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고 이상한_7월 17,18일

by 소산공원


아침에 약속이 있었데도 오전에 출근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하고 상쾌하거나 심지어 성욕까지 있다고하는데 나는 아침에 아무런 욕구가 들지 않는다. 몸을 일으키기고 정신을 차리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과나무에서 일을하게 된 건 정말 다행인 일이다. 그치만 약속을 어기다니 정말 바보같은 소산................


간만에 사과나무 청소. 쌓아뒀던 쓰레기들을 버리고 배치를 약간 바꾸고 구석구석 먼지를 닦았다. 깨진 화분을 옮겨 심고 화단 앞에 잡초를 정리했다. 자주자주 청소를 하면 좋으련만. 사과나무의 살림을 꾸리는 건 왜 이렇게 귀찮은 일인지 모르겠다. 남은 자리에 코워킹이라도 해봐야하나. 이사를 가야하나. 자주 환기를 시켜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서 어렵다.


어제는 조카들이랑 공주 계곡에 가서 물놀이를 했다. 조카를 보는 일은 아주 귀찮고 고되지만.. 너무너무 좋아하는 시간이다. 애기들이랑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환하고 따뜻해진다. 역시나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랑 대화하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은데, 당황하게 될 때가 많다. 자꾸 내가 좋은 대답을 할 수 있는 어른인지 확인하게 만든다. 어제는 무무가 '싱'에 나온 미나를 닮은 코끼리 인형을 가지고 있었다. 화장을 한 듯 눈꼬리가 약간 올라가있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코끼리였다.


"무무 이 코끼리는 여자야 남자야?" 물어보니 "당연히 여자지"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치마를 입었잖아. 치마를 입는 것은 다 여자야"라고 답한다.

"그럼 남자를 뭘 입어?"

"남자는 바지를 입지"

"그럼 이모도 바지를 입었는데 남자야?"

"(곰곰히 생각한다) 아니 여자들은 바지도 입고 치마도 입어. 그런데 남자들은 치마를 안 입어"

"(치마를 입은 남자 사진을 보여주며) 그럼 이 사람은 바지를 입었는데 이 사람은 남자가 아닐까?"

(잠깐 생각을 하며 딴 얘기를 시작한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들.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은 많은데, 내가 가진 말이 적거나 근거가 부족해서. 자꾸 의심하게 만들어서. 아이들은 날 배우게한다. 나는 힘있고 이상한 이모가 되고 싶다.



아이들 기운을 잔뜩 충전하고 집에와선 '십개월의 미래'를 보았다. 영화관에서 놓친 영화였는데 왓차에 있어 반가웠다. 영화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웅이랑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면서 보았다. 딱 한가지 비현실적인 것은 미래가 너무 할 말 다하는 당당한 캐릭터라는 것. 임신은 마치 부부와 가족이, 국가가 책임과 의무를 지는 일 같지만, 사실은 여성에게 압도적으로 많은 책임이 생기는 일이다. 어떠한 선택이든 그 흔적은 여성의 몸에 남는다. 도덕과 윤리, 죄책감, 법적인 책임 전부 여성이 덩그라니 껴안는다. 카오스, 그 혼돈을 받아들이는 일에 십개월은 너무 빠르고 짧은 일 같다. 임신과 출산, 낙태에 관해 할 수 있는 말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럼 조금 더 단단하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늘이 예뻤다. 죠스바같은 하늘. 보랏빛을 담은 회색에, 한 입 물면 삐져나오는 붉은 색이 얼룩한 하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름 골목 주렁주렁_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