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시작이 기억나지 않는다.
늘 그렇듯 호두친구들과 만나 요새 서울에서 유행하는 알맹상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기도하고, 때마침 가혜를 도와 지구친구들이란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하고, 상점이란 이름이 호두와 무지 잘 어울렸던 것 같기도 하고, 생활실험이라는 찰떡같은 공모를 발견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맥락없이 카톡방에 저런 파일을 던지며 호두상점이라고 넌지시 물은 것을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시작이 기억나진 않지만 2020년 12월 19일 1차 회의 자료가 남아있으니 그 때 시작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왜인지 모르게 첫 시작을 공모했던 멤버와는 다른 구성으로(?) 호두구판장 준비를 시작했다. 결정과 판단을 미루고 가능한한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회의를 위한 회의, 준비를 위한 준비를 하면서 겨울을 보냈다. 5월 1일이라는 느긋한 목표를 세워두고도 게으름 피우다 미뤄지고, 의미부여할 적절한 날짜를 찾다가 결국 1호의 타이틀을 내어주어야했다. 그때 모든 의지가 사라져버려 '1호가 아닌데 하지말까' 라며 진지하게 의논했던. 어쨌든 호두구판장의 문을 열었다.
어찌되었든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 건실하게(?)일하던 청년들이 1~2주에 한번씩은 만나서 의논하고 돈도 모으고 이리저리 조사하고 품을 팔아서 사과나무 한 켠에 가게를 열었는데, 차림새가 그럴듯하지 않았서 꽤나 당황했다. 그래서 나름 배치를 이리저리 바꿔보고, 가격표도 바꾸어보기도 했는데 여하튼 호두구판장 시작하곤 이상하게 무척 재미가 없었다. 10월쯤 되서 워크숍을 하면서 내 나름의 이유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건 당번을 '혼자'해서 였다. 호두멤버들과는 만나서 회의하는게 가장 재밌는데, 그 재밌는걸 못하고 혼자 주말에 가게를 지키는 일은 퍽 곤욕스러웠다.(그것도 매일가는 사무실에서)
아무튼 우리의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애정은 짜게 식어갔다. 적어도 회의 때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로 했던 다짐은 나중갈수록 족쇄가 되었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몰래 그린워싱을 하면서 괴로워했다. 그러다가 우리에게 철학이 없어서 그런건 아닐까라며 책모임을 하기도 하며, 올 해(2021년)를 버티기로 한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채 겨울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겨울방학이 어찌나 반갑덥지..... 그 사이 아차하다가 협동조합까지 만들뻔도 했는데 아무튼 다행히 정신을 차리게 되면서 호두구판장의 시즌1(?)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아무튼 한 해동안 각자의 삶에서 제로웨이스트가 스며든 것과 우리같은 사람도 했으니 너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여전히 좋은 것은, 가게를 그렇게 말아먹어놓고도 또 다시 뭔가를 해보기로 공모한다는 거다. 얼마 전 워크숍에서 혜빈이가 '여기서 연습하고 망치고, 세상에 나가서 잘할래' 라는 말을 했는데 그거보다 우리를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30대가 할 수 있는 적절한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망칠 수도 있는 세상이 존재한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가능한 미루면서, 망치면서. 다만 서로를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세상에 별로 해가 되지 않을 일을 올해도 할 예정.
글을 쓰기 어려울 때는 이렇게 해보도록 하자.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집을 하나 꺼내고 아무 편이나 골라서 따라 쓰는 거다. 제목을 똑같이 따라 쓴 다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늘어놔도 좋고, 작가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를 내 이야기로 옮겨와서 쓰는 거다. 오늘은 긴 생각을 하기가 귀찮으니까 그렇게 해보도록 하자.
엽집이 선물해준 박연준의 「쓰는 기분」은, 천천히 읽고 싶어서 책상에 올려두고는 하루에 한두 편 정도 챙겨본다. '목록이라는 길목'을 펼쳤는데 이런 질문이 있다.
"당신의 책상엔 무엇이 놓여있나요?"
집을 여러 번 옮겨도 우리 집 거실엔 큰 책상이 따라다닌다. 허송세월 할 때 산 싸고 큰 원목 책상인데 촌스러운 오일스테인을 바르고 바니쉬도 제대로 칠하지 않아서 지금 완전 상처 투성 이인채로 7년을 살고 있다. 새 책상을 들이고 싶다만, 기능을 하는 물건이 있으면 아무래도 새 물건을 사게 되진 않는다. 남들은 비싼 거 사서 오래 쓴다는데 그냥 싼 거를 사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쓰는 편인 것 같다.
노트북을 기준으로 책상의 오른편에는 박연준의 「쓰는 기분」 김예림의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메리 올리버의 「휘파람 부는 사람」이 포개져있다. 한 책을 끝내는 것보다 조금씩 여러권을 읽는 것이 많이 읽는 것이 좋다. 왼쪽엔 아이패드와 닌텐도, 아이폰 11이 있다. 어쩌다 이렇게 전자기기를 많이 갖게 되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거실 테이블에서 밥을 먹거나 쉴 때 아이패드로 영상을 틀어놓고, 인스타를 훑으며 동숲을 하는 정신없는 꼴이 되어버린다.
잡동사니를 모아두는 박스에는 연필 세 자루, 포스트잇 플래그, 고양이 빗, 시계 두 개, 지우개, 맥주잔 모양의 맥주병따개, 줄자, 메모지로 쓰는 작년 일력 여러 장, 스마일 스티커가 있다.
잡동사니를 모아두는 박스 안에는 더 작은 잡동사니를 모아두는 틴케이스가 있는데 거기엔 더 작은 이케아 연필, 오백 원, 레이저, 마스킹 테이프, 라이터, 귀파개가 있다. 나는 귀파개와 눈이 마주치면 꼭 귀를 판다. 여행 갈 때, 운전할 때, 일할 때 귀파개가 없으면 불안해지는데 지금도 또 귀를 파고 있다.
잡동사니를 모아두는 박스 옆에는 2월의 다이어리, 글을 모아두는 메모장, 주간으로 된 메모지가 있다. 다이어리는 매일 들고 다니면서 일정을 적거나 메모를 하거나 바깥에서 읽은 책을 정리하는 편이고, 글을 모아두는 메모장은 책상 위에 올려두고 좋은 문구를 볼 때 쓰고, 주간으로 된 메모지는 냉장고에 붙여놓을 때 쓰게 된다. 메모지와 닌텐도 사이에는 차를 담은 유리 주전자와 차를 마시는 초록색 컵, 물을 담은 회색 컵이 하나씩 있다.
이 많은 물건들은 자주 책장 사이로, 서랍 위로 잠시 옮겨갔다가도 금방 책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니까 내가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 반드시 필요한 만큼의 살림인 거다.
작가는 '당신의 책상엔 무엇이 놓여있나요?'라고 묻고는 이렇게 말한다.
p.89
무엇이든 좋으니 작성해보세요. 목록을 들여다보세요. 계속, 들여다보세요. 뭐가 보이나요? 그 길목에 머무르세요. 한사코.
두 달 전엔 수첩에 이런 문장을 적어놓았네요.
"삶에 들어있는 것? 잼, 블루베리, 눈물, 똥, 먼지, 비겁, 구름, 절벽, 상처, 질병, 환희, 사랑, 책, 오답, 귀뚜라미, 피, 오줌, 새벽 2시, 목발, 절규, 욕망, 합치, 실패, 칼, 죽음, 깃털, 강아지, 지네, 책상, 무릎(…) 나는 삼일 밤을 샐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길목에 머무르세요. 한사코.
오늘 밤에, 요만한 책상에도 이렇게 머무를만한 길목이 많은데.
"삶에 들어 있는 것? 내일 보낼 견적서, 내일 납품할 리플릿, 내일 보낼 서류, 내일 전할 메일, 내일 반영할 수정(…) 나는 삼일 밤을 새도 모자란데 2월에 쉬긴 개뿔."
갑자기 그녀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어. 내가 갑자기라고 말하는 건 그녀가 30년 넘게 휘파람을 불지 않았기 때문이지. 짜릿한 일이었어. 난 처음엔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나 했어. (....)
