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왔던 공간 짧게 말하기
서쪽에 왔다. 일터이기도 하고 곧 삶터가 될 곳이다.
서천은 다른 지역보다 꽤 기억이 잦게 머물던 곳이다. 20대 초반, 친구와 함께 했던 기차여행지이기도 했고, 혼자 했던 첫 자전거 여행의 종착점이자 포기 지점이기도 했다. 노을이 보고 싶을 때면 어쩐지 군산하구둑이 떠올랐고, 가을이면 갈대밭에 숨고싶기도 했다. 충남과 전북이 닿은 곳,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 서천은 그런 경계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언젠간 살아보고 싶다라는 후보 10번째 쯤에 서천이 있을 수도 있었고, 순위와 상관없이 나는 서천에 오게 되었다. 지금 머무는 곳은 한산소곡주 집이 두 집 걸러 하나 있는 한산면 지현리의 테마거리이다. 한 달 정도 후에는 오래 비워져있던 동자북 마을의 파란지붕 집으로 이사를 한다. 나의 두번째 시골집이다.
내가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보낸 곳은 상도동 산동네였다. 서울은 오래 된 도시라서 여러 사람들이 뭉치며 정신없게 정착하여 만든 산동네에 가난한 우리 가족이 살았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 나오는 문장처럼, 사람들이 힘차게 배를 부딪치며 스쳤던 골목이 그득한 곳이었다. 언덕과 골목에서 자란 정서 덕분인지 나는 아직도 넓고 높은 것, 세련되고 가지런한 것에 거부감이 든다. 푸세식 화장실이 싫어 멀리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던 살림살이였지만, 아직도 그 골목의 기억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좋아진다.
두번째로 산 곳은 천안에 이사 와 살게 된 좁은 아파트였는데, 지금도 그 집은 동생이 사용하고 있다. 초,중,고,대학을 그 아파트에서 나왔다. 천안에서 갓 개발이 시작된 동네였다. 논과 밭이 허물어지고 며칠 안돼 아파트가 들어서는 곳이었다. 처음 집과 동네에 익숙해지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지금은 이미 개발의 흔적이 사라진 오래된 동네가 되었고 천안엔 다른 세련된 아파트와 구역들이 여전히 생겨나고 있다. 당시엔 새 동네라 새 나무들이 많았다. 어느 지역에 갔다가 큰 가로수길을 보며 '아 동네는 나무만큼 자라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돌이켜보면 매일 같이 걸었던 길에 심긴 목련, 산수유, 자귀나무를 보며 계절을 보냈다. 마치 나와 함께 자란 듯 애틋하다.
그리고 머문 곳. 서울에 옥탑방에 잠시, 쌍용동 아파트 잠시, 봉명동 원룸에 잠시 지냈다. 살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가게도, 슈퍼도, 식당도 단골로 남은 곳이 없다. 좋아했던 공원이나, 산책로, 기억나는 나무들이 없다. 내 삶에 중요한 시간들을 거쳐왔던 동네이지만 그리운 것이 없다. 나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
세번째로 산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지금 (걸쳐) 살고 있는 북면이다. 좋은 기회로 시골에 살게 되었고, 무턱대고 3년 째 살고 있다. 시골에서 잘 살 자신은 없지만 행복하게는 살 수 있는 사람인 걸 알았다.( 시골에서 '잘'살려면 온갖 기술과 부지런함이 필요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다만 익숙치 않았지만 두렵지 않았고 내 삶에 행복을 주는 조건들을 살며 배웠다. 계절의 변화, 매번 바뀌는 나무들, 고양이가 살기 넉넉한 동네, 하늘이 가득한 대문, 출근길의 노을은 내가 어떻게 살아도 괜찮은 위로를 주었다. 친구들을 편하게 초대하여 큰 솥에 요리를 하는 것, 그들에게도 그리운 장소와 위로의 공간이 되어주는 것이 좋았다. 내가 마치 그 집인냥,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서천으로 이주를 결심한 것은 시골에서 일을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사실은 그동안 시골에 살았지만 삶의 모양은 도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시에서 술먹고 대리비로 25,000원을 지출하는 일은 불편한 일이었다. (딱 두번 해봤다) 기왕이면 일과 삶이 닿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마침 일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였고, 마침 시골에서의 익숙한 일을 제안 받았고, 마침 서천에 오게 되었다.
이 곳의 시간을 말하려면 나는 내 삶터에서 배운 것, 일터에서 배운 것, 읽었던 책들, 일하며 겪었던 이력들을 온통 끄집어야한다. 그리고 마주하는 사람들이 배웠던 시간들을 동시에 읽고 들어야한다. 그만큼 경계를 건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들, 삶의 공간들이 힘들게 할 테지만 무언가 찾아지겠지. 아니면 말고.
오늘도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저녁엔 20분 운전을 해서 바다에 갔다. 해질녘을 놓쳐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자비로운 서해안의 노을에서 잠시 요가를 배웠다. 바다 노을에서 요가라니. 사치스러운 풍경이 가까운 곳이다. 그 것만으로는 살 수 없겠지만, 그것을 위해 조금 애쓰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