지 몽땅 먹고 홍어에 막걸리 시켜서 먹고 일본술 꺼내먹고 그렇게 3시까지 마시다가 잠들고 일어나보니 또 친구가 사라져 있었다. 재미난 하루였다는 말이다.


3.

담날은 일어나서 해장을 해야겠다 싶어서 시내랑 헤비니를 불러 간단히 점심만 먹고 헤어지려 했는데. 2차로 로마노를 마시고 3차로 카페를 또 갔다. 4차로 시내랑 요즘 젊은이들은 뭘 입고 사나 옷 구경을 갔다가 그만 물욕의 문이 열려버려 5차로 중앙시장 구제거리에 갔다.

바지 하나와 봄 점퍼와 접시 세개, 컵하나를 사는데 세시간 삼만원을 썼다. 허송세월할 때는 책방을 지키는 일 말고는 정말 다 재미있어서 근처 구제가게들을 달달 뒤져 재미난 물건과 옷을 찾는 낙으로 지냈다. 써금써금한 것들 중에서 알맞고 귀여운 것을 찾아내는 일은 몇시간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오키나와에서 마지막날에 혼자 나하 시내를 구경했는데, 시장 구석에서 발견한 빈티지 가게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거긴 정말 온갖 쓰레기들을 가지런히도 모아둔 곳이었는데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경주관광기념 병따개를 발견해 사오는 고런 재미! 사람은 사라져도 물건은 남아 어딘가 버려지고 또 그걸 누군가 줍고, 닦고 팔고 사고. 이런 세계의 연결이 재미나다. 쓸만한 물건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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