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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산공원 Mar 03. 2024

타자 리듬을

[메주쑤기 클럽] 다섯번째 주제  - 음악

글이되든 밥이되든 일단 매주 써보는 모임입니다.

요술버선, 쏠, 스누피, 산, 제호사, 모험가지나, 영은, 임카, 나무가 6편의 글을 함께 쓰기로 했어요.


다섯번째 주제는 '음악'입니다.



타자 리듬을

by. 요술버선


혹시 화가 날 때 듣는 노래가 있는지 궁금하다. ‘데보라리비의 살림비용’을 읽다가 나만 또 억울해지는 거 같아서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얼핏 알 것 같다가도 유구한 젠더갈등과 자본주의시스템과 보이지 않는 미래와 그렇지만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생각하며 참아도 본다.


그러다 방에 터덜터덜 들어와 문을 쾅 닫고 이어폰을 귀에 꼽는다. 소리는 귀가 괜찮을 만큼까지 최대한 올린다. 나의 음악서랍에 들어가 (멜론은 언제 플레이리스트를 음악서랍으로 바꾼거지) 2022년 11월 플리를 켠다. 거기엔 자우림의 영원한 사랑 앨범이 있다. 공교롭게 나의 결혼식 마지막 행진곡도 핑클의 영원한 사랑이었다는 것. 사랑밖에 모르는 MBTI를 가진 나는 또 사랑으로 화를 가라앉힌다. 웃기지만 슬프다. 또 웃긴 점은 앨범은 통째로 들으면서 최근담은순으로 정렬을 해둬서 앨범의 마지막트랙부터 재생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든이의 의도와 다르게 거꾸로 듣게 되는데 이 맛이 또 괜찮다. 특유의 어둡고 축축한데 명랑함이 섞인 자우림의 앨범을 다 듣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는데 그 앨범이 끝나고 껴있는 곳이 정밀아의 무명武名이다. 전주부터 묵직한 악기 소리가 나고 담담한 목소리가 나오면 왈칵 울 것 같다가도 이런 슬픔 속에 있는 것도 필요한 거겠지 하면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요가선생님의 어깨내리시고 힘 빼시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뱉으세요. 하나, 둘, 셋을 마음속에 재생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무명을 반복 재생하게 되는데 내가 또 얼마나 이름값하고 살고 싶어가지고 힘 빡 주고 살았나 긴장을 그렇게 하면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나 싶어가지고 한참 숨을 쉬어본다.


 그런 리듬으로 산다. 와다다다다 달려가면서 일하고 약속잡고 그러다가 뭔가에 걸려 넘어져 힝하면 방에 들어가 이어폰을 꼽고 그렇게 듣고 뭔가를 읽고 숨을 쉬어보고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 하며 한껏 쪼글해진 우주의 먼지처럼 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냥 출근하고 그냥 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내다가 또 방에 들어간다. 이런 시간도 필요한 게 아닐까 하며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가며 탄다 리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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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년 2월 24일의 요술버선

일할 때 제품 라벨을 뽑아야해서 한꺼번에 많은 양의 제품번호를 타자 칠 때 이제는 리듬을 탄다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낄 자리가 없었다..






우리 집에 필요한 건 내게 맞는 인테리어

by. 산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돌아다니거나 산책을 하긴 너무 추운 날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통 가고 싶은 곳이 없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주말엔 집에 있거나 집 근처 단골 카페에 간다. 그런 주말이 이제 익숙하고 반갑다.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면 어제 쌓인 설거지를 하고 밥을 차린다. 요즘 동네에 커다란 마트가 다시 문을 열었다. 우리가 1층이라고 부르는 언덕 아래 마트까지 걸어가 식재료를 사온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동네 마트가 있다니. 거의 주상복합이라는 농담을 한다.


일 년 전 이사 온 집은 언덕의 꼭대기에 있다. 이 지역을 꽤 오래 돌아다녔다 생각했는데도 처음 보는 동네였다. 본 중에 가장 높고 가장 낡은 동네다. 주변은 재개발되는 아파트로 둘러싸여있다. 아마도 동네를 발견하지 못해 개발을 못했을거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꼭꼭 숨은 동네에 우리집이 있다. 압도적인 언덕의 높이나 좁은 골목이 조금 낯설긴 하지만 집 근처에 도착하면 숲 냄새가 난다. 산책로가 없는 산이라 사람이 자주 드나들지 않는다는 점이, 비 오는 날 물에 젖은 흙냄새가 퍽 맘에 든다.  


