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공원일몰제, 일봉산개발갈등 정리.
천안 일봉산갈등은 도시공원일몰제를 이해하면서 출발해야해요. 이름만 봐서는 공원에 일몰이 지는 낭만적인 풍경이 떠오르는데, 사실은 그 정반대의 효과를 만드는 제도에요.
사람들이 몰려드는 도시에는 주거시설과 동시에 공원시설도 반드시 필요하죠. 개인이 공원을 짓기 어려우니까 국가나, 지자체가 도시 안에 있는 산이나 일정구역을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아요. 그런데 도시공원으로 지정된 곳은 개인소유의 땅도 포함되어 있어서, 땅을 팔거나 자신의 목적에 맞게 개발을 하고 싶은 소유주들의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었어요.헌법재판소는 사유재산의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고, 지정만 해놓고 20년 이상 공원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도시공원구역에서 해제할 수 있게 해주었어요. 해가 지듯이 효력이 스스르 사라진다고 해서 '일몰제'라는 이름을 붙인거구요.
문제는 그 해제시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거에요. 2020년 7월 1일. (이제 한달도 채 남지 않았어요ㅠㅠ) 이렇게 도시공원일몰제로 인해 해제되는 구역이 전국에 4421곳이나 된다고 하니 지자체들은 부랴부랴 대책을 세우고 있어요. 이제서야 자신의 땅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소유주들의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했고요. 토지주들은 자신의 소유인 산에 오르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치기도 했어요. 동네 공원이 개인의 땅이란걸 안 시민들은, 매일 같이 오가며 쉬던 뒷산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되었죠. 그렇게 토지주들과 지자체, 시민들의 갈등이 눈에 드러나기 시작했죠.
오래 참았다! 이제 내 땅이니 자유롭게 개발할거야vs 얼마 안 남은 숲과 공원을 지켜야해!
*토지주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앞으론 숲과 나무를 지키고 싶은 사람의 입장으로 정리할겁니다.
도시에 숲과 나무가 왜 필요한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어요.
천안은 이미 미분양 아파트가 많고(새로 생기는 아파트 다섯채 중 한 채가 비어있는 21%. 20.04기준), 해제지역인 일봉산만해도 주변에 이미 아파트가 빼곡하죠.(천안에 아파트는 353단지!)이제 천안에 더 이상의 아파트는 네버...
시민들과 전문가들은 도시공원을 지속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과 대책을 제안했어요. (어렵긴 하지만)몇 가지 정리해보자면,
①지차제가 개인의 토지를 매입해서 공원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법. 그런데 그 많은 토지들을 한꺼번에 사들일 수 없으니(20년동안 뭐했어) 지자체가 구체적으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늘릴 것을 제안했어요. 그리고 다른 도시계획시설에 국고를 지원하는 것처럼(도로나 댐을 지을땐 30~70%지원) 도시공원에도 50% 국고를 지원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요.
②국공유지의 경우 도시공원일몰에서 배제시키는 방법. 장기미집행 도시공원이 전부 사유재산은 아니에요. 평균 26%정도는 국공유지라고 해요. 논의 끝에 정부는 2019년 5월 '장기미집행공원 해소방안'을 통해 국공유지 의 경우 10년간 공원으로 더 유지할 수 있는 유예 대책을 내놓았어요.
③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하는 방법, 단 토지주의 재산세나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대책이 필요! 실재로 서울시는 '4.5 대책'으로 매입을 하는 기간동안 공원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시자연공원구역지정'을 염두해 둔 계획을 세웠어요.
이 외에 트러스트운동, 녹지조성기금 등 다양한 대책들이 논의가 되고 있어요.
④민간공원조성 특례사업이란 방법도 있어요. 예산이 부족하니까 민간기업이 돈을 대고 땅을 매입해서 70%는 공원으로 기부하고, 30%는 개발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에요. 전국에 해제지역 중 총 78개소 정도가 추진 중이라고 해요. 얼핏보면 공공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민간에서 해결하고, 재산권도 지키며, 공원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이죠.
천안시의 경우는 일봉, 노태, 청수, 백석공원이 대표적인 해제지역이에요. (이 글에서는 일봉산의 문제만 다루어볼게요.) 천안시는 도시공원일몰제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민간공원조성특례사업을 선택했어요.