이윽고 내가 말했어. 당신이야? 당신이 휘파람 부는 거야? 응, 그녀가 대답했어. 나 아주 옛날에는 휘파람을 불었지. 지금 보니 아직 불 수 있었어. 그녀는 휘파람의 리듬에 맞추어 집 안을 돌아다녔어.
나는 그녀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했어. 팔꿈치며 발목이며. 기분이며 욕망이며. 고통이며 장난기며. 분노까지도. 헌신까지도.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기 시작하긴 한 걸까? 내가 30년간 함께 살아온 이 사람은 누굴까?
이 맑고 알 수 없고 사랑스러운, 휘파람 부는 사람은?
책상 위는 역시나 지난주와 별반 다르지 않다. 노트북을 기준으로 책상의 오른편엔 여전히 몇 권의 책이 쌓여있다. 메리 올리버의 「휘파람 부는 사람」을 읽다가 가슴이 쿵쿵 울려서 몇 번이고 엽서에, 노트에, 일기장에 옮긴다. 박연준의 말처럼 “시는 언제나 소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장르”라서 조용히 입으로 뱉으면서 옮겨 적는다. 마음에 휘파람이 돌아다니는 기분이다.
언제든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30년 만에 휘파람을 찾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다. 갑자기 입으로 휘파람을 부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임을 감각할 수 있게 하다니. 그런데 갑자기 조금 부러워진다. 즐거운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조금은 쉬운 일이 아닐까? 늘 휘파람 불던 사람이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고 해서 변화를 알아채진 않을 테니까. 그럼 휘파람 부는 사람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신중하고 차분하고 사람일까? 누군가 나를 보며 "휘파람 부는 사람"을 쓰게 된다면 어떤 장면에서 시작하게 될까? 낯선 나는 어디에서 출발할까? 아마 그 반대쪽 일 것만 같다.
'휘파람'이라는 멋진 비유를 찾긴 어렵지만 아무튼 내가 오랫동안 갈망해온 가장 낯선 내 모습은 '성실'이었다. 태생적으로도 약간 변덕이 잦았고, 제대로 배워오지 않았고, 학창 시절에도 별로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없어서 내 몫이 아닌 재능으로 치부했었다. 그러다 일의 세계를 만나 '성실'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에 필요한 성실을 배우고 나름의 애를 쓰고 지내고 있다. 하지만 휘파람을 불지 않는 것으로 변화를 알아채긴 어려운 거니 여하튼 약간의 어긋난 일에도 돌아오는 평가와 격려들이 하찮을 때 쉽게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중 작년에 본 사주(feat. 연꽃)에서 내가 어떤 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습관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성실'자체가 아니라 성실함에 가까워지는 습관을 가지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내년(올해)에는 대운이 달라지는 해라 아마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길 수도 있는데 그에 맞는 몇 가지 좋은 습관들을 추천해주셨다.
그중 한 가지는 일기 쓰기였는데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로는 꽤나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다. 요새는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은 날은 책상에 앉아 몇 시간이고 일기를 쓴다. 초등학교 때도 제대로 일기를 써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뭔가 어색했다. "오늘은 뭘 했고 뭘 먹었다. 어디를 걸었다" 대충 이렇게 쓰다가, 요즘은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로 시작해서 하루에 일어났던 일을 모조리 뚱땅뚱땅 쓴다. 그러다 보면 "있잖아 있잖아", "참 그리고", "참참참" 이러면서 일기장에 수도 없이 말을 건다. 혼자서 주거니 받거니 한다. 그러다 보면 떠들고 싶었던 말들이 술술 풀려나간다.
이렇게 일기를 쓰다 보면 마음의 균형감이 생긴다. 낮에 일을 하며 생겼던 미운 마음. 낯선 마음. 애쓰고 무리했던 마음들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안심이 될 만한 시간들을 쌓는다. 혹여나 격려와 평가들이 하찮아도 쌓인 일기를 돌아본다. 내 하루는 성실히 쌓여가고 있어 차곡차곡.
그래서 일기 쓰는 나를 보면 누군가가 이런 시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누구지? 이 알 수 없고 차분하고 성실한, 일기 쓰는 사람은?
라떼를 마시기 시작했다.
카페에 다닌 이후로 적어도 10년 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최근 맛있는 라떼를 한 번 먹은 이후론 계속 생각이 났다. 오늘도 카페에서 고민을 하다가 오래 있을 참으로 라떼와 아메리카노를 둘 다 시키고 말았다.
나는 의외로(?)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한 번 좋아하게 되면 좋음을 느꼈던 순간을 반복하고 싶다. 새로운 좋음을 발견하는 설레임도 못지않게 못지만, 좋아지기까지의 숙고를 귀찮아한다. 엊그제는 진안으로 워크숍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하루 더 여행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익숙한 지명이 나올 때마다 차를 세워 그 근처에 숙소를 검색했다. 완주를 지나올 땐 '완주 숙소', 부여를 지날 땐 '부여 숙소', 등등 온갖 여행 어플을 검색하다... 결국 그냥 집에 오게 되었다. 시도를 해서 실패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혼자 여행을 하게 될 때는 익숙한 것을 선택하고 싶어 진달까. 시도와 실패는 혼자 겪기엔 가혹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혼자 있을 때는 가급적 익숙한 여행지, 익숙한 숙소, 익숙한 카페에 간다. 익숙한 메뉴를 고르고, 익숙한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간 곳에 또 가고, 본 것을 또 본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지루하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선택지가 좁으면 살기 편하다. 하지만 남들과 있을 때는 남들이 좋아하는 것, 남들이 추천한 것, 남들과 시도하는 일을 좋아한다. 거기에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때문에 나에게 유리하기 위해 함께 있을 때 좀 더 넓은 태도를 갖게 된다. 실패를 나누며 선택지를 늘릴 수가 있으니까. 그중에 내가 무엇을 결정할지는 혼자 하게 되는 거니까. 그건 나만의 일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오래 생각하게 되는 건 결국 '남'이다. '나'의 결정을 좌우하는 '남'은 누구일까.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와 함께 실패를 겪을까. 나는 '남'들과 어떻게, 어디에서 만나게 될까. 내가 어쩌면 좁은 지역에서 작은 활동들을 계속해나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나와 닮은 남, 내가 닮을 남을 찾기 위해서. 점점 더 편협한 세계를 넓히기 위해서다.
결국은 어제의 새로운 여행은 실패하고 오늘 또 익숙한 카페에 갔다. 내가 요새 작업실처럼 쓰는 동네 카페다. 익숙하게 앉는 자리, 익숙한 풍경과 소품들. 어렵사리 넓어진 메뉴인 라떼가 역시나 맛있다. 익숙한 이슬아의 책을 발견해 읽으니 이런 문장이 있다.
이: 그런데 선택지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느끼며, 저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김: 네, 저도요.
이: 왜냐하면 모든 게 너무 과잉 되어 있으니까요.
김: 이 시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데, 무엇을 안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너무나 많은 가능성들이 있으니까요.
<깨끗한 존경, 김한민과의 인터뷰/이슬아/헤엄출판사>
2022년에는 나는 무엇을 안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안하는 남들을 만나게 될까.
조금 더 선택지가 좁은 사람이고 싶다.
친구들과 찌찌언즈라는 모임을 한 적이 있다. 책과 영화를 보며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모임이었는데, 내가 했던 그 어떤 모임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한 모임이다. 늘 해야할 이야기들이 넘쳐나 술도 마시지 않고 도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활기차고 기분 좋은 해방의 시간들이었다. 그때 함께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웅장해진다.
찌찌언즈가 그리워지는 시기에, 좋은 책을 하나 만났다.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책을 읽으며 자꾸 지난 나의 고민들이 소환됐다. 현모양처를 꿈꿨던 나, 다정 앞에 오래 고민하던 나, 연애를 좋아하는 나, 남자들 주고 남은 찬밥을 먹었던 나, 그을린 얼굴의 나. 그리고 페미니즘을 만나고 씩씩해진 나. 예림샘이 책으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예림샘의 책이 다시 나를 지키는 느낌이었다.