이 집은 89년에 만들어진 집이다.(나랑 동갑이잖아!) 오래되고 멋진 타일이 깔린 거실 테라스에 다행히 크게 오래되지 않은 샷시가 설치되어있다. 덜커덕 걸리며 삐익 소리를 내던 샷시는 호철이 기름칠을 한 덕에 부드럽게 열린다. 베란다로 넘어가는 중간문은 오래되고 낡아서 커튼으로 가렸다. 올 겨울엔 시장에 가서 두꺼운 비닐 다섯 마를 사 창문에 맞게 재단해 붙였다. 외풍을 막아주는 꽤 튼튼한 보호막이 되었다.   


낡은 집을 고치는 일은 호철과 나의 흡족스런 놀이다. 어느 날은 주방 싱크대의 수압이 줄어들더니 ‘쫄쫄’의 수준도 안 될 정도로 물이 나오지 않았다. 호철이 이 집과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수전을 주문했고, 오래되어 바스라지기 직전인 수전을 교체했다. 타일공 겸 화장실 수리공과 살게 되면서 이 집에 생기는 문제들은 그야말로 쨉이 안되었다. 집아 아무리 낡아봐라, 우리가 다 고치고 살아주겠다 하며.


집을 고치는 일도, 집을 꾸미는 일도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다. 몇 년 전 책방을 운영하고 망했을 때 들고 온 가구들은 여전히 꽤 그럴싸한 무드를 만들어낸다. 오래된 집과 잘 어울리는 오래된 가구들이다. 한 쪽 벽면엔 오랜 위시리스트였던 CD플레이어를 걸었다. 나의 사상과 취향을 드러내는 포스터와 함께. 아침밥을 준비하거나 청소를 할 때 CD를 골라 음악을 듣는다. 봄을 맞이하며 우리가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은 <황푸하의 인테리어>. 세상에 우리 밖에 없는 낡고 안전한 집에서 우리만 볼 수 있는 춤을 추면서 음악을 듣는다. 


작은 집이라도 몰딩이 하얗다면 넓어 보여요. 

붉은 조명들을 곳곳에 배치하면 무드를 만들죠. 

한쪽 벽엔 나의 사상을 나타낸 포스터가 당당하게

모자란 공간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커피 테이블

쉬지 않는 씨디 플레이어 우우우우 우우우우

싱크대 옆엔 라디오 우우우우 우우우우

손 닿을 곳에 기타를 두자. 

거실 창문은 햇빛이 들어오는 동남향으로

난이 그려진 샷시는 커튼으로 가려요.

쉬지 않는 씨디 플레이어 우우우우 우우우우

싱크대 옆엔 라디오 우우우우 우우우우

손 닿을 곳에 콘트라베이스. 

우리 집에 필요한 건 내게 맞는 인테리어

우리 집에 필요한 건 내게 맞는 인테리어

황푸하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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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음악'을 쓰는 건 어려울 것 같아 애초에 시도를 하지 않았다. 즐겁게 들은 음악과 둘러싼 이야기를 썼다.



사계절, 보사노바

by. 제호사



보사노바. 사계절에 다 어울리는 음악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보사노바는 봄에 들으면 봄 바람 같고, 여름에 들으면 여름이 가진 나른함이, 가을에 들으면 가을의 선선함이 느껴진다. 겨울에 들으면 따듯한 음료를 마시며 쉬는 느낌이 든다. 보사노바를 처음 들었던 것은 우연하게 알게된 나희경 앨범 때문이었다. 보싸다방으로 활동한 2010년 <찾아가기>라는 EP 앨범이었다. 나희경씨가 가진 목소리의 매력. 보사노바 위에서 유려하게 노는 목소리였다. 자주 들었던 음악은 [보싸다방 - 음악이 들려오네, 다짐]  2012년 앨범 <나를 머물게 하는>에 편곡된 춘천가는 기차는 나희경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다음으로 알게된 보사노바 앨범. 선우정아를 몹시 좋아하던 시기에. 선우정아씨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찾아 듣게된 1964년 앨범 <Stan Getz & Joao Gilberto - Getz/Gilberto> 보사노바의 증조할아버지 격이라고 하는 클래식 앨범이라고 한다. 전 곡이 정말 좋다. 보사노바가 이런 것이었군! 하는 마음이 든다. 한동안 이 앨범을 많이 들었다. 


보사노바는 해외의 음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국내에서도 보사노바 음악의 시도들이 많았단다. 그래서 나희경씨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보사노바라고 해서 찾아들었던 음악은 1989년 앨범 [장필순 - 어느새] 장필순씨의 1집 앨범 타이틀곡이다. 1996년 앨범 [이소라 - 청혼]. 보사노바인줄 모르고 듣던 음악이었는데, 알고 들으니 정말 보사노바였달까?  