과정은 이래요. 2016년 8월, 공원개발에 관심이 있던 누군가가 땅주인들을 만나 사업승인 동의서를 받아내고 시에 계획서를 제출했대요. 이 후 10월 다른 제안자를 찾는 공고를 내고 제안하는 사람이 없자 2017년 1월 협상대상자로 통보를 했어요. 이 후에 진행된 결정내용을 조용히 공개하고 차근차근 도시공원위원회의 심의 절차까지 밟게 되었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주민들이 늘어났어요.일봉산에 기대어 사는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함께 일봉산지키기주민대책위원회를 출범하고 일봉산을 지키기 위한 시민활동을 시작했어요. 민간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진정서를 모아 제출하기도 하여, 민간협의체 구성을 약속받았어요.
그런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구)구시장......... 그러다 2018년 11월 도시계획위원회는 사업을 조건부 승인하고 또 다음 절차를 밟아요.
화가 난 일봉산지키기주민대책위는 릴레이1인 시위를 하고 시민문화제를 이어나갔어요.
그러니까! 그 시민들의 삶과 아주 밀접했던 동네뒷산을 개발하는데, 주민들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거나. 혹은 거짓말하면서 민간개발을 위한 절차를 밟아나갔다는 것!
이 시기가 잘 정리된 기사가 있어요.
행정은 여전히 귀틀막 하고 있지만(아무런 예고없이 교통영향평가 진행한다거나) 대책위는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어요. (문화제, 규탄집회, 기자회견 등)
그러던 어느 날.
구)구본영시장은 시청 소회의실에서 2019년 11월 8일 노태·일봉 민간공원특례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해요.
게다가 구)구시장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대법원 선고를 코 앞에 두고 있었어요.(선고 d-6일 전) 2년 가까이 6000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반대한 사업을, 아무런 상의없이 독선적으로(날치기)로 처리해버린거죠. 얼마나 시민들을 무시했으면.......
시민단체는 구본영시장의 엄중선고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하고 강력대응할 것을 예고해요.
2019년 11월 14일. 구본영 시장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시장직에서 짤리고, 일봉산대책위의 서상옥 사무국장은 나무위에서 무기한고공농성을 시작해요.
일봉산대책위는 고공농성을 이어가며 구)구본영 시장이 맺었던 협약을 무효화하고 보궐선거로 다음 시장이 선출될 때까지 행정절차를 중단하고 주민의견을 수렴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주장하며, 천안시의원을 통해에 주민투표의 건을 발의해요. 그런데.......... 이 주민투표제안건도 시의회에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고 말아요.(반대 11명, 찬성 9명, 기권 5명)
민간공원특례개발사업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이유를 대긴 했지만.. 전임시장(민주당)이 맺었던 협약을 같은 당의 시의원들이 지켜내는 듯한 꼴이였죠. 그에 반대하는 경쟁당(당시 자한당)인 보수색채의 의원들이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요구를 들어주는... 그런 낯설고 묘한 상황이 생기기 시작하죠. 엉망진창똥진창....
그러니까. 구시장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겠다 이야기 해놓고 계속 ㄱ쌩까다가 짤리기 6일전 갑자기 업무협약을 해버리고 떠나버린 상황. 인데 같은 당 시의원들은 그마저도 편들고 있는 상황.
일봉산대책위 활동가는 고공농성과 함께 단식을 이어나가다가 건강악화로 병원에 이송되기도 하고요.
민간공원개발 특례사업을 저지하기 위해서 행정절차를 중단하기 위한 계속적인 활동을 이어가요. 몇가지 살펴보자면,
>> 지역현안에 대해 지역민들이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투표제라는 것이 있는데.. 주민투표제 하려면 1.청구인대표자증명서를 발급받아 2.주민투표를 할 수 있는 시민들의 서명을 모아야(주민투표청구권자 총수의 1/20 이상 1/5 이하의 범위) 겨우 할 수 있는데. 천안시가 '1.청구인대표자증명서'를 내어주지 않은 것. 그래서 단체가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다행히도 충남도 행정심판위가 대책위의 손을 들어주어 주민투표를 청구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때 시장보궐선거 기간에 주민투표운동을 할 수 없기에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생김.(어휴 복잡해)
>>그 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고 평가해서 환경부에 제출하는 것을 말해요. 일봉산사업은 금강환경청으로부터 두차례 보완 요구를 받았다고 해요. 환경부가 만약 '부동의'를 한다면 개발은 중단될 수 있어요. 아직 답은 안 나온 상황.
>>아까 구)구시장이 날치기협약체결을 했다고 말씀드렸죠. 보통은 개발사업이 들어가기 전에 환경영향평가 및 문화재 조사를 해야하는데 이런 절차를 걸치지 않고 협약을 맺은 사항이 적법한지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했지만, 결국엔 적법판정이 났어요.
