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시즌 - 매주산책쓰기 1주차
by. 산
능소화가 핀다. 여름의 입구를 알리는 커다랗고 인심 좋은 주황색 꽃. 이 무렵이 가장 좋은 계절이니 애인의 손을 잡고 산책을 나선다. 길게 늘어선 플라타너스도 길을 지나서,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하면서 이름을 외운 남천 꽃길을 지나서 좋아하는 동네 술집에 닿는다. 그곳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아니 가는 척 뱅글뱅글 돌다가 결국 들어가고 만다.
이 술집은 최근에 자주 찾게 되는 동네 맛집이다. 화양연화 포스터가 붙은 붉은 벽지에 어둡고 컴컴한 조명의 밝기가 딱 맘에 든다. 70년대부터 시작해 2000년대까지 온갖 옛날 가요가 나온다. 노래와 조명보다 좋은 건 안주다. 교촌치킨보다 맛있는 깐풍기를 시키고 맥주를 시킨다. 마치 산책의 목적이었던 것처럼.
이전에도 느꼈지만 이 술집은 레즈비언에게 소문난 맛집이다.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 앉는데 지난번에는 왼편 테이블에, 이번에는 뒤 쪽 테이블에 레즈비언 커플이 앉았다. 그들은 꽤 앳된 얼굴로 소주를 마신다. 그들의 테이블엔 이 집의 메인안주인 짬뽕탕과 탕수육, 서비스로 나온 짜장면과 소주가 몇 병 있다.
깐풍기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단무지를 집어먹으면서 그들의 테이블은 몰래 몰래 본다. 그들은 우리처럼 서로에게 깐풍기를 먹여주거나 손을 잡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에 슬리퍼를 신은 발등과 샌들을 신은 발등이 하나씩 서로 닿아있다. 술을 마시면서 안주를 먹으면서도 발등은 계속 붙어있다. 그리고 굉장히 훔쳐듣고 싶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노래를 따라 부르느라 미처 듣지 못한 대화는 잘 모르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모양이다. 눈을 맞추면서 웃는다. 그들은 아주 느리게 오물오물 먹는다.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역시 레즈비언에게 소문난 맛집이야 하는 듯이. 안주를 별로 먹지도 않으면서 소주를 한 병 더 시킨다.
그 사이에 우리가 시킨 깐풍기가 나오고 우리는 밥을 먹지 않은 사람들처럼 다시 신나게 먹는다. 맥주를 한 병 더 시킨다. 그들이 마시는 소주의 속도를 천천히 의식하면서 먹는다. 그들은 서로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는데 그러면서도 발등을 전혀 떼지 않는 게 신기하다. 소주를 한 잔 마시고 그게 쓴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짬뽕탕을 한 입 떠먹고, 그걸 귀엽다는 듯이 본다. 나는 그 사랑이 너무 좋아서 자꾸만 쳐다본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소문난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들어가본다. 자기 소개를 해야 등업을 해준다기에 슬쩍 글을 올린다. “미미반점에서 소문 듣고 왔습니다. 이 동네 온 김에 끝내주는 능소화 스팟에 들러보세요. 능소화 담장 앞에 사랑하는 사람을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주세요. 여름 능소화는 축복. 사랑은 축복.”
(*산책을 하면서 마주한 장면에 상상을 더해서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by. 제호사
혼자 산책을 하자라고 생각하면 일단 무작정 나가지는 않는 것 같다. 특정한 가게나 건물 혹은 풍경이 먼저 떠오르고 거기까지 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면 산책을 한다. 그러니까 대략적으로 그 곳까지 가보자고 생각한 뒤에 산책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대신 어떤 길로 갈지는 정하지 않는다. 산책하면서 즐거운 일은. 처음 보는 길이 있는데, 이 길로 가도 가려고 했던 곳과 이어질 것 같은 길을 가보는 거다. 그래서 모르는 길로 가봤는데 알던 길과 장소가 나올 때의 기쁨이 있다. 그리고 모르는 길로 갔을 때, 발견한 신기한 건축물이나. 간판을 구경하는 일도 즐거움이다. 새롭게 발견한 가게 인테리어를 품평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by. 달솜
이빨이 부서졌다. 평소처럼 치실을 양쪽 검지에 돌돌 말아 욕실의 거울을 노려보며 치과의사가 된 것 마냥 전문적으로 탁 슥슥 빼내는데 덜컥하며 어금니의 조각이 나와 버렸다. 다른 동물의 뼛조각 같기도 한 그것은 감자탕에서 본 것과 비슷하게 생겼다. 국물에 밥을 먹다가 뚝배기의 바닥쯤에서 건져 올린 숟가락에서 본 뼛조각. 감자탕을 먹지도 않은 저녁 양치시간이었는데 그 조각이 나온 것이다.
이 조각을 보았을 때 내 이인지, 내 것처럼 붙여놓은 도자기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금이빨이었으면 내 것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니, 금이면 더 잘 붙어 있었을까? 어금니를 금니로 한번 때운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크게 웃거나 크게 벌려 쌈 싸먹을 때마다 입속의 금니는 침입자 같이 느껴져 다시 도자기 이빨로 돌아왔다.
결국 치과에 가서 어금니 조각사건을 이야기하고 사진을 몇 방 찍고는 ‘충치입니다.’라는 아주 슬픈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양쪽에 데칼코마니처럼 말이다. 의사선생님은 이제 내 또래거나 나보다 어려보였다. 모니터에 내 나이를 가리키며 '이제 잇몸건강까지 생각하셔야 합니다. 치실은 매일, 스케일링은 분기별'이라며 주의를 주셨다.
건치아동 타이틀을 받았던 과거의 영광을 아직 잊지못했는데 도자기이빨을 진짜 내 이빨인거처럼 착각하며 살았다. 이빨 사이에 무언가 끼어 있다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이젠 하루 세 번 양치시간이 로션 바르는 시간보다 길어지고 있다.
길어진 양치. 거울을 보면서 입 안을 확인하는 시간도 늘었다. 쓸데없는 생각도 늘었다. 인간의 이는 치아라고 해야 한다지만 생각 없이 사는 날이 많은데 이빨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만약 깨진 이빨이 그때 했던 금니였다면, 고금리시대에 조금이나마 든든한 발걸음이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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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이달솜
‘금이빨 삽니다.’ 정말 금이빨을 사고 팔 수 있는 걸까??
분기별로 치과를 가는데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발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