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학교 끝!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선 골조를 만드는 일이 집짓기에서 가장 오래 해야하는 일인줄 알았는데 그 일은 3일만에 마쳤다. 사람이 많기도 하고 크기도 작아서 바닥, 벽, 지붕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뚝딱 가능한 일이었다. 골조를 만든 다음에는 방습, 전기, 통풍, 단열, 외장, 내장재를 붙이는 세밀한 작업이 이어진다. 집을 만들 땐 건이나 톱만큼 테이프와 커터칼을 많이 쓴다. 테이프로 코너나 창문 마감을 한다거나, 단열제를 자르고 넣는다거나.. 아무튼 손에 익는 도구를 쓸 때는 집 짓는 일이 할만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첨에 집짓기교육을 신청했을 때는 바깥에서 몸을 많이 쓰는 일을 경험해보는 것과, 도구를 많이 사용해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바깥에서 몸을 쓰면 시간이 정말 후딱 지나간다. 그게 너무 좋았다. 시키는 일을 반복해서 하고 그러다보면 결과물이 짜잔하고 보여지는. 오기 전엔 이유없이 몸이 나른하고 피곤했는데 땀흘리고 잘 먹고 잘 자서 그런 종류의 피로감은 사라졌다. 일로 하게 되면 당연히 어렵겠지만 그래도 몸에 좋은 기운을 남긴다는걸 알 수 있게 되었다. 도구는 여전히 무섭고 낯설지만 이정도의 두려움을 항상 간직하고 있어야 안전할 것 같다.
이 교육을 함께 듣는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자신의 공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서 참여했다고 한다. 나는 몸을 쓰는 것도, 좋은 공간을 갖는 것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인데 내 공간을 직접 지어서 갖고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집을 갖는다는 건, 특히 짓는다는 건 오래 정주할 공간을 정해야만 가능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오래 지낼만한 매력이 있는 지역을 찾는 일이 곧 집을 찾는 일이란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나머지는 인테리어가 해결할 수 있다 생각했다. 어차피 맘에 쏙 드는 좋은 집을 구하긴 어려울테니, 내 생활과 규모에 맞는 인테리어가 가능한 공간을 찾자는 것이 집을 정할 때의 중심이었달까.
그런데 이번 교육을 듣고는 집에 대한 다른 차원의 문이 열렸다. 집은 지역과 인테리어 사이에 있는 무엇이구나. 이를테면 진부하지만 척추뼈 같은 것. 집이 딛고 있는 땅과 땅을 둘러싼 가로세로축의 환경을 고려해 기초를 세우는 일, 그 위에 만들어질 기둥들과 공간 구조, 그걸 채우는 소재와 마감재들을 선택되어야 비로소 집이라고 불릴 수 있는게 생긴다. 그 사이공간을 고려해나가는 것이 집짓기의 과정이란걸.
당장에 내 집을 지을 수 없겠지만 관점을 얻은 건 큰 수확이다. 뼈가 되는 소재는 뭘까? 어떤 의도로 창을 내고 바람의 길을 만든걸까? 어떻게 돌보아야할까? 집의 문법을 알면 좋아하는 지역에서 생활을 훨씬 더 수월하게 해낼 수 있는 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 신나.
자연은 대우주, 집은 중우주, 사람은 소우주라는 말을 배웠다. 집은 자연과 나를 잇거나 혹은 차단하는 역할이라고 한다. 돌아보면 나를 잘 돌보고 관찰하는 만큼 공간에 대한 애정과 욕심이 늘어났던 것 같다. 공간을 돌보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이다. 집을 짓고 가꾸는 일은 자연과 지역과 나의 관계를 궁리하는 일이겠지. 집짓기가 그런 일이라면 언젠간 뿌리를 박고 기둥을 세워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뿌리. 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