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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산공원 Feb 13. 2024

물건에 기대는 마음

[메주쑤기_3주차] 물건이야기

글이되든 밥이되든 일단 매주 써보는 모임입니다.

요술버선, 쏠, 스누피, 산, 제호사, 모험가지나, 오소리, 영은, 임카, 나무가 6편의 글을 함께 쓰기로 했어요.


세번째 주제는 '물건 이야기'입니다.




차를 사는 마음

by. 쏠


 최근 인생 최대의 쇼핑을 목전에 두고 있다. 나는 곧 ‘자동차’를 살 것이다.

바야흐로 진로를 방황하고 있는 30대 중반 미혼의 지방인인 나는 20대를 아름답게 보낸 서울을 떠나올 때 이렇게 다짐했다. 나는 서울을 떠나서 진정한 부의 추월차선을 탈 것이라고. 전셋집에 매몰된 나의 자산을 불려 다시 서울에 내집마련을 꼭 하겠노라고. 그러나 어찌 저찌 지방 살이를 하다보니, 서울의 내집마련보다 더 소중한 버킷리스트들이 많이 생겼다. 그리고 그 다음 삶의 무대를 서울이 아닌 또다른 지역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5년 안에 내집을 마련할 계획은 없다. 결혼도 아직 먼 일 같다. 지방에 살다보면 필연적으로 자동차가 필요하다. 내가 서울에서 내려오는 결심을 할 때에도 엄마가 물려준 모닝이 있었기에 떠날 수 있었다. 나의 초보운전자 시절을 함께한 고마운 모닝이지만, 이제 좀 아픈 것 같다. 그만 보내줘야겠다.


세상에는 수많은 자동차가 있다. 처음엔 중고차를 보았다. 실제 차 운행을 해보기 위해 몇 차례 매장에서 새 차를 시승하게 되었다. 안전에 중요한 기능도 많고 계기판도 번쩍 번쩍하다. 아무래도 새 차를 사야겠다. 우리 아버지는 외제차 척파 사상을 가지신 분이다. 나는 흥선대원군과의 갈등을 피하면서도 영리한 선택을 했다. 국내 대기업의 탈을 쓴 프랑스 브랜드를 보고 있다. 평소 환경을 생각하는 척하지만 실천은 미미하다. 마침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프로모션을 한다. 연비 세계관 최강. 언제 이 가격에 하이브리드 차를 구매하겠는가. 처음에는 낮은 트림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곧 상위 트림이 더 경제적이라는 셀프 가스라이팅에 당해버렸다. 최종 견적을 받아보니 3천만 원이 넘는다. 


이 차를 사는 기회비용을 따져보자. 그 돈으로 주식을 할 수도 있고, 부동산 투자를 할 수도 있고, 하고 싶어하던 공부를 더 할 수도 있다. 근데 지금의 나에게 그 차만큼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 차체가 단단하고 하체가 묵직해서 든든했다. 차에 앉아 쫀득한 핸들을 굴리며 주행하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 차가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불안한 나의 삶에 든든한 동무가 되어줄 것 같았다. 어디든 가게 해줄 것만 같았다. 그 차와 함께 떠나는 여정동안 나는 어떤 발견을 할 수 있을까. 나의 휘청이는 마음을 어디 둘 곳이 없는 모양이다. 어쩌겠는가. 현대인들은 어느 물건에 기대는 마음으로 현재를 가까스로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


한치 앞도 모르겠는 나의 인생엔 생각보다 여러 기회가 널려있다. 더 늦기 전에 어떤 도전을 해야하는 때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의 마음도 떠오른다. 생각만 많은 게으름뱅이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직장에서는 해야 할 책임이 더 많아지고 있다. 지금도 조금 더 누워 있는 내가 좋은데, 아직 세상에 내가 할 일은 많은 것 같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아직 이르기도 하고 늦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당장 차를 사야할 때이긴 하다. 


내가 응원봉을 사게 될 줄이야! 

어머나! 세상에! 

by. 요술버선


 어렸을 때 사촌언니가 H.O.T가 큼지막하게 있는 책받침, 브로마이드 그런 걸 자랑하던 때가 있었다. 나름 최근에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가 그걸 재현해내는 걸 보고 맞아. 저런 시절이 있었더랬지하며 아기 때를 거슬러 가본다.


