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주 전에 할머니를 만났을 때 '아이고 아파라, 왜 할머니가 이렇게 안 죽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던 것만 계속 생각이 나서, 엄마의 전화를 받았을 때 '할머니, 잘되었다' 싶었다. 마침내 덜 아프구나, 몸을 놓아버릴 수 있게 되었구나.
화장한 할머니의 뼈 사이에 까맣고 커다란 쇳덩어리가 있었다. 진즉 무릎연골을 다 써버리고 대신 넣은 인공관절이었다. 얇은 정강이뼈보다 커다란 그것이 오래 할머니를 괴롭혔다. 꼿꼿한 정신을 놓아버리게 한 것이 바로 그거 때문인 것 같다고 삼촌은 울었다. 나는 언젠간 엄마 다리에 박혀있을 쇳덩어리를 생각하면서 조금 울었다.
할머니는 산에 다녔다. 당연히 무수히 논과 밭을 다녔겠지만 다른 할머니들보다 조금 다른 것은 산에서 캐온 낯선 약초와 버섯같은 것을 시장에 내놓았던 거다. 동네 뒷산인 금계산은 더 이상 캘 약초가 없었고, 광덕산 자락을 돌아다니면서 다래니 개복숭아니 겨우살이니 하는 것들을 채집하러 다녔다. 할머니의 메이트였던 둘째 삼촌과 우리 엄마도 덕분에 연골이 아작이 났다. 세 사람의 무릎을 갉아먹어야 겨우겨우 살아낼 수 있었던 가난이었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그 셋이 연골을 아작낸 이유는 꼭 가난 때문은 아니었다. 그건 그들에게 무척 재미있는 일이었다. 무릎에 인공관절을 달고도 그 셋은 함께 산에 다녔다. 미처 다녀오지 못한, 혹은 빈틈있던 산에 열린 겨우살이니 개복숭아의 소식을 견뎌내지 못했다. 봄이면 그들은 아픈 다리를 끌고 꼭 산에 다녀왔고 마치 처음 얘기한 것처럼 끝도 없이 산삼을 발견한 이야기, 지고 오지 못한 과실의 이야기를 해댔다. 나는 손주 대열에서 유일하게 산에 동행하는 멤버였다. 높은 나무에 엉킨 다래 넝쿨을 넘어뜨려 밑으로 기어들어가 다래를 딴 일, 축축한 산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면서 싸리버섯을 딴 일은 오래된 즐거운 기억이다. 외손주인 내가 겨우 할머니와의 기억을 만들어낸 것은 그 산을 함께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와 가장 많은 산을 함께 다닌 엄마는, 그렇게 많이 울지 못했다. 할머니와 엄마는 서로 굳은 살을 맞댄 사람들 같았다. 애정과 사랑과 미움을 어찌할지 모른채로 딱딱한 거리를 덧대어 갔다. 그렇게 오해한 채로 마침내 끝나버리는 관계. 엄마는 어떨까. 울고 싶을까, 울고 싶은 척을 하고 싶을까. 이 굳은 살은 어쩌면 유전일까 그러면 내 몫이 되기도 할까.
그러다. 잠깐 읽은 안희연의 책 구절.
꼭두는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을 이르는 말로, 이승과 저승, 꿈과 현실을 잇는 존재다. 망자에게 길을 안내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영혼을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꼭두는 언제나 선두에 있다. 꼭두새벽이 아주 이른 새벽을 부르는 말이듯이 꼭두는 언제나 맨 앞에서 길을 내고 불가능한 문을 열며 나아간다. (...)
존재가 깃털 같아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럴 때 인간은 아주 작은 입김에도 날아갈 수 있다. 그럴 때 한 편의 시가 당신의 누름돌, 당신의 한 점이 되어줄 수는 없을까.
할머니의 상여 앞에, 나는 꼭두를 세우고 싶었다. 더 이상은 그 각진 껍질을 내세우지 말아야지. 좀 더 만지고,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지. 다정한 선두가 되어야지. 그래서 좀 더 맘놓고 날아갈 수 있게 해줘야지. 펑펑 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캄캄한 채로 장례식을 거두고, 친구들과 진안과 무주에서 젖은 산을 산책했다. 산과 나무들이 마구 즐거워보이는 그런 비가 왔다. 할머니 생각이 기쁘게 났다. 슬금슬금 버섯을 찾을 때마다 즐거워하던 할머니. 할머니랑 엄마. 엄마와 할머니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