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목요일 김혜영 선생님 댁에 초대받아 갔다. 재작년인가, 봄바람 순례단 일정으로 팽목항에 동행한 인연이다. 어차피 운전해서 가야할 길에 자리가 비어 내어드린 건데 이리도 별 일 아닌 것에 고마워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잊지 않고 함께 갔던 친구들을 초대해주셨다.
도고역 뒤쪽에 처음 가보는 마을이었다. 초록빛 도고저수지가 아름답게 보이는 동네였다. 우리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여러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여러분 있었다. 선생님과 동생분이 함께 차려주신 음식을 맛나게 먹었다. 많은 사람들이 배를 두드리며 먹을 양이었다. 간간히 비가 내려 더위를 식히고 처마 밑에 오순도순 모여 얘기를 나눴다. 선생님은 이리도 크게 밥상을 차려놓으시고도 더 꺼내줄 것이 없는지 안절부절하셨다. 계속, ‘그동안 내가 정말 잘해주고 싶었어요. 진짜 잘해주고 싶었는데’하시면서. 그렇게 잘해줘 놓고도, 잘해주고 싶은 마음.
요 며칠 다정이라는 걸 한참 생각했다. 다정이 좋긴 한데, 다정이라는 게 뭐지. 친절하게 웃어주는건가, 선물을 많이 나누는 건가 싶다가 ‘잘해주고 싶었어요’, 라는 말보다 다정을 설명하는 것은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냥 잘해주고 싶은 순간들이 언제나 있으니까. 잘해주는 게 언제나 잘만 하는 건 아닐테지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흐르고 넘치고 옮아서 울고 불고 하니까.
그 마음을 어떻게든 또 갚고 싶어 김혜영 선생님이 쓰신 책을 오늘에서야 읽었다. tvn조연출로 일하며 방송업계의 부당노동을 고발하고 세상을 떠난 아들, 이한빛pd를 기억하며 쓰신 책이다. 사두고도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꺼냈다 다시 집어넣고를 반복하던 책. 한빛에게 갚는 마음으로, 한빛처럼 살고 계시다고 하니, 내가 얻어먹은 밥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한빛 pd의 몫도 있겠다. 그 몫으로 나도 누군가에게 잘해주어야지. 잘해주고 싶은 마음을 잊지 않고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인데, 요새 내가 잘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923기후정의행진에 무려 홍보팀으로 들어가 포스터도 만들고 회의도 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한테 좀 잘해주고 싶다.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돈을 받게 되어 꼭 그렇게 해내야만,.하는 것들도 있지만, 그냥 잘해보고 싶은 마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만큼 결과물이 따라주지 않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걸 넘어선(?)마음이 인다. 일을 수월하고 능숙하게 잘하고 싶다는 것과 동시에, 최선과 정성을 다해내고 싶다. 그건 함께 일하게 된 이 사람들이 열심 때문이다. ‘왜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서 일하는가, 도대체 왜!’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고픈 나만의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까지 전력을 다해 운동할 생각은 없지만,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싶다. 그냥 그 정도만큼은 잘해보고 싶다.
또 그래서 말인데, 9월에 열리는 기후정의행진은 아마도 되게 재밌을거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지금 말할 필요도 없을테고,.,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탈출구이자 놀이터가 될 것 같다. 집회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쪽수 싸움이다. 그냥 쪽수는 아니고 좀 서로 잘해보고 싶은 어떤 사람들의 밀집과 응집. 그런 날이 될 것 같다. 그날 그냥 오는 게 영 미안하면 추진위원이라는 걸 가입해서 만원을 내면 된다. 그리고 열심히 포스터를 나르는.. 그런 일을 하면 된다. 추진위원 링크는 923 SNS에서 확인하면 되고... 가서 좋아요 열심히 누르는 그만큼만 잘해주기!
왜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해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김혜영 샘 댁에 또 가고 싶다. 가서 인생 최고의 부추전 또 먹고,, 소나기를 맞고 싶다. 어설프게. 되게 잘해드리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