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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산공원 Nov 28. 2023

사라지는 허송세월_1127

쇼핑 욕구가 마구 샘 솟을 땐 참기보단 그냥 덜 쓰고 덜 파괴적인 구제옷 쇼핑을 택한다. 구제 니트의 계절이니까.


구구허송세월 근처 골목을 가니 많은 가게들 앞에 x표시가 되어있다. 며칠만의 일이다. 말로만 전해졌던 재개발을 정말로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허송세월 앞 뿐만 아니라 꽤 오랫동안 버티고 있었던 많은 구제가게들 앞에도 x자 표시가 쳐져있다. 꽤 비싸지만 좋은 원단 소재의 옷을 팔던 신데렐라 앞에도, 아무거나 싸게 파는 듯 하지만 반드시 뭔가 건질 것이 있었던 옹달샘도 깨끗하게 비워지고 창문에 x표시가 쳐져있다. 그나마 여유가 있는 가게들 앞에는 이전 안내 표시가 걸렸다. 그 많던 옷들은 어디로 갔을까. 오래 꾸려나가던 가게의 빈자리를 보는 텅 빈 마음, 이웃이 사라지는 골목의 풍경.


쓰레기장에는 오래된 가구들이 함부로 버려져있다. 쓸모가 남은 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제 공간을 찾는다. 버려진 의자들이 펜스 앞에 잔뜩 모여 있다. 호철은 이걸 의자들의 경로당이라고 말했다. 낡은 것을 낡은 것으로 괸다.



“누가 사라진 것을 사랑하지?


누가 마지막 남을 것을 보호하지?”



정혜윤의 새 책을 아껴 읽다가 만난 문장이다. 나는 이 골목을 사랑했는데. 풍경을 겨우 기록한다. 모든 것이 너무 순식간일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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