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굉장히 평범한 일상.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사무실에만 있었던 것이 얼마만인지.
낮엔 가혜가 추천한 그리스식당에 갔다. 음식을 기다리며 가게 분위기와 산토리니 벽화를 보고 있는데 문득 그리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를 좋아하면서, 게다가 조르바의 고향인데 나는 왜 처음 그리스에 가고 싶단 생각을 한거지? 오후엔 구글맵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를 검색해보았다. 동남아밖으로 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데, 지도에서조차 경계를 넘어간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몽골도 그리그리 갔으니 그리스도 그리그리 가게 되지 않을까. 이런 막연한 생각에, 구석구석 작은 바닷가들의 로드뷰를 따라다니며 잠시 먼 여행. 기다려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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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부산스러운 상황에서 한 작업이 마무리되어 좋다!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공정 중 하나는 인쇄소에 보내기 전에 파일의 사양을 최종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1mm단위를 살피거나, 인쇄에 맞게끔 파일을 다듬는 일. 보통은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주기 편한 방식으로 파일을 보내면서 확인을 받기 때문에 인쇄용 파일로 만드는 작업도 따로 손이 필요한 일이다. 따지고보면 가장 중요한 일이라서, 일이 끝나는 것은 좋지만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한다는 거부감이 있어 복잡한 맘이 든다. 인쇄소에서 다시 전화올까봐 가슴이 두군두군.
낮엔 천안시도시재생센터에서 사과나무 인터뷰를 나왔다. 사과나무로는 처음 해보는 인터뷰인데, '사회활동'카테고리에 소개가 되어 기분이 좋았다. 여전히 정리하기 어렵긴 하지만 활동과 작업들, 방향을 계속 확인하고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글만 잘 나오면 좋으련만. 그리고 최실장의 갑작스런 대표등극!
여튼 인터뷰에서 종종 몽상해오던 것들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몸으로 훅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살며 처음으로 가져보는 가장 원대하고 물질적인 꿈(?)이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일층엔 혜비니가 원하는 식당, 오픈된 공간을 마련하고 이층엔 디자인스튜디오, 책과 관련된 공간 뭐 이런거~~ 나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하고싶은 것들을 지어내고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갈 것 같은데, 그 간에 이 작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면 물리적으로 모아보고 싶다는 생각? 을 처음으로 해본 것 같다.
무튼 하루종일 기침을 하느라 기운을 쏙 뺐다. 집에 오자마자 너무 배고파서 배를 반개 깎아먹고 씻고 쓰러져서 한시간 정도 잤는데 자고 일어나니 신물이 올라와 너무 쓰리다. 어쩔 수 없이 냉장고에 있는 걸 꺼내먹고 잠깐 침대에서 뒹굴. 읽어야하는 책은 쌓여있는데 갑자기 대성당이 읽고 싶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김연수를 통해서 읽게 된 책인데, 책에 실린 다른 단편보단 역시 대성당을 계속계속 읽게 된다. 읽고 나면 다시 앞으로 돌려 또 읽고. 무엇이 좋은지 정확히는 말할 수 없지만.. 낯섬이 만들어내는 실체없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구체적인 몸으로 만나지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보는게 흥미롭다. 대화와 말(이사람아!허허)을 거쳐 마침내 손을 잡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 그러면서 눈을 꼭 감고 다시 실체없는 낯설게 만들어 버리는 일들. 그리스를 상상하는거와 비슷한 아름다움이랄까?ㅋㅋ
그나저나 이 책도 어디 여행가서 만난 책방에서 산 것 같은데(문우당인가?) 리디자인한 양장이라 소중했는지 비닐에 쌓여서 도장을 찍지 못했다. 힝 앞으론 도장 꼭 챙겨 소산.....
아무튼 술마시고 귀가하는 웅이를 마중하러 짧은 산책을 나갔다. 마치 몽골에서 온 것 같은 넓은 바람이 불었다. 어제 오늘은 오지은의 노래를 반복.
아! 며칠사이 동네가 갑자기 깨끗해졌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오늘 산책하며 그 이유를 알아버렸다. 집에서 큰길로 나가려면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야하고,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아주 더러운 반사경이 하나 있었다. 그냥 둥근 조형물 그 자체라고 봐도 될만큼 거울의 기능을 하나도 못하는 것. 그런데 그게 아주 깨끗히 반짝 반짝 닦여져 있었고(바꾼건가?) 그래서 훤히 동네가 깨끗해졌다고 느낀 것이었다.
그래서 은유하는 사람인 나는. 내 마음 속에 닦이지 않은 거울, 스스로 더러워서 비추지 못하는 거울은 무엇인가를 고민...... 하려다가 괜히 법정스님같이 느껴져서 그만두기로 했다. 우리동네가 깨끗해졌으면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