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더위, 뜨겁거나 차가운 것이 아니라 온도가 하나도 없는 것 같이 몸에 달라붙은 것 같은 미지근함에 잠에서 일찍 깼다. 허기는 없지만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 아침을 차려먹고 비교적 일찍 여는 동네 카페에 나갔다. 에어컨이 나오는 밥집에 갔다가, 에어컨이 나오는 짧은 전시를 보고, 에어컨 없는 집에서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면 얼음을 넣어놓은 컵처럼 살 끝에 땀이 맺혀있어 몇 번이고 샤워를 했다. 어쩔 수 없이 땀 흘리는 집안일을 몰아서 하고 찬물에 여러번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곤 에어컨이 나오는 동네 도서관에 가서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일요일 저녁엔 신부동에 있는 클라브 바이닐바에 갔다. 맥주 두 병, 위스키 하이볼 하나를 시키고 여섯곡의 신청곡을 들을 수 있었다. 노래를 신청하는 종이를 받으려면 추가로 주문을 해야하는 시스템이라, 조금 아끼면서 좋아하는 여름 노래들을 신청했다. 커다란 스피커로 커다랗게. 커다란 음악. 커다란 차가움. 에어컨 유목민의 주말.
더울 때 더위에 대해 많이 말하는 것, 추울 때 추위에 대해 끝도 없이 말하는 것. 더위에서, 추위에서 버티거나 도망가는 것이 어쩌면 이 사계절을 풍성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본다. 하루종일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를 타고 멀리 가보는거야, 아침부터 하루의 찬거리를 도시락에 싸서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는거야, 하면서. 무엇보다 거기에는 에어컨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