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_230427

by 소산공원

달리기를 시작할 때 아주 천천히 뛴다. 아주 천천히 뛰는 방법은 뛰는둥 마는둥 하는 것이다. 손목을 가볍게 탈탈 털면서 천천히 뛰면 평균페이스는 8분 10초 정도가 된다. 10분 동안은 두리번 두리번 나무도 보고 고양이도 보면서 뛴다. 10분이 지나면 약간 속도를 높인다. 속도를 높이는 방법은 발바닥의 면적을 조금 더 넓게 쓰면서 지면에서 2cm정도만 더 높게 뛰어볼까? 하는 느낌으로 뛰는 것이다. 그렇게 5분 정도를 뛰면 7분 44초 정도의 페이스. 15분을 뛰고 3분을 걷고 다시 15분을 뛴다. 다시 15분을 뛸 때는 발바닥을 5cm정도 높인다는 느낌으로. 그러면 7분의 20초대가 된다. 그러면 아주 약간 기분좋게 심장이 뛰는 상태로 달리기를 마칠 수 있다.


몇 년 전에 처음 달리기를 시작해볼까? 하고 금강변을 뛰기 시작했을 때 아무 것도 모르고 막 달리고 싶은 속도로 달렸다가 녹초가 된 기억이 있다. 그때는 어플도 없이 그냥 타이머만 정해놓고 뛰었는데 심장 박동이 머리 끝까지 느껴져 다시는 뛰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한동안 뛰지 않았다. 나중에 천천히 뛰는 법을 배웠을 때 그제야 조금 '아 이정도면 더 뛰어봐도 괜찮겠다'라는 좋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몇 년 째 그 스퍼트를 벗어나지 않고 거리도 늘리지 않는다. 뭐랄까.. 혼자 운동을 하는데 굳이 더 빨리 뛰어야하고 많이 뛰어야하나? 만약에 같이 뛰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아마 조금이라도 더 빨리 뛰거나 많이 뛰려고 애썼을 것 같다. 같이 차근히 목표를 높여나가던가.. 그런데 달리기의 동료가 없는 지금은 그냥 뛴다. 무리하거나 더 잘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이렇게 구체적인 숫자와 달리기론을 말하면,, 마치 달리기를 무지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번 달에 겨우 3번 뛰었다. 감기라는 좋은 핑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가혜랑 5km마라톤을 뛰기로 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못 뛸까봐 컨디션이 얼마나 올라왔는지 체크를 하려 나간 것이다. 오늘 뛰어보니 다행히 쉬엄쉬엄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마라톤 할 때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 무리할까봐 걱정이 된다. 그래서 꼭 15분 지나고 쉬어야지,.. 꼭 7분대 스퍼트를 유지하면서 재미있게 뛰어야지 다짐을 했다. 뛰는 둥 마는 둥을 몸에 익히려는 연습. 그렇지만 마지막 1분 정도에는 전력질주를 해 볼 요량이다. 연슴삼아 잠깐 전력으로 달렸는데 몸이 그런 달리기에 익숙하게 움직여 조금 놀랐다.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리듬이 몸 어딘가에 감춰져있다가 다시 옷을 찾아 입은 느낌이었다. 빠르게 달리기를 해본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땅이 패일 듯이 발바닥을 딛고 이를 악물고 달리는 것. 지금은 이를 악물지 않고 전력질주를 한다는 것이 조금 우아하고 멋진 일 같이 느껴졌다. 뒷통수로 웃으면서 달리기를 마쳤다. 아무도 이길 필요없이 한바탕 뛰고나니 상쾌하다. 무엇보다 달리기 후에 마시는 맥주는 트로피 같달까..


갑자기 왜인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지 보고싶어져서 일기를 쓰다말고 주문. 맥주 말고 다른 트로피.. 깨달음...얻을 수 있을 것인가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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