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둔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다. 사무실 근처있는 산부인과에 갔는데, 다른 동네에 있는 규모가 큰 병원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 산모로 보여지는 사람이 별로 없고 출산하기 전이거나 출산이 한참 지난 것 같은 사람들이 주로 있었다. 임신과 출산 보단 미용과 질환을 주로 다루는 곳인 것 같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제품과 광고들을 구경하다가 오랜만에 산부인과 진료를 봤다. 산부인과 의자에 앉아서 침대를 눕히자 천장에 풀FD같은 커다란 화면이 있었다. 거기로 내 자궁경부와 초음파를 구경했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자궁경부암 정기검진을 받으러 간거였는데, 이런저런 검사를 권했다. 이 검사들이 시험 과목이 이라면 국가에서 진행하는 무료 경부암 검사는 국, 정밀 초음파는 영,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 기타 암검사는 수라고 했다. 시험을 잘 본다는 것은 국영수를 다 잘보는 것이지, 국어 하나 봤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며 다른 검사를 필수적으로 해야한다는 걸 여러번 얘기했다. 계획에 없는 호르몬 검사를 해서 이미 써야할 예산을 넘어버린 후라 영어 수학은 다음에 보겠노라 말했다. 선생님은 그럼 일단 그 검사 이후에 결과를 보고 나머지 검사를 해보자고 말했다. 이 시험에 합격해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어떤 상이라도 받을 수 있는 건지 묻고 싶었다. 정답인 몸이 어딘가엔 있는걸까. 90점인 몸, 70점인 몸, 30점인 몸은 모두 100점짜리 몸이 되기 위해 애써야하는걸까. 점수를 받으려면 시험지라도 받아야하는데 산부인과 진료는 갈 때마다 돈을 너무 많이 쓰게 된다.
사과나무 회의날이라, 다같이 모여서 얘기를 하다가 구 사과나무 청소를 하러 갔다. 사과나무는 쓸고 닦아도 별로 티가 안나서 보람이 없는 것이 문제. 그래도 미뤄둔 먼지를, 마침내 닦아냈다. 진작 이렇게 살걸. 그런 티도 안나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공간을 잘 가꾸고 돌보고 살아야할텐데. 어떻게 그 마음과 습관을 일 안에 끼워넣을 수 있을까.
청소를 마치고 자유수영. 5시엔 특히 사람이 없다. 초보라인을 점유하면서 접영연습을 했다. 아무래도 리듬감을 익히기 어렵다. 동작의 세세한 연결이 머릿 속에 그려져야하는데 일단 그것부터 잘 안된다. 몸으로 뭔가 배우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혼란스럽고 어렵고 재미나다.
거실에서 점심을 먹고 놀다가 작업방으로 들어와 일기를 쓴다. 보일러 배관이 가까운 곳이라 금새 따뜻하게 온기가 돈다. 내일부터는 휴가.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