때마침 크리스마스보다 좋은 여성의 날이고, 좋은 책을 읽은 김에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다. 사심을 가득담아 여성의날충남기획단에 후다닥 참여하고 행사를 준비했다. 포스터를 만들며 '우리의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꺼야' 라는. 나에겐 꽤나 어울리지 않는 확고한 선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예림샘의 책 덕분이었다. 책에서 만난 오래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 덕분에 얼마나 세상이 나아졌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페미니스트인 나의 이야기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세상까진 잘 모르겠고 적어도 내가 사는 작은 동네에서는 이야기들을 자꾸 모아내고 싶었다. 옹기종기 도란도란한 작은 자리를 만들고 싶었는데, 딱 기대한 만큼 옹기종기들이 모였다. 예림샘이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지역에서 일하는 이야기들, 공부한 책과 새롭게 시작한 일들을 전해들었는데 내가 겪은 일상들과 너무 닮아있어서 깜짝 놀란 순간들이 많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이 책들을 전부 읽지 않았다는 고백을 들은거였다. 내적친밀감은 더욱 깊어지고......
후반부엔 짧게 글을 쓰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참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시절에는 같은 이야기들이 계속 반복되어서 약간 지루하고 지겹다고 느끼기도 했는데, 코로나 이후로 이런 자리는 오랜만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하는 모든 말들이 소중했다. 얼마나 말 하고 싶었을까. 오래오래 대화하고 싶었지만 공간이 생각만큼 아늑하진 않아서 충분하지 못한 채 마무리를 했다. 아쉬움이 남는다.
기회가 된다면 『그을린…』 책에 나온 책들을 정돈해서 하반기에는 꼭 찌찌언즈 리턴즈를 해봐야겠다. 다 읽지 않아도 이렇게 훌륭한 글을 써냈으니, 우리도 다 읽지 않고도 떠들어볼 수는 있겠지?
1.
지난 주에는 익숙함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글을 썼는데, 어제는 일요일의 지루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점심에 김치볶음밥을 대충 해먹고 맥주를 한 캔 마셨다. 오랜만에 밭일을 했더니 허벅지 안쪽과 어깨가 쪼개지는 듯 했다. 더 누워있을까, 일어날까. 이대로 있으면 주말을 망치는 것만 같아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동네 카페에 갔다. 비가 와서 라떼를 시켰다. 지루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2.
사실 지난 주는 지루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한 주였다. 이 새로운 세상을 어찌 받아들여야할까. 애써 관심없는 척 해놓고 제대로 잠 들지 못했었다. 새벽녘 어렴풋이 본 결과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또르르르 나왔다. 진짜로 세상이 달라지려나? 다음 날 출근해 한창 우울해있자, 시내가 화단에 난 수선화 싹을 가르키면서 "얘네를 봐바, 겨울을 뚫고 나왔잖아!! 나 여기 살아있다고 강력히 말해야지!!" 라고 명랑만화 주인공 같은 말을 했다. (실제로는 이것보다 더 전위적인 말과 억양이었다) 여튼 이런 대사를 직접 들으니 다소 쑥쓰럽기도 했지만, 당장 믿을 거라곤 그 말밖에 없어서 조금은 마음이 나아졌다. 감자를 심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3.
마감을 나누고 미루며 공룡으로 감자를 심으러 갔다. 반가운 호철을 만났는데, 호철 역시나 대선 결과를 본 이후에 '감자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감자심기밖에 없는 것 같은 사람들처럼 열심히 감자를 심었다. 감자밭을 오바로크 치는 와중에 머리 위로는 계속 전투기가 날아다녔다. 하늘에선 늘 전쟁 연습을 하고 있는데, 땅에는 씨감자를 심어낸다. 특별한 일(..을 듣긴했지만)이 없다면 반드시 싹을 틔워낼거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건 오직 감자뿐인건가. 심고나니 꽤 후련해졌다.
4.
다음 날은 쇼핑을 하러 갔다. 건물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낯선 경보음이 울렸다. 사람들이 영화처럼 멈춰서서 출입문과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출입구가 가까워 밖으로 나갔는데 한동안 경보가 계속 되었다. 약간의 의심과 공포감이 '전쟁이 일어난거면 어떻게하지?'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우리가 휴전 중인 것, 전쟁과 가까이 살고 있다는 것은 가끔보다 더 자주 실감할 수 있다.
5.
폭력은 일상을 뚫고 온다. 오작동 된 경보기, 시골 동네 위로 수시로 날아드는 전투기, 새벽녘 윤석열처럼. 이준석의 페이스북처럼.
6.
일요일이 지루하다니 얼마나 다행이었나. 지루할 틈이 없는게 전쟁이 아닌가. 우크라니아에서 희생된 민간인의 사체를 구덩이에 묻는 영상을 보았다.
7.
'여기, 금이 간 보도블록 사이로 만족감에 푹 빠진 채 피어 있는 케이프타운개쑥갓이 있네.' '저기, 도시를 정복하기에 앞서 세 개의 잎을 낸 어린 오동나무가 있네.' 이들은 자기에게 기꺼이 제공되지 않은 공간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오래전부터 나를 매료시킨 거대한 식물세계 속의 왕이나 군주들처럼 행복해하고 있다.
『보따니스트, 모험하는 식물학자들』 / 마를 장송 / 도서출판 가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화단에 난 수선화를 기다리는 일, 땅 속에 감자를 묻는 일, 기도하는 일 뿐이다. 오래 미워했던 사람들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균열을 내는 일. 자리 없는 사람들과 씨앗 하나 심는 일.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지루할 틈이 없는 봄이 시작되었다.
다민이가 코로나에 걸렸다. 동생과 나는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살갑지는 않은, 평범보다 조금은 더 무관심한 관계다. 한 달에 한 번 연락을 할까 말까하는데 오랜만의 소식이 코로나라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걸 역시나 증명해왔다. 그래도 누나도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격리에 필요한 이런저런 생필품들을 챙겨 갖다 주기로 했다.
동생은 대학을 가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아버지는 대학에 부정적이었다.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면 어중떠중한 대학에 가느니 차라리 안 가는 것이 낫다' 가 우리집의 지론이었다. 그 어중떠중한 대학의 기준은 숭실대였는데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숭실대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당시에 (대학을 못 간)아버지는 항상 숭실대생들을 먹꼬대학생이라면서 조롱했다. 그런 조롱과 멸시의 태도는 아버지 일생 전체에서 요상하게 망가진 채로 드러났다. 아무튼 지방 고등학생으로선 숭실대도 감지덕지인 참인데도, 하여간 동생은 그런 연유로 대학에 가지 않았다. 딱 어중떠중한 성적에다가 딱히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군대에 갔다. 전역한 이후로 이런저런 알바를 전전하다 나의 건너건너 지인을 통해 배관설비 일을 배웠다. 숭실대학생은 먹꼬대학생이지만 노가다를 하는 사람은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는 중요한 노동인력이라고 가르치는 아부지의 입김이 또 은근하게 작용했다. 이 후로 배관설비 노동자로 7년을 살았다. 그쯤부터는 나도 어려운 20대를 통과하느라 성인이 되어버린 동생의 삶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았다.
