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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산공원 Jan 01. 2024

12월의 근황_231231

1. 

12월이 시작되자마자 작은 교통사고가 났다. 한의원에 간 덕분에 경추가 별로 좋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됐다. 담에 걸린 것이 아니라, 협착이 의심된다고. 노화가 시작되는거라고. 며칠 한의원 진료를 받다 감기에 걸렸다. 나을 때가 되었다싶어 아침 수영을 간 날 열이 39.3도까지 올랐다. 독감이라고 했다. 타미플루에 영양제까지 주렁주렁 주사하고 겨우 살아났다. 병원비 22만원이 나왔다. 독감 기운이 물러나고 다 나았다 싶었는데 또 심한 코감기에 걸렸다. 30대가 되고 코 밑이 헐어 벗겨질 때까지 코를 흘린 건 처음있는 일이었다.  건강한 체질이라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걸 믿지 않기로했다. 타고난 것들은 이미 다 써버렸거나 다 낡아버렸을거다. 이제 믿을 건 오늘의 나뿐이다. 오늘의 끼니, 오늘의 운동, 오늘의 산책. 기왕 낡은 채로 다시 태어난다면 조금 더 물렁한 것으로 만들어보아야겠다. 그나저나 2023년은 낡은 것들과 새로운 낡은 것들이 무사히 교차한 시기였다. 자주 아팠으나 잘 먹이고 잘 돌보며 살았다. 잘 먹이고 잘 돌보았으나 자주 아팠다. 돌봄과 고통은 서로 상쇄하는 것만은 아니란걸.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걸, 무사한 교차 속에서 배웠다. 


  2.

‘오늘도 평안하길’ 이란 호철의 아침 인사 덕분이었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무사와 평안 안에서 지냈다.


 그 와중에 이태원참사를 다룬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북콘서트를 진행했다. 가까운 지역에도 이태원 참사 피해자가 있었다. 피해자 오근영의 누나와 얘기 나눌 수 있었다. 올해의 단어를 나누며 ‘평안’이란 단어를 골랐다. 뱉고 보니 아차싶었다. 지금 여기가 나의 평안을 자랑할 자리인가. 평안이라니. 오근영의 누나는 괜찮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늘도 괜찮고, 내일도 그냥 괜찮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그 앞에서 나의 평안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꾸준히 평안한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 더 부끄러워해도 괜찮겠다. 그렇게 새로운 것들이 태어나도 좋을 것이다.  4. 이후의 모습들은 저렇게 무른 모습이 좋겠어요. (...) 우리, 단단함에 대해 적을 것이 아니라 하염없이 무너지도록 힘쓸 일이 없도록 아침엔 토마토를 구워요 당신을 당신 바깥으로 놓아보아요 - 정말 부드럽다는 건 / 이규리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꾸준히 평안한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 더 부끄러워해도 괜찮겠다. 그렇게 새로운 것들이 태어나도 좋을 것이다.



4.

이후의 모습들은 저렇게 무른 모습이 좋겠어요. (...)


우리, 단단함에 대해 적을 것이 아니라

하염없이 무너지도록


힘쓸 일이 없도록

아침엔 토마토를 구워요


당신을 당신 바깥으로 놓아보아요


- 정말 부드럽다는 건 / 이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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