열다섯 그쯤에 기억나는 건 동방신기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던 친구들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동방신기 이야기하고 너네오빠가 멋지네, 우리오빠가 천사네 그러는 거 신기했다. 조용하게 구석에서 음악만 듣고 공부하는 줄 알았던 친구는 축제 때 가장 강력한 라이징썬 무대를 선보여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지금은 고향마을의 공무원이 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또 한 친구는 팬픽을 써서 팬카페에 올리고 꽤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던 것 같다. 모여서 같이 읽고 조회수 올라가는 것을 자랑하고 그랬던 것도 기억난다. 그 친구는 입시컨설턴트로 승승장구 있다고 들었다. 아무튼 그 당시에 그런 열광들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는데 말이죠.


그런 제가 샤이니 그것도 키 단독 콘서트를 간다구요? 언제부터였을까. 관심을 갖고 보게 된 것이. 나혼자산다에 나와서 수상스키를 타고 물에서 자유자재로 겁도 없이 놀아서 일까? (한편 드는 생각은 역시 어렸을 때 운동을 잘 해둬야 그 체력으로 또 버틸 수 있는 거구나 싶기도 했다.) 아니면 놀라운토요일에서 다른 아이돌들의 커버무대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포인트를 잘 따지 싶었을 때 일까? 아니면 문명특급에서 재재와 컴눈명(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으로 어떤 노래를 고를지 설전하던 때부터였을까? 더 거슬러 올라가서 드라마 38사기동대 오프닝을 불러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링딩동 아니 셜록을 부를 때부터일까.


 아무튼 올림픽공원을 처음, 그것도 콘서트 때문에 가게 된 것이다. 입구에 다다르기 전부터 드레스코드인 블루로 포인트를 준 사람부터 온갖 파랑으로 뒤덮은 사람들까지. 그 중에 파랑으로 머리 염색한 사람이 멋졌다. 그리고 다들 투명한 파랑색의 보석 같은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솔직히 미리 사둬야 하나 싶어 찾아보았는데 없어도 노래만 들으면 되었지 뭘 사나 싶어서 스탠딩을 버틸 두 다리만 준비해갔다. 그렇지만 이미 홀린 듯 응원봉 사는 줄에 서있었다. 공원 안에 가득한 사람들의 기대감에 응원봉이 더 반짝여보였다.


 공연 시작 두시간전에 갔는데도 눈 깜짝할 새에 시간이 흘러서 입장을 하고 있었다. 공연장 안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별세계였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어둑어둑한데 무대조명만 몇 가지 켜져 있었고 배경음악만 흘러나오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미 응원봉을 흔들며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응원봉을 흔들고 있는데 응원봉에서 빨간빛도 노란빛도 나오는 것이 아닌가. 고장 난 줄 알았는데 뒤를 돌아보니 파도타기처럼 응원봉이 반짝거렸다. 이것이 바로 요즘의 무대장치구나 싶었다. 이런 블루투스의 파장이여 멋지다. 진하님의 글도 떠올랐다.


 대체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더 기대가 되는 것이었다. 공식커뮤니티를 하지 않고 카니와 만두 만들었던 나혼자산다를 보고 카니가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콘서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설마 자리가 있을까 싶었는데 스탠딩 석은 아직 남아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예매를 해두고 노래만 몇 곡 더 듣고 갔는데 오프닝 컨셉이 지금까지 나왔던 앨범들을 자판기에서 고르듯 통통 미디어아트로 보여주다가 키가 등장하면서 밴드 사운드로 빠바밤 시작했다. 반주도 라이브라니 놀라면서 이효리의 레드카펫처럼 당신도 김기범의 밴딩머신을 하고 싶었던 거구나 생각해봤다.


 생각지도 못한 밴드 사운드라 첫 곡이 무얼까 더 기대되었는데 최근 앨범의 타이틀곡인 굿앤 그레이트였다. 시작부터 정신을 잃을 뻔했지만 신나게 리듬을 타고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계속해서 감동적인 밴드사운드와 라이브 목소리 음원보다 소울이 가득하잖아! 마음속에 느낌표를 계속 꽂으며 서 있었다. 강력하게 춤추면서 노래까지 탄탄하다니 정말 멋지다 싶었다. 아직 초반인데 얼굴에 땀이 비오 듯 쏟아지는 걸 보면서 노래를 더 크게 따라 불렀다. 내 등도 촉촉하긴 마찬가지였다. 한파였는데 그곳은 겨울이 아니었다.