동생과 연락을 할 때는 가끔 급하게 돈이 필요하거나, 물건을 빌리거나 하는 실용적인 이유였다. 아주 가끔 여자 친구와 헤어지거나,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든 날 연락을 해왔는데 그럴 땐 항상 사는 게 너무 재미없다고 했다. 어느 날은 여자친구와 싸운 얘기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술을 마시고 양치를 하다 치약을 집어던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 세상에 내 동생도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너 이 새끼 그러면 절대 안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응응 다신 안 그래 누나”를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동생은 작년에 그 일을 그만뒀다. 일이 너무 힘들기도 하고, 사람을 무시한다는 이유였다. 대충 들어보니, 어떻게 그 재미없고 괴로운 7년을 버텨왔을까 싶었다. 캠핑도 가고 매일 같이 술을 먹으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이었는데 결국엔 퇴직금조차 받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나만 분노에 찬 나머지 신고를 해야지 가만히 있냐며 노발대발했지만, 그 사람들은 ‘다’그렇다고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중에 또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며. 이리도 멍청한 게 내 동생인 것이 한탄스럽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리고 동생은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했다. 공부가 너무 쉽다며, 체질인 것 같다고 말하던 동생은 몇 개월 공부를 하고 자격증에 합격했다. 동생의 인생을 잘 모르지만, 아마 몇 안 되는 성취 중에 하나일 것이다. 자격증을 합격하고 얼마 후에 돈을 잠깐 모아야 한다면서 일용직 공사현장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배관일을 했을 때보다 훨씬 쉽고 인정을 받는다고 했다. 동생은 몇 개월동안 그 곳에서 일하고 있다.
출근 전에 간단히 장을 보고 동생이 찍어준 주소를 찾아갔다. 아산에 살고 있는줄 알고 있었는데... 평택에 살고 있었다. 네비를 찍고 낯선 길을 가고 있는데 크레인 수십 개가 하늘을 가득 메운 풍경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가끔 그 주변을 지날 때마다 무섭고 징그럽다고 생각한 곳이었다. 동생의 집이 가까워질수록 주변은 더 낯설어졌다. 길가에는 천막으로 된 함바집이 이어졌다. 스쿨버스 크기 정도의 노란색, 하늘색 버스들에 ‘oo한정식’, ‘oo식당’이라고 써져있었다. 근처 노동자들을 한 번에 태워서 식당으로 이동하는 차량인 듯했다. 길에 있는 모두가 안전모와 형광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승용차보다 공사차량이 훨씬 많았고. 가까운 출퇴근을 위한 자전거, 오토바이, 전동킥보드들의 주차장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살면서.... 그런 풍경들을 처음 보았다.
동생의 집은 그 현장에서 조금 벗어난, 딱 자전거로 이동하기 좋은 거리정도에 있었다. 신도시에 어디에나 있는 상가-원룸 건물이 줄지어 들어있는 동네였다. 삼성이 들어온 이후에 더 많이 들어올 노동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이에 맞춰서 술집과 싸구려 프렌차이즈 밥집들이 골목마다 가득 차 있었다. 약을 사려고 잠깐 약국에 들렀는데 진열된 것은 온통 파스와 간장약이었다. 그 흔한 비타민도 밖에 나와 있지 않았다. 약국에서 나와 동생네 집으로 향하는 길에 가장 많이 본 것은 부동산이었다. 이 도시의 필수품은 정말.. 건물밖에 없다는 듯이. 코너 마다 하나씩 부동산이 있었다.
동생은 공인중개사가 노동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유일한 세계라고.. 아마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을 뽑았다고 했는데, 이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아마도 내가 믿는 세계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다민의 세계는, 자신의 모든 식사가 삼성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본소득이니, 노동권리니 하는 것들은... 부동산을 지켜주지 않을 테니까. 다른 종교로 가득 찬 세상에 도착해버린 것 같았다.
동생과 내가 달라진 순간은 어디였을까.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이 둥둥 뜬 허공 같았다.
몇 년 전부터 미리 봄을 찾으러 남도에 간다. 여행 계획과 맞물려 평화바람의 '봄바람 순례단'의 일정이 겹쳐있어 겸사겸사 진도-목포-하동에 가는 일정에 함께했다. 세월호 참사 8주년이 되기도 했고 여태껏 팽목항을 못 가본 것이 민망하기도 하여. 가는 길은 고 이한빛 피디의 어머니, 혜영 님과 함께했다. 워낙에 이른 아침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터라 무거운 걸음으로 조용조용 진도를 향해갔다. 혜영 님은 팽목항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편하게 가게 되어 고맙다는 말을 계속하시며 휴게소 간판이 보일 때마다 자기가 꼭 따뜻한 밥을 살 테니 휴게소에 들르자고 하셨다.
4시간 넘게 걸려 진도에 도착했다. 시간이 부족해 김밥을 몇 줄 사서 먹고 팽목항으로 갔다. 도착한 순간 그 허전함에 할 말을 잃었다. 304명이 죽어나간 참사의 현장은 방치되어있었다. 세월호기억관이라는 옹색한 간판이 달린 컨테이너 박스가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의 전부였다. 활동가나 가족들이 곳곳에 채운 전시물들이 있었지만 기억관의 구색을 갖추기엔 너무나도 초라했다. 몇몇 조형물들과 등대로 가는 길의 타일들, 낡아가는 노란 리본들이 전국에서 보내온 현수막들이 그나마 이곳이 한 때 슬픔과 추모로 가득 찬 현장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팽목항을 낀 언덕 위에 커다란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국민해양안전관'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것이었다. 2019년 착공 계획이었는데 완성되지 않았다. 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관'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았을까? 세월호가 해양안전만의 문제였나? 왜 이렇게 참사의 현장을 감추고 이름을 지우고 싶어 할까? 진도를 떠나오는 길에 혜영 님이 분통을 터뜨리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지우고 감추면서 얻어지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고, 그래도 세월호 참사가 아니면 이렇게 후미진 곳에 멀리 찾아와서 김밥이나 한 줄 사 먹었겠냐고.
팽목항을 떠나 목포 신항으로 갔다. 안전문제인지 관리의 문제인지 평소에는 세월호를 가까이에서 볼 수 없다고 했다. 목포의 활동가들이 주말마다 돌아가면서 안내소를 지킨다. 공무원은 주말에 쉬어야 하기 때문에. 304명의 얼굴이 담긴 현수막은 자꾸만 훼손되어서 안 쪽으로 옮겼다고 했다. 도대체 이들의 잘못은 무엇일까. 이곳에도 역시나 곳곳에 컨테이너 박스들이 있었다. 항구니까 물류를 보관했겠니 생각했는데 '유류품 보관함'이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있다. 너덜너덜한 차양막과 함께. 거대한 세월호의 주변엔 건져 올려진 잔해들이 널려있었다. 세월호를 건져 올리면서 뻘에서 실종자의 유해를 발견해서 뻘을 모아두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얼마나 방치되어있었을까.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현장들을 보면서 유가족들은 대체 어떻게 버티며 살아갈 수 있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사 이후 지금까지 팽목항에 살고 계신 고영환 님은 언제든 진도에 방문해달라고, 여행하다도 잠시 들러주시면 자기가 좋은 밥집과 숙소를 안내해주시겠다고 하셨다. 늦게 왔다고 미안해하지 말라며. 괜찮다며.
팽목항으로 오기 며칠 전 본 정혜윤 PD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에서 본 9.11 메모리얼 파크에 관련된 글이 자꾸 생각났다. 쌍둥이 빌딩에서 깨지지 않은 유리창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희망력과 회복을 상징한다는 글.
깨지지 않은 유리창이 있는 이곳은 처음 도착한 구조대와 시민들이 타인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곳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희생자는 훨씬 많았을 거예요. 저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그런 것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을 할 것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아요. (...) 9.11은 대단히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가 서로에게 연민을 보여준 방식. 생판 모르는 타인을 위해 자기 삶을 던졌던 것. 같이 격려하면서 한 발이라도 내디딘 것. 뭐라도 좋으니 도움이 되려고 했던 것. 함께 슬퍼했던 것의 의미는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퇘색하지 않을 거예요. 이 추모관은 자기희생의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에요.
<슬픈 세상의 기쁜 말/정혜윤/위고>
이 참사에서 현장에서 남아야 하는 건, 배워야 하는 건, 기억해야 하는 건 대체 무엇일까? 아니 지금의 꼴로 기억이나 할 수 있는 걸까?
돌아오는 길에 혜영 님은 한빛을 기억하며 썼던 책이 하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종종 그 책으로 이야기를 할 자리를 갖게 되는데 앞 뒤로 일주일은 아프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말하다 보니 조금씩 나아진다고 하신다. 이들은 아들의 목숨 값으로 '한빛노동인권센터'를 만드셨다. 두 분 다 평범한 교사였는데, 시민단체의 일을 하려니 어렵다 하시며 그래도 오늘은 팽목항으로, 내일은 스텔라 데이지호로 연대하러 길을 나서신다.
