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기를 하기_7월 13일

by 소산공원

다솜이랑 아침에 뽀시락거리다가 네이버 주간 일기 챌린지를 권유받았다. 일기쓰는 김에 네이버에도 적을까싶어 오랜만에 내블로그에 들어가봤다. 2015년에 썼던 글이 마지막이었다. 비공개로 된, 꽤 많은 글들이 남아있었다. 20대 초중반에 드문드문 썼던 책 리뷰와 싸이월드에서 옮겨왔던 짧은 글과 일기들. 감성천재가 따로없다. 나의 20대는... 지금보다는 훨씬................멋부리는 사람에 가까웠던 것 같다. 신기한 건 20대 초반의 글이나 지금이나 문체는 거의 비슷하단거다. 삶이 완전 달라졌으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누가 봐도 내가 쓴 느낌의 글들이 남아있다. 아주 잠깐 공개를 할까하다가 영원히 부끄러워질까봐 참네.... 특히 2013-15년 부근의 나는... 너무 계몽적이라 토할 것 같다.



오랜만에 멘야마쯔리에 갔다가 쌍용동에 궁금했던 카페에 들렀다. 화장실이 재밌어서 깜짝 놀랐다. 할머니집에 있을 것 같은 자주색 변기와 세면대, 절제된 조명과 휴지걸이 같은 오브제들이 뭔가 묘하게 멋지고 이상해서 반드시 사진을 찍어야하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변기에 남은 결과물(...)들이 어느 각도에서 봐도 하나도 보이지 않아 신기했다.




오후엔 '더 이상 현수막은 없서' 공지를 드디어 올렸다. 꽤 오래 전부터 논의했던 얘기였는데 이제야 마무리를 짓는다. 밖으로 보이고 싶은 이유, 감추고 싶은 솔직한 이유들도 있지만.. 어쨌든 고민을 담아 정성스럽게 썼고 사장님과 시내가 친절하게 다듬어주었다.

가장 고민이 되는 건 여전히, 아무래도 살림살이다. 지금 사과나무는 딱 2.5인 정도 먹고 살만큼의 형편이다. 일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이지 쳐내고 줄여야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선언을 해버렸으니 겁이 나기도 한다. 그치만.....방향을 옮겼으니 뭐라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덜 해로운 디자인, 조금 더 새로운 방식들을 제안해나갈 수도 있을테고.. 하지만 역시나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용기가 지금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니 서늘하다. 앵이들이 더울까봐 창문을 조곰씩만 열어두었는데도 틈새로 물이 들어찼다. 그냥 마르겠거니 그대로 둔다. 요새 요가 일기를 안 그리는 이유는 요가를 안가서다. 무지막지한 생리가 일주일 째 멎지 않고 있다. 요가에 너무 가고싶은데 가기 싫은 마음이 동시에 있다. 요가 안가면 불법.. 뭐 이런거 만들어지면 가겠는데.... 하지 않기, 혹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로 연명한다.






일기를 쓰고 있으면 책상 밑으로 모기가 말도 안되게 몰린다. 잘 때라도 안전할까 싶어 침대 맡에 구문초를 두었다. 제라늄은 싫은데 구문초는 좋은 향이 난다. 덕분인지 잘 때는 모기에 물리지 않아.

사진에 보인 김에. 너무 좋은 활활발발. 아까 말한 2013-15년 쯤에 나는 온갖 스승들을 책으로 찾아다녔다. 수유너머 연구자들의 쉬운 책, 길담의 책, 민들레, 하자의 선생들, 그들이 읽고 권하던 책들을 혼자 검색하며 계몽된 인간 중 하나인데. 활활발발엔 그 시절의 묘한 반가움이 있다. 한번 더 읽고 다솜이 빌려줘야지.


오, 다솜이로 시작해서 다솜이로 끝나는 일기였다.

밖에서 개구리가 '나기-나기-나기-나기'하고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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