 스우파2 콘서트도 정말 가고 싶었는데 티켓팅에 실패했다. 그렇지만 원밀리언의 레디님도 무대에서 같이 볼 수 있었고 중간에 카니님도 엄청나게 파워풀한 댄싱을 주고 가셨다. 밴드와 라이브와 댄스까지 그리고 적재적소의 무대장치로 지루하지 않은 동선까지. 세 시간 응원봉을 들고 있으면 그게 들고 있어질까. 팔도 아프고 손목도 아파서 던질 아니 떨어뜨릴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당시에도 아무렇지 않았고 이후에도 괜찮았다고 한다. 주변에서 아무도 응원봉 떨어뜨리지도 힘들다고 뒤로 밀려나오는 사람도 없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방에 응원봉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게 아직 어색하고 전생 같지만 꿈이 아니고 우리 다 여기서 즐겁게 놀았어 그러니 겨우 시간쯤 흘러 또 만나자고 하는 멘트까지 기억나게 하는 공연이라 정말 오랜만에 즐거웠다. 그리고 앵콜을 팬이 대신 불러주는 공연이 있다? 가솔린의 전주인 빠빠빠밤 빠빠빠바밤부터 무반주로 따라 부르고 거기에 키의 앵앵콜까지. 팬 문화라는 거 아주 조금 경험해본거겠지만 정말 대단했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소녀들하고 다시 또 꺅꺅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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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버선 240203

스탠딩 세시간? 쌉가능이었다. 바운스타며 수천명의 팬들과 있다는 건 짜릿했다. 퇴장하는 길은 그 빛나던 응원봉은 다들 어떻게 바로 숨겼는지 볼 수가 없었지만 트위터에, 유튜브에 후기와 영상을 계속 올려주셔서 잘보고 있습니다.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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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k full Cam]240128 KEYLAND-ON:AND ON l 미워(The Duty of Love) l Fancam l 키콘서트 l 직캠

https://youtu.be/Kri-j54shkw?si=-Zflq0ysy9LiLeGx


생에 첫 지갑과 가방. 

프라이탁 F05 BLAIR, F45 LOIS 

by. 제호사


프라이탁이라는 브랜드를 처음 알게 된 건. 2011에 발행된 브랜드 전문 잡지 매거진B였다. 잡지책의 창간호 브랜드로 프라이탁을 다뤘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이 갔다. 재활용을 하면서도 디자인을 놓치지 않는 균형잡힌 브랜드로 소개되었다. 가방소재를 트럭의 방수비닐로 이용하고 가방끈의 소재는 안전벨트. 기능적으로 튼튼하고 방수가 되었다.  자원의 순환이라는 가치관을 지켜가면서도 디자인을 놓치지 않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하나 사고 싶어서 매장을 갔었는데, 터무니 없이 비싸서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정말 신기하게도 지갑과 가방을 내 돈을 주고 산 일이 없었다. 선물 받거나 필요 없어져서 받은 것을 썼다. 낡아갈 때에 누군가가 또 선물을 해주곤 했다. 가방이나 지갑이 기능에 문제가 없으면 특별히 무엇을 쓰던 상관이 없었다. 낡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본연의 기능만 살아있다면 그대로 쓰는 사람이니까. 지인들이 그런 물건들을 보고 안쓰러웠던지 지갑이나 가방을 선물해주곤 했다. 

처음에 샀던 건 프라이탁 지갑이었다.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에 자주 가는 편집숍이 있었다. 편집숍 내에 프라이탁 매대가 작게 있었는데 우연히 지금 쓰고 있는 지갑을 발견했다. 85mm x 125mm x 13mm 크기. 짙은 녹색바탕에 흰색, 주황색 포인트라인. 지퍼가 달려 카드와 동전을 넣고 다니기 좋은 심플한 지갑. 오! 색, 질감, 기능까지 모두 나 다운 물건이었다. 순간 드는 생각은 ‘단 하나의 지갑을 산다면 이 지갑으로 하고 싶다!’ 그렇게 첫 지갑을 샀다. 

