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산공원 Jan 08. 2024

겨울 노지 시금치의 맛_240108

남해에 돌아오는 날. 몽도 사장님이 밭에서 막 캐오신 거라며 시금치 한 봉다리 들려 보내주셨다. 딱 봐도 방금 캔 싱싱한 겨울 노지 시금치였다. 안 그래도 꼭 남해 시금치를 사가야지 마음 먹은 참에 얻게 된 금치 금치 시금치. 선물받은 남해 시금치 덕분에 호철의 머릿 속이 바빠졌다. 시금치 나물, 시금치 파스타, 시금치 된장국...

집에선 주로 호철이 요리를 한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혼자 혹은 몇 명의 동거인들과 살아오면서 밥 짓는 일을 좋아하고 꽤 수월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호철과 지내고 보니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요리의 움직임을 좋아한다. 내게 요리는 여러가지 메뉴를 늘어놓고 복잡한 과정 안에서 다양한 동작을 수행하는 행위다. 요리를 하고 나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 음식의 이름이 가진 비슷한 형태와 맛을 갖추는 것이 요리의 목표고, 어쩌다 잘 얻어걸릴 때 꽤 괜찮은 맛을 내기도 한다. 요리 자체보다는 먹이는 일을 더 좋아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먹으며 다양한 요리를 갖추어야 할 때 더 신이나 하게 된다. 

호철의 요리는 그야말로 요리다. 재료가 가진 맛, 재료를 다루는 과정 중에 생기는 과정들을 꼼꼼하게 살핀다. 호철의 살림이 들어온 덕에 집에 계량기랑 저울이라는 것이 생겼다. 재료의 정확한 무게를 재고 불을 조절하고 타이머를 맞춰 시간에 맞게 조리한다. 심지어 온도도 잰다. 호철이 하는 요리는 일정한 맛을 낸다. 많은 양념을 쓰지 않아도 식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이 드러나고 적절하게 간이 되어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걸 먹다보니 자연스럽게 요리를 하는 빈도가 줄었다. 호철이 일을 하지 않는 날, 퇴근하는 길이면 '오늘은 호철이 뭘해줄까...'하는 맘으로 집에 돌아간다. 왜 여성들이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지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집에 밥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정말이지 좋은 일이었다. 

남해에서 받은 시금치는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시금치 8포기를 깨끗하게 씻고 물에 30초간 데친다. 물기를 짜고 깨소금과 간 마늘, 소금, 참기름으로 간을 했다. 물론 호철이 다 하고 난 시금치만 씻었다. 고소하고 적절하게 간이 된 220g의 시금치 나물은 연분홍색 밑동의 식감이 살아있어 씹을 때마다 단맛이 배어나왔다. 남해의 현사장님과 호철에게 절을 올리고 싶은 고마운 겨울의 맛.



매거진의 이전글 12월의 근황_23123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