우는 사람들은 자기도 울고 있으면서, 자꾸만 우는 자들의 곳으로 간다. '봄바람순례단'은 낡은 승합차로 슬퍼하는 이들의 자리를 40일간 찾아다닌다
그러나 위기의 시대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틔우며 다른 세상을 향해 값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위기가 불평등하게 도래할 때 그 불평등을 깨트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만이 미래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삼고자 하지 않습니다. 위기를 직면하고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다른 세상을, 그리고 먼저 온 미래를, 지금 여기서 살며 투쟁하는 사람들 속에서 찾고자 합니다.
<봄바람순례단 출발 선언문 중>
안타깝게도 우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거기서 함께 우는 사람들이 미래를 연다. 또 다른 세상은 그곳에서만 가능하다.
이상하다. 좋아하는 봄이 왔는데. 마음이 폴짝폴짝 뛰지 않는다. 그냥 봄도 아니고, 4월이다. 어둡고 휑한 긴 겨울을 견딘 나무가 연둣빛의 새순을 올릴 때, 찬바람인 것 같기도 하고 더운 바람인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바람이 불 때. 조금만 볕 바깥에 있어도 금세 쌀쌀해질 때. 그러니까 이제야 정말 봄인데, 이 계절이 왜 설레지 않을까. 어제는 문득 '아 이제 또 긴 여름의 시작이네'라는 생각을 해버렸다.
조르바가 사라진 지 84일이 되었다. 매일 조르바를 생각하지만 매일 조르바 때문에 슬픈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매일 숫자를 세진 않는다. 84일도 방금 네이버에서 디데이 계산기를 켜고야 알게 되었다. 어디선가 고양이의 49제를 지내준 것을 보고 나도 그랬어야 했나 생각하다가, 조르바는 이 생애에서 잘못한 게 없으니까 의미가 없겠구나 생각하고 맘을 접으며. 봄이 왔으니 조르바 나무를 얼른 심어줘야지 생각하면서도, 선뜻 나무를 고르지 못하면서. 84일이 되었다. 되게 오래된 것도 같으면서, 애개 겨우가 동시에 나오는 시간이다.
책장 한 칸에 조르바의 사진과 유골함을 두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우연히 쳐다보면 '나쁜 년...'이라고 혼자 말한다. 조르바는 진짜 나쁜 년이다. 가끔, 아니 매일 생각한다. "이상하다 조르바가 왜 없지?" 왜 조르바가 없을까. 왜 조르바가 없지?
지난주 금요일 오랜만에 해가 떠있을 때 퇴근을 했다. 노을이 질락 말락 한 시간의 하늘이 너무 예쁘고, 벚꽃이 조금씩 피어나는 길이 너무 좋아서 크게 음악을 들으며 돌아왔는데 집 근처 골목에 다 와서는, 아 집에 조르바만 있으면 딱 좋겠네라고 나도 모르게 말하곤 엉엉 눈물이 나왔다. 이 봄에 조르바만 있으면 딱 좋을 텐데. 너랑 나랑 같이, 이 구린 집 시멘트 옥상 위에서도 폴짝폴짝거리면서 함께 봄을 맞을 텐데.
조르바는 84일 동안 단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진짜 나쁜 년. 조르바의 동영상은 왜 인지 못 보겠고, 대신 조르바 목소리를 듣는다. 자다가 문득 '조르바 목소리르 잊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 조르바 목소리가 녹음된 어플을 켠다. "같이 쉬어요", "안녕!", "느긋이 있을래요.", "내 사랑, 내 목소리가 들리세요?", "우리 같이 쉬어요", "편하게 해 주세요.", "난 지금 행복해요" 조르바는 지금 정말 행복하려나. 지금이 있기는 한가.
이 마음은 대체 뭘까.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대체 뭘까.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후회나 미련은 아주 부분적인 느낌이다. 그건 아무래도 소용없는 일이니까. 앞 날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도 아니다. 조르바가 없어도 난 씩씩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사랑할 것들이 무수히 많으니까. 그런데, 그러니까. 이 마음은 슬픔 자체다. 의미 없이. 그냥 슬퍼야 하는 것도 사람의 일이구나.
노인들의 마음엔 여러 개의 무덤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게 노인을,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땐 무덤이 고개 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구멍이 숭덩숭덩 파인 자리들을 생각한다. 그 구덩이에 자주, 종종 빠지게 되는 게 죽음을 경험하는 일일까.
정말 부끄러운 말이지만, 어제야 비로소 '금요일에 돌아오렴'을 읽었다. 책장 가장 아랫칸에서 먼지를 호호 털어 꺼냈다. 몇 년 동안 용기가 나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올 해는 뭐랄까.. 내게 자격이 주어진 것만 같았다. 이 말은 정말 이상하다. 슬플 자격이라. 공감할 자격이라. 이상한 말이긴 한데 이 말은 사실이다. 이제야 비로소 그 슬픔의 바깥에 있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유가족이라고 말할 때, 없음을 말할 때, 빈자리를 말할 때. 비로소 나는 그 자리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전의 내가 슬픔을 모르는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는 구덩이를 감당할 수 있은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봄을 느낄 새도 없이 폴짝 구덩이에 빠지게 되는 것은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아직 슬플 것이 너무 많아서. 그건 사람의 일이라서. 그렇지만 슬픔과 동시에 아마도 동시에 내일도 봄이 오겠지. 봄은 봄의 일을 하는거라서.
세월이 가면 슬픔은 사그라든다고?’ 아니었다. 슬픔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슬픔은 사라지는 단어가 아니다. 슬픔은 오겠다는 기별도 없이 제멋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수시로 온다. 눈을 감아도 온다. 슬픔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눈꺼풀은 없다. 슬픔은 거친 밤을 기진맥진 통과하게 만든다. 슬픔은 자신을 진지하게 대하라 요구하는 손님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슬픔이야말로 딸에게서 엄마가 받은 유산인걸.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슬픔도 눈물처럼 어디론가는 흘러가야 한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중에서
오랜만에 일요일다운 일요일을 보냈다.
전 날 햇빛에 절은 몸에 생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대서 잔뜩 취해버렸었는데, 아침에 숙취도 없이 깔끔하게 눈이 떠졌다. 해야하는 일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으니 오랫만에 집안일이 하고 싶었다. 너저분해진 주방을 정리하고 일주일동안 쌓아둔 빨래를 돌렸다. 이제는 입지 못할 니트들을 정리하고 얇지 않은 반팔들을 꺼내 차례대로 세탁기를 돌렸다. 고양이들 화장실을 정리하고 밥을 주고 화분을 옮겨 흠뻑 물을 주었는데도 오전이었다. 웅이가 사온 국밥으로 해장을 하고나니 다시 눕고 싶어졌다. '얼른 누워 곰이 되자'고 웅이를 끌어들여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파친코를 보면서 꾸벅꾸벅 졸았다.
졸고 일어나니 1시. 거실 창문 밖에 있는 스티로폼 화분에 어디서 날아온 냉이꽃이 막 자라고 있는 것이 신경쓰였다. 봄이 되었으니 뭐라도 심자는 생각에 가볍게 입고 시장까지 걸어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장이 조금 더 크게 열렸다. 고수와 양상추 모종을 조금 사고, 가지, 토마토, 마늘을 샀다. 새로운 화분을 사는 건 조금 무서웠지만 채소마스터가 될 때 필요할 것 같아 로즈마리 화분도 하나 샀다. 커피를 한 잔 사서 강변을 따라 터덜터덜 걸어왔다. 장을 본 재룔 얼른 가서 샐러드를 해먹어야지. 그런데 세상이 언제 이렇게 연두색이 되었담.