지갑을 사고나서는 이 프라이탁 지갑을 닮은 나다운 가방을 꼭 사야겠단 생각에 사로잡혀서 한동안 프라이탁 매장에 가서 모델 하나하나를 비교하며 살펴봤다. 내가 사고싶은 모델은 F45 LOIS 였다. 290mm x 400mm x 180mm 크기로 노트북과 책이 넉넉하게 들어가는 키기다. 짧은 여행에 필요한 옷가지도 넣을 수 있는 넉넉함. 무거운 장을 봐도 찢어질 일없는 튼튼함을 갖췄다. 무엇보다 좋은 건 애초에 트럭용 방수비닐천이 재활용된 재질이라 아끼지 않고 막다뤄도 되는 멋이 있다는 점이었다. 모델을 정한 뒤에는 내가 원하는 짙은 녹색 바탕에 흰색, 주황색 포인트의 가방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매주 프라이탁 매장을 들렸다. 그리고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게된 녹흰주 F45 LOIS ! 비싼 값을 계산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예정 없던 가는 비가 내렸다. 방금 산 프라이탁 가방을 매고 토도독- 비를 맞추며 지하철역까지 걸었다. 토도독- 좋은 기분. 오래도록 쓸수있는 내 물건, 나다운 것을 조금 더 늘려가고싶다.



입춘의 다짐_하얀 도자기

by. 산


현관 바로 옆엔 도토리나무 색의 작은 선반이 하나 있다. 기능이 별로 없는 오로지 장식의 역할만 하는 선반이다. 디퓨저나예쁜 성냥들, 가을엔 모과 같은 것을 올려둘 때 쓴다. 세 번째 칸엔 광목천으로 예쁘게 싸여있는 하얀 도자기가 있다. 그건 나의 조르바다. 그게 나의 조르바인가? 2년 전 겨울 조르바가 떠났다.


아픈 곳 하나 없이 그저 귀엽기만 했던 조르바는 갑자기 아팠다. 하루 이틀 치료를 받으면 낫겠거니 하고 맡겼던 병원에서 증세가 빠르게 안 좋아졌다. 그러다 조르바를 병원에서 잃을 것 같아 집으로 데려왔다. 사흘 동안 집에서 함께 낮잠을 자다 앓다 내 생일에 숨을 거뒀다. 숨은 거두는 것. 마지막으로 들이킨 큰 숨이 몸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았다. 뼈와 피가, 동그란 몸이 숨을 거두어갔다. 조르바의 몸은 오래 따뜻했다가 부드러웠다가 천천히 식었다.


장례는 다음 날이었다. 긴 밤 동안 죽은 조르바의 몸을 만졌다. 죽은 것을 만지는 일. 그건 상상 속에만 있던 일이었다. 죽은 건 무서운 건데. 그 무서운 걸 내가 만질 수나 있을까. 이상하게 죽은 조르바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안고 부비고 뽀뽀하면서 죽음이 언제 경계를 넘을까 생각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가 어떻게 달라진걸까. 네 몸이 이렇게 남아있는데.


다음날이 되어 집을 떠날 때 조르바는 딱딱했다. 몸을 둥글게 굴려야 들어갈 수 있었던 이동가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펴진 다리를 굽히면 똑 부러질 것 같았다. 죽음의 물성. 마지막으로 누워있던 린넨천에 조르바를 감싸고 장례식장에 갔다. 생에 가장 비싼 옷을 입고 조르바가 떠났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시간이 지나고 조르바의 하얀 분골을 받았다. 유골함은 고를 수가 있었다. 통풍이 잘 되는 소재로 빚어진 고급스러운 도자기와 그냥 평범한 도자기. 이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가장 평범하고 저렴한 도자기를 골랐다. 제습제와 함께 분골이 도자기에 담겼다. 굵기가 고르지 않은 가루. 가끔 습기가 가득차서 수제비처럼 반죽이 되면 어쩌지 하는 상상을 했다. 


그 항아리가 집 현관에 고요한 물건으로 있다. 2년 만에 그 항아리를 다시 열어봤다. 다행히 수제비처럼 되진 않았네. 슬픔은 어느 정도 건너갔다. 마구 울진 않는다는 거다. 봄이 되면 열매 맺는 나무 밑에 살살 뿌려주어야지, 라는 생각만하고 두 번의 봄을 놓쳤다. 기왕이면 조르바를 닮은 커다란 열매가 달리는 나무. 아니면 조르바처럼 단내가 나는 꽃나무. 항아리 앞에서 우는 것보단 나무 밑에서 우는 게 더 멋지니까. 이번 봄엔 이 물건을 꼭 보내주어야지 다짐한다. 마침 입춘이다.


그냥 집안을 둘러보다 항아리를 발견했습니다. 저 물건은물건인가 물건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어떤 중요한 경계에 대해 가르쳐준 물건이지요. 가끔 사랑이 너무 많아서 없애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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