가장 좋아하는 보사노바 앨범은 2021년 <Leesangsoon> 이다. 이상순의 이름을 단 첫 솔로 ep앨범이라고 한다. 이상순씨는 지속적으로 보사노바에 관심이 있어서 틈틈히 보사노바 풍의 노래를 콜라보로 만들었다. 이 앨범은 전 곡이 다 보사노바. 선우정아가 함께한 4번 트랙의 [네가 좋일 내려]도 좋지만 특히나 좋은 건 2번트랙 [안부를 묻진 않아도] 헤어진 연인에게 보내는 아쉬움, 긍정적으로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바람이 보사노바라는 음악으로 풀어지는 게 정말 좋다. 쓸쓸하지만 긍정적인 산들산들한 바람이 부는 느낌. 사계절 언제 들어도 참 좋다.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 때 찾는 음악 영화 

- 싱스트리트

by. 스누피



내 삶은 언제부턴가 쉴 새 없는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사실 몇 년 전엔 이 사실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나이가 20대 후반에 진입하면서부터 하나둘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이 생겼고, 나는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불안함과 쪼그라드는 자존감은 덤. 그런 기분이 들 때 나는 가끔 이 영화를 찾아본다.


싱 스트리트 

감독: 존 카니 / 개봉일자: 2016년 5월 19일(대한민국)


나는 영화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한다. 그러니 음악영화가 나오면 따지지 않고 무조건 본다. 음악영화를 보다 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들이 있다. 꿈, 도전, 창조, 음악을 좋아하는 주인공들, 그런데 현생에선 쥐뿔도 없는, 그래서 너무 불확실한 이들의 미래, 그 미래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노래들. 이 영화에서도 이런 주제들이 다뤄지는데, 내가 여태 봤던 다른 음악영화보다 훨씬 선명하다. 무엇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정말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가진 꿈과 도전이 얼마나 허망하고 무모한 것인지 드러난다.


[줄거리]

영화는 아일랜드에 사는 ‘코너’가 ‘라피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나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코너는 기울어가는 가정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교를 옮기게 된다. 그러다 하굣길에 라피나를 만난다. 라피나는 학력 불명의 무직자로, 언젠가 런던에 가서 모델 일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꿈만 갖고 있다. 코너는 라피나에게 쥐뿔이라도 있어 보이고 싶어서 학교에서 밴드를 한다는 영혼의 구라를 치는데, 어쨌든 그 이후 진짜로 밴드를 만들어서 꽤 승승장구한다. 나름 뮤직비디오도 찍고, 학교 축제에서도 성공적으로 공연을 끝낸다. 그리고 코너가 라피나와 쪽배를 타고 런던으로 가기 위해 바다를 건너며 영화가 끝난다.


영화가 코너와 라피나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나는 사실 코너의 형인 ‘브랜든’에게 더 시선이 쏠렸다. 브랜든은 음악도 좋아하고, 한때는 꽤 날렸던 인물이었다는데, 현재는 어떤 이유에선지 대학을 중퇴하고 집 밖을 전혀 안 나가는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렸다. 브랜든은 집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LP를 듣는 것이 인생의 낙이다. 동생 코너가 밴드를 시작하게 되면서, 브랜든은 코너에게 음악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승승장구하는 코너를 힘껏 응원하면서도, 동생과는 달리 아무것도 성취해내는 것이 없는 자신을 비관하며 LP를 부숴버리기도 한다. 브랜든은 히키코모리답게 영화 내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다. 코너가 자신의 학교 축제에 형이 와줄 것을 무척 기대했지만, 결국 집을 나가지 않는다.


그런 브랜든이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을 나가는 순간이 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코너와 라피나는 쪽배를 타고 런던으로 갈 생각으로 자고있는 형을 깨운다. 브랜든은 대책 없이 떠나려는 코너에게 아는 사람은 있는지, 돈은 있는지 물어본다. 물론 그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머뭇거리는 코너에게 브랜든은 됐고, 당장 가자며 여태 한 번도 나가지 않던 집을 박차고 나간다. 그리고 먼 바다로 나가는 동생을 보며 경쾌한 점프와 함께 환호성을 내지른다.


[줄거리 끝]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선명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 그것이 망하더라도, 조롱받더라도 상관없다. 그게 바로 락이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가진 무모한 락스피릿이 부럽다. 누구보다 그 무모함을 동경하지만, 어느새 용기를 잃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내 모습이 한심할 때도 있다. 그래도 자기 자리를 잘 잡고 지내는, 언젠가 나에게 박탈감을 주기도 했던 내 또래 친구들을 떠올려보면 나는 여전히 무모하게 살고있구나 생각한다. 무모한 삶이여,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도전이여, 틀에 박히지 않은 창조성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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