지난 주에 서울에 갔다가 큰 맘 먹고 두껍고 큰 요리책을 샀다. 요리 레시피를 검색하면 된다는 생각에 요리책은 어쩐지 잘 사게 되지 않았는데 막상 사고 나니 무지 설렜다. 요리책을 산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긴하지만 무엇보다 천천히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손이 빠르기도 하고 성격이 급해서 여러가지를 빠르게 뚝딱뚝딱 하는 편이지만 그래서인지 자주 하게 되는 요리는 소스를 잔뜩 넣고 재료를 때려넣어 볶거나 끓이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늘 섬세한 맛을 내는데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채소마스터라니. 천천히 정성스럽게 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닌가.
장을 봐온 토마토와 가지, 고수로 '마라 토마토 무침'과 '구운 가지 샐러드'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별로 섬세하게 맛있지 않았다. 두가지 요리를 동시에 하니까 머릿 속에 요리의 순서들이 빠르게 굴러가고, 그러면 뭔가 천천히 하기가 어려울 것 같고.. 그렇다고 한가지를 해놓고 다른 한가지를 하자니 식을 것 같고..(샐러드는 식어도 되는데) 이래저래 생각들을 많이 하다보니까 손이 저절로 빨라지고 마음이 급해지고... 오이를 절이는 동안에 가지에 밀가루를 묻히자, 아니 얼른 마늘을 편 썰어서 오일을 만들까? 를 머릿 속에서 쉴 새 없이 생각하다가 결국엔 화자오 오일을 조금 태웠고, 가지 샐러드 소스가 느끼해졌다. 책에서 시키는대로 다 했는데 마스터의 길은 멀고 험한 일이었다.
조금 느끼하고 애매하게 마라맛이 나는 토마토 무침과 샐러드를 먹고 웅이네 농장 근처에 카페에 갔다. 웅이가 일하는 걸 기다리는 동안 잠깐 호철이 선물해준 고양이와 채소스프를 읽었다. 매끼니 고기를 찾던 사람의 채식생활을 기록한 에세이인데 낄낄대며 읽었다. 나도 작년에 잠깐 누군가를 따라서 자연식물식을 며칠 먹고 인스타에 올린 적이 있는데 자주 만나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베지테리언인줄 아는 경우가 꽤 있었다. 고기를 먹어도 되냐고 물어봐주기도 했고, 적극적으로 고기를 먹자고 말하기도 민망스러웠다. 그래도 이렇게 자꾸 선언을 해야 고기에서 멀어지겠구나 싶었다.
책에는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채소들의 최상의 맛을 끌어올리는 여러가지 팁을 말해주었는데, 나에게도 채소마스터가 아니어도 일상을 그럭저럭 괜찮은 날들로 만들어주는 몇 가지 팁이 있다. 산책, 시장가기, 요리하기, 좋아하는 책읽기.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세상에 해롭지 않은 일 하기. 일단은 채소마스터를 궁리하는 좋은 일요일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해보아야겠다.
'마이크로 비거니즘' 이라는 용어가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가능한 범주에서 비거니즘을 실천한다는 의미다. 집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에 고기 국물은 먹고, 집에서는 생선을 먹지 않지만 밖에서는 생선을 먹는게 무슨 비건이냐고 누군가는 나의 식생활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나의 마이크로 비거니즘. 세상에 스트레스 받을 거리는 넘치니까 식생활로 너무 자신을 옭아매지 않기로 했다. 비웃어라.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살 테니.
<고양이와 채소수프, 이보람, 왼쪽 주머니> 중
쉴 수 있을 때 으라차차 쉬어버려야 하기에, 시내랑 부지런히 점심을 챙겨 먹고 두 시에 사무실에서 나왔다. 같이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집으로 가는 길에 햇빛이 따가웠다. 갑자기 수영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주말에 여름옷을 정리하다 수영복을 꺼내놓은 것이 생각이 나, 집에 잠깐 들러 옷을 챙기고 동네 수영장으로 갔다.(동네 범위가 너그러운 편)
마침 거리두기가 끝나서 예약을 하지 않아도 자유수영을 할 수 있는 마침맞은 날이었다. 4시의 수영장은 정말이지... 딱 알맞았다. 자유수영 레일에 사람도 나 포함 3명. 어떻게 움직여도 닿거나 치이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수영장에 온 게 얼마만인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수영장에 가고 싶은데 수영모자가 없어서 플로핏햇을 쓰고 수구를 했던 꿈을 꾼 이후로도 단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몸에 닿는 물이 생각보다 차가웠고 쾌적했고 일렁일렁. 너무 오랜만에 하는 거라 까먹지는 않았을까.
처음 수영을 배운 건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때이다. 친구들은 잘 믿지 않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한강에서 수영을 하곤 했다. 계속 노량진 근처에 살았으니 아마 용산 다리 밑 어딘가 고수부지였겠고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동생하고 같이 타고 모래밭이 있는 강가에 갔다. 아버지는 겨드랑이에 나와 내 동생을 끼고 헤엄을 쳤고 내가 물에서 곧 잘 놀자 학교에서 하는 저렴한 수영교실에 등록을 해준 것이다.
오래된 학교라 운동장 옆에 큰 수영장이 있었다.(그렇지만 저학년 때의 기억이라 지금 보면 작을 수도..) 지금 떠올려도 쨍한 파란색 페인트가 벗겨진 듯 발라져 있었고 언제나 낙엽이나 페인트 찌꺼기가 둥둥 떠다니는 지저분한 수영장이었다. 학교 끝나고 방과 후 시간에 수영을 배웠는데, 선생님도 함께 했던 친구들도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쨌든 물을 파란색 수영장 물을 가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운동 신경이 좋은 터라 학교에서 수영대회가 열리면 배영과 자유형으로 상도 타곤 했는데, 접영을 채 배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어 아쉬웠다. 그래서 여전히 수영은 완벽하게 마스터하진 못했지만, 어쩐지 자신 있는 운동으로 남아있다.
어쨌든 바다수영 말고 정말 오랜만에 수영장에서 하는 수영이었다. 자유형을 하는데 왼쪽 어깨가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아 신경이 쓰였다. 어깨를 신경 쓰기 시작하면 호흡이 뭔가 어색해졌다.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갑자기 숨을 쉬는 게 무척 어려워진다. 몸이 기울진 않았나? 발이 너무 가라앉아있나? 물 안에서 이렇게 숨을 참고 있는 것이 맞나? 누가 보면 그냥 손을 휘젓는 것처럼 보이는 거 아냐? 응? 누가 본다고 나를?
내 레일에는 고작 두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한 명은 60대 정도로 추정하는 여성분으로 내가 온 순간부터 쉴 새 없이 20분째 자유형과 배영을 번갈아가면서 하고 있다. 나도 왜인지 덩달아 몇 번 스퍼트를 맞추다가 포기해버렸다. 한 명은 내 또래 정도 되는 여성으로 한 번 출발할 때마다 온갖 심호흡을 하고 전장에 나가는 것처럼 레일을 나선다. 그리고 정말 무기를 젓는 것처럼 팔을 꼿꼿하게 휘두른다. 그리고 겨우 레일 끝에 도착해서는 몇 백 미터를 뛴 사람처럼 얼굴이 빨개져서는 있다. 일렁일렁. 이 순간에 나는 어떤 수영을 할까.
문득 카모메 식당에서 홀로 수영하는 주인공이 떠올랐다. 스을렁 스을렁 느리게 느리게 가보자. 수영대회 수상자 출신이라 천천히 하는 수영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말이야. '느으리게'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호흡에 신경 쓰일 때 호흡이 아닌 발가락을 생각하면서. 팔이 어색할 땐 물속에 떠 나니는 코딱지를 생각하면서. 내 몸의 바깥을 생각하면서 느리게. 사과나무를 나올 때쯤 시내가 틀었던, 성철이가 불렀던 노래를 머릿속에서 부르면서.
아아 기적이 일어나서 금방 마법처럼 행복이 찾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따금은 지름길로 가고파 그건 안 될까
고생은 싫어 그렇지만 음 어쩔 수 없지 뭐
지난 주엔 드디어 코로나에 걸렸다. 이틀 앓고 나흘 빈둥거렸다. 격리하는동안 영화 한 편, 책을 한 권 봤는데 우연히 '유언'과 연결되어 있다. 비마이너에서 기획한 책<유언을 만난 세계>와 드니 빌뢰브의 <그을린 사랑>이다.