④충청남도 문화재위원회는 일봉산공원 일원 현상변경허가 부결촉구
>>일봉산은 홍양호 묘, 청동기시대 수혈주거지, 고려시대 주거지와 토기 등 다양한 문화적 보존가치가 높은 곳인데요. 특히 홍양호 묘 주변은 문화재 보존구역으로 지정되어있어요. 이런 곳에 공사를 하려면 현상변경허가라는 것을 받아야하는데, 7개월간 심의에 재심의를 이어가다가 조건부로 허가를 받았어요. 하.(1000여 세대가 빠지고 밀도가 줄었대요)
일봉산주민대책위는 어떻게든 구)구시장이 저질러놓은 �을 치워보려 온갖 고생을 다합니다ㅠㅠ
구본영 시장이 떠난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한 보궐선거가 시작되고. 일봉산대책위는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해줄 후보를 찾아다녔어요. 일봉산 보존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고 후보들의 의견을 듣고 약속을 받기도 했지요. 이 날 구)시장과 같은 당이었던 후보(민주당)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어요.
결국 일봉산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힌 박상돈(자한당)후보가 시장에 당선되었어요. (아마 어떤활동가들은... 일봉산을 지키기 위해 보수세력을 뽑아야하는 생애최초의 선택을 했을지도요. )
박상돈 후보는 다행스럽게도 시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봉산민간공원사업의 TF를 구성하고
시장의 권한으로 주민투표를 발의하기로 했어요. (아까의 주민투표 과정을 생각한다면... 시장의 권한 오지고요)
이제 주민투표를 하기 위해선 시의회의 승인이 있어야하는데요. 시의회는 이를 부결하고 일봉산뿐만 아니라 나머지 4개공원 전체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해야한다고 했어요. (이제 한 달 남았는데...)
그간 주민들의 의견에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민간개발특례사업이 최선이라고 말하면서도 갑자기 나머지 공원을 주민투표 대상지로 엮어 갈등을 사전에 막겠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다니요.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꼼수에, 방해로 느껴질 수 밖에 없어요. 화가난 대책위와 시민들은 시의회로 몰려갔어요.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것도 무지 어렵긴하지만)
6월 3일 시의회에서 주민투표제를 의결해야만 일몰제 해지 전에 주민투표를 마칠 수가 있대요. 오는 3-4일 시의회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야하는 이유입니다.
앞서 이야기한것만 해도 일봉산을 지키기 위한 주민대책위의 엄청난 노력들이 느껴지는데요, 다행히도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어요. 위에 말한, 박상돈시장이 발의한 주민투표안이 시의회에서 통과가 되었다고 해요!(25명 의원 중 찬성 13명, 반대 12명으로 가결)
주민투표는 일봉산 주변의 일봉동, 신방동, 쌍용1동, 중앙동, 봉명동, 청룡동 6개 동 주민투표권이 있는 19세 이상 천안시 주민등록자 및 영주권자를 대상으로 주민투표가 실시된다고 해요.
사전투표는 6월 21일(일)~22일(월) 06:00-18:00이고요. 본투표는 6.26(금) 06:00-18:00 라고 해요.
일단 투표가 성사되려면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의 1/3.. 그니까 내 옆집하고 옆옆집와 밑 집 사람들 중 한 명은 투표를 해야하는 상황....이에요. 투표율이 나와 개발반대투표가 과반수가 넘는다면 특례사업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많은 주민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홍보하는 일이 최우선이에요.
마무리.
작년 나무잔치 이후에 일봉산을 위해서 뭐라도 하고 싶긴 해서 정리를 해보았어요. 지나간 과정을 쭉 살펴보니 정말 오랫동안 숲을 지키기 위해 활동했던 주민대책위에 존경을 보냅니다.시민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간만에 진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저는 천안에 와서는 월봉산 밑에서 살았어요. 막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던 도시라, 사실 산에서 뛰어놀 기회가 별로 없어 애정을 갖진 않았어요. 가끔 키우던 강아지와 산책을 가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월봉산을 들여다보니 산이 반 이상 사라지고 아파트가 되어있더라고요. 이렇게 아파트가 많은데도, 계속계속 도시는 이상하게 몸집을 불려가고.. 아무도 숲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구나. 그 때부터 천안이란 도시에 정나미가 떨어졌던 것 같아요.
뒤늦게 일봉산지킴이들의 활동을 알게되고, 지역을 조금은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보태고 싶어졌어요. (별로 하는 건 없지만서도...)
이어즈&이어즈로 마무리.
세상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빨리지며 미쳐가는데. 결국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