<유언을 만난 세계>는 8명의 장애해방열사들의 삶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살아있는동안 세상의 바깥에서, 자신의 몸과 해방을 위해 싸우고 뜨겁게 혹은 외롭게 떠난 자리에 놓인 유서다. 그들이 삶이 남긴 것들이 유언일 수 밖에 없는 건 그 삶을 실현하고 이어받는 사람들이 남았기 때문이다.
유서란 죽은 자가 펜을 내려놓았을 때 완성되는 게 아니다. 유서는 산 자들이 그것을 음미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타자가 죽은 자의 의지 속에서 유산의 향방을 해석하려 골몰할 때, 그제야 유서는 단순한 문자의 나열을 넘어선다. 누구나 그렇듯, 죽은 자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열사들은 산 자들의 응답을 통해, 그 응답에 따라 사후의 삶을 꾸려간다.
_유언을 만난 세계, 오월의 봄
그런데 유언을 이어나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멈추고 읽는 것'이다. 움직이면서 묵념하지 않는 것처럼 일단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앞에 멈추어 서야한다.
그러나 유서를 읽는다는 건 어느 장소에서나, 어느 때에서나 가능한 게 아니다. 새로운 이미지들로 매 순간 채워지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시대의 유혹에 매 순간 휩쓸려 갈 수밖에 없다면, 과거는 결코 산 자들에게 대화의 장을 열어주지 않는다. 유서와의 마주침은 산 자들이 죽은 자의 흔적이 새겨진 과거 앞에 멈출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어쩌면 모든 애도는 일종의 '멈춤'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상실에 대한 고통을 극복하고 계속 삶이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산 자들은 우선 그 앞에서 멈춰서야 한다. 아무런 멈춤의 과정없이 되찾은 일상이란 결코 애도의 결과물이 아니다. 살아서 기억될 자격이 없기에 죽어서 망각될 자격도 없는 변방의 존재들이 좀처럼 애도되지 않는 것은, 이 사회가 그들 앞에서 멈출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세계는, 역사는 더 이상 이대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산 자들은 열사 앞에서 멈춤과 동시에, 이 야만의 시대 자체를 멈출 것을 재촉받는다.
_유언을 만난 세계, 오월의 봄
멈춤을 불러내는 이 유언의 말은, 영화 <그을린 사랑>의 유언과 닮았다. 영화는 엄마가 남긴 유언을 좇아 감춰져 있던 엄마의 삶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영화 마지막이 되서야 그들은 유언의 숙제를 풀게 되며 평생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엄마의 증오와 분노를 이해하게 한다. 마침내 분노의 흐름이 끊어진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너희 이야기의 시작은 약속이란다.
분노의 흐름을 끊어내는 약속.
덕분에 마침내 약속을 지켜냈구나.
흐름은 끊어진 거야.
너희를 달랠 시간을 드디어 갖게 되었어.
자장가를 부르며 위로해줄 시간은
함께 있다는 건 멋진 거란다.
너희를 사랑한다.
_그을린사랑, 드니 빌뢰브
함께 있다는 건 멋진 거란다.
어떤 유언은, 어떤 삶은, 세상을 멈추고 다른 세상을 연다. '다른 세상을 만나는 40일의 순례'를 마친 봄바람 순례단의 출발 선언문엔 이런 글이 있다. "다른 세상을, 그리고 먼저 온 미래를, 지금 여기서 살며 투쟁하는 사람들 속에서 찾고자 한다"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서러운 몸으로도 자신의 고통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이다. 미움을 끊고, '나 하나 잘 살면 되지, 나 하나 참으면 되지'라는 생각을 멈추고. 피해자의 몸으로, 억울한 몸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너무 많은 것을 빚지고 산다. 그 부끄러움 앞에 자꾸 멈춰서게 되는 봄이었다.
노동의 존엄을 찾는 사람들,
차별을 넘어 온전한 나 자신을 찾는 사람들,
인간과 자연의 연결을 회복하려는 사람들,
경제 성장이 아니라 삶의 성숙을 일구는 사람들,
전쟁연습이 아니라 평화를 연습하는 사람들,
기후위기 현장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투쟁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고 멈추지 말고 만나 보자고,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가 권력을 잡던, 대리 권력에 우리의 힘을 맡겨 두고 요청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 각자가 삶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힘을 스스로 실천하며 다른 세상을 선언하려 합니다.
_봄바람 순례단 출발 선언문 중
6월까지 기다릴 수 없어 2022년 상반기 결산!
1-2월을 새해로 인정하기엔 마음에 준비가 안 되어있고, 4월이 올 때까지는 뭔가 새로운 마음을 가질락말락. 그러다가 5월이 되면 어? 벌써 5월이야? 하면서 한 해를 시작하는 느낌이 본격적으로 든달까. 그래서 이 시기는 까먹기 십상이기에 2022년 상반기 키워드 결산!
#조르바
조르바가 아프기 시작하고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 다행스럽게도 그 일주일의 시간과 감정들이 잘 기록되어있다. 조르바 사진도 온갖 드라이브와 SNS에 잔뜩있어서 매일매일 과거 사진으로 올라온다. 이렇게 기록이 넘치는 시대에 없다는 건 대체 뭘까. 이 지구에서 다른 별로 조르바를 빌려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르바가 가르쳐준 사랑, 조르바가 가르쳐준 슬픔이 내 몸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봄이 훌쩍 지나가고 있는데 아직도 조르바의 유골을 나무에 뿌려주지 못했다. 이러다 뼈까지 썩혀버리겠네!
#활동
여성의 날 행사-세월호 슬픈날기쁜날-봄바람길동무-혁명할머니의 밤까지. 어쩌다보니 한 달에 한 번꼴로 행사들을 기획하거나 연대현장에 가게 되었다. 항상 별 고민없이, 작은 규모라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일단 일을 벌이고 마는데, 그래도 아주 쪼오끔씩 새로운 혁명 동지들을 만날 때마다 정말 기쁘다! 여전히 서툴지만 호두즈 친구들하고 책고 글 쓰는 연습을 하는 것도 무우척 좋고 자랑스럽다.
이래저래 애매해서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여겨본 적이 없지만, 지역에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졌을 때 시간과 몸을 축내서 일을 만들거나 참견해왔다. 참을 수가 없어서, 혹은 재미있어서. 나는 프로(?)활동가가 아니니까 할 수 있는만큼만 한다는 마음으로 해왔다면 요새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할 수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과하게 의미부여하자는 게 아니라, '아유 저 그럼 사람아니에요' 하면서 발 빼는 모습이 어느 순간 꼴보기 싫다고 느껴졌달가. 내가 가진 힘을 인식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 정도는 또렷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사장
어쩌다 사과나무 대표가 되었다. 올 초부터 계약을 핑계로 대표자 변경 얘기가 시작되었고 이런저런 소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3월에 사과나무를 법인화하고 사장님을 훨훨 날려보내주었다.... 직원으로 월급받던 호시절이 그립다, 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과나무는 정말이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도 새로 정돈하게 될 점 하나를 찍어둔 느낌. 운영에서 우리 몫으로 두지 않았던 것들을 시내와 챙겨 하고 있다. 좋은 것은 '저 대표아니에요'라는 소리를 이제 안해도 된다는거랑, '대표님 바꿔주세요', '전데요' 하는 일 정도이려나. 시내랑 같이 있으니까 별 부담은 없지만 자꾸 욕심이 생긴다. 잘 된 일인가. 일 하는 사람도 더 있었으면 좋겠고, 그니까 돈 욕심, 일 욕심도 생긴다. 일할 동기는 자꾸 늘어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회사로, 좋은 일들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그런건 어디서 배우는거지.
#돌봄
천안에서 출퇴근을 할 때는 그래도 기본적인 집안일들을 꽤 성실히 했는데, 안성으로 이사를 오고난 후에는 그마저도 다 놓아버렸다. 청소기도 잘 안 돌리고 설거지도 바로바로 안하게 된다. 특히 건조기가 생기고 더 게을러졌다. 일을 많이 벌려놔서 집에서도 일을 하게 되고, 그러고보니 제일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것이 살림과 돌봄, 환대라는 걸 알게 됐다. 작년에 겨우 빼놓았던 살도 다시 찌고 운동도 안하게 된다. 일!! 이까짓게 뭐라고 나의 소중한 살림과 공부의 시간, 환대의 시간을 미루는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공룡의 친구들을 떠올린다. 이 사람들은 정말 말도 안되게 바쁜 사람들 같은데, 그 와중에도 환대의 시간, 살림의 시간을 놓지 않는다. 일과 환대를 공평하게 나눈다.
책방을 운영할 때 돈을 벌어야하니까 디자인 외주가 거의 주업이었다. 집중이 필요한 작업을 한참 하고 있을 때, 손님이 오는 종소리가 울리는 것이 진짜 끔찍하게 싫었다. 그 혼란스러운 감정이 오래도록 남아있어서 언제나 바빠질 때마다 그런 시간들이 올까봐 경계를 하게 된다. 바빠도 가볍게 산책해야지. 밥을 지어야지. 친구
들의 안부를 물어야지.
꿈에서 나는 버스를 운전한다. 익숙하고도 낯선 골목을 쫓기며 헤매다, 버스를 하나 발견한다. 형체는 보이지 않지만 그게 버스라는 것만 알고 올라탄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운전을 해야한다는 걸 안다. 버스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몇 타고 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별로 상관이 없다. 나는 2종 오토인데, 버스는 스틱이다. '대형면허가 없는데 괜찮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운전석을 찾는다. 운전석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앞 유리창에 아주 가까이 있다. 장난감 같은 버튼이 많고 조그마한 핸들이 달렸다. 내 몸을 구겨 넣으면 앉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나머지 하나는 유리창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보통의 운전석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보통의 운전석에 앉는다. 자리에 앉으니 막상 몸에 맞지 않는다. 발을 길게 뻗어야 발가락 끝에 겨우 페달이 밟힌다. 스틱은 왜인지 천장 높이 달려있다. 나는 온 몸을 길게 늘린 채로 운전한다. 버스에 비해 내가 키가 작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태영이한테 스틱을 배워두길 잘했지.' 짧은 기억을 더듬고 어설프게 운전을 해낸다. 누가 나 대신 운전을 한다고 할까봐 경계한다. 좁은 골목을 온통 헤집으며 다니는데 버스의 공간감을 가늠할 수가 없다. 반드시 옆 차에, 간판에, 자전거에 부딪쳤을거라고 확신한다. 어딘가 부딪친 것 같은데 충격은 직접 닿지 않는다. 뒤에 앉는 몇 명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안전하기를 바라면서 차는 어딘가에 도착한다. 종착지는 골목 안의 허름한 가게 앞. 내리고 보니 내가 몰아 온 버스는 유치원 버스 같은 작은 것. 그제서야 장난감같은 조그마한 운전석을 이해하면서 꿈에서 깬다.
오늘 아침의 꿈이다. 기록을 하다보니 처음 꾼 꿈이 아니란 게 느껴진다. 꿈에서 나는 자주 불안하다. 반복적으로 꾸는 꿈들의 대부분의 레파토리는 신체의 무언가가 몸을 빠져나가는 감각과 관련있다. 이가 한 개씩 빠지다 못해 후두둑 뱉어내는 꿈. 이를 핥고 밀어내는 혀의 감각들이 너무 생생해서 '꿈일거야 걱정마' 하며 깨었났는데, 또 이가 빠지면서 '현실이구나' 하며 괴로워하는 꿈. 꿈인지 아닌지 분별하려하는 불안한 마음. 목에 머리카락이 걸려서 하나를 길어 올렸는데 줄줄이 머리카락이 매생이처럼 걸려 올라오는 느낌. 목에 머리카락의 결이 한올한올 고스란히 감각되며 식도와 연결된 내장들이 머리카락을 따라 올라올까봐 불안한 꿈.
꿈에서 갓 깨어나면 몸에 오소소한 감각들이 남아 있다. 팔을 쓰다듬으며 꿈에서 느낀 감정들을 되내인다. 그게 꿈이라서. 꿈에서 나는 괴로워서 안심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숨긴 것들을, 적어도 나는 나에게 들키고 있구나.
사는 건 다 그렇지 않나. 그런 말을 할 때 나는 무기력하고 씩씩하다. 그 말 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지 않나. 말들을 꿀꺽 삼키면 목구멍에 개미굴만한 구멍들이 집을 짓는다.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은 어딘가에 툭하고 숨어버리고, 그 길을 꿈에 함부로 맡긴다. 그러면 가끔 꿈에서 후드득. 목구멍을 따라 끄집어내면서. 꿈이 나를 지킨다. 꿈의 나는 분하고 두렵고 억울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마음들을 꿈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 편으로는,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바라면서.
1.
시장에 갔다. 간판을 구경하며 지나가는데 좁은 골목길에 쌩하고 달려오다 자전거가 핸드폰과 지갑을 든 내 손을 툭하고 치고 갔다. 아파서 소리를 지르곤 떨어진 물건을 주으며 운전자를 노려봤다. 자전거를 멈춰 세우지도 않고 뒤돌아보더니 고개를 까딱하곤 그냥 쌩하니 지나갔다. 당장 달려가서 뒷바퀴를 차고 욕을 할까, 소리를 질러 면박을 줄까 생각을 하다 그만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손목을 쓰담으며 마음을 달래고, 국수를 먹고 다니 금새 화난 마음이 사라졌다. 쉬운 분노였다.
'나의 해방일지'가 끝났다. 즐겁게 봤지만, 사실은 잘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다. 왜 이렇게 속을 끓이면서 살아낼까. 왜 이렇게 다들 화가 나 있는걸까.
미정은 자신의 돈을 갚지 않은 전 남친을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그가 돈을 갚으면 미워할 존재가 사라질까 두렵다. 한편으론 미운 사람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버티고 서 있는 자기 자신 또한 미워한다. 화를 내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마지막 화에 미정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 전 남친에게 작은 도움을 주게 된다. 숙고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럽고 짧은 대접을 하고난 후 미정은 비로소 화난 자신에게서 벗어난다. 나도 베풀 수 있는 사람이구나.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미정의 해방은 아마도, 그 순간 시작된다.
사주에 화가 없어서 그런지, 나는 마음에 사소한 불똥이 하나 떨어지면 몹시 괴롭다. 화는 다루기 힘든 감정이어서 일단 맞닥드리게 되면 멈추고, 화를 내면 벌어지게 될 일들을 상상한다. 화를 내고 사과를 받으면 마음이 후련해질까? 화는 밖으로 활활 태우고 나면 사라지는건가? 하지만 오랫동안 나의 괴로운 기억들은 밖으로 화를 뿜어낸 날들 속에 있다. 몇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그으름. 아무래도 화는 밖으로 끄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마음 속에서 타오르는 불씨를 끄는 방법은 사실 화를 내거나, 용서를 하는 방법뿐이다. 화를 낼 수 있는 순간을 지나치고 나면, 용서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창희의 말처럼, 나는 내가 말을 삼킬 때마다 단단한 사람이 된다.
2.
언젠가 화가 많이 났던 시절에. 뱉는 것이라곤 온통 욕과 화와 미움밖에 없는 시간동안 나의 해방을 도와주었던 고마운 친구들이 있다. 몰캉몰캉한 개불을 매일같이 먹어주던 다정한 친구들. 추앙까진 아녀도, 내가 어떤 존재여도 나를 받아들여줬던 고마운 친구들.
그 친구들과 한 계절동안 글을 썼다. 평소에는 자주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않지만 글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연결된 기분이었다. 자꾸 답장을 쓰고 싶었다. 나는 글을 쓰는 시절 사실, 자주 슬프고 화가났다. 온통 힘든 시절의 기록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힘들지 않았을 때도 있었나.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결말. 우리의 이야기가 결국엔 다정으로 이겨내는 이야기였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