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돌_10.09

by 소산공원

집에 와서 일을 하려 했지만 일기가 이겨버렸다. 여운이 가시기 전에.


연휴에 일하는 게 마음에 놓일만큼 마음이 초조하다. 그래도 주말에 일을 하면 전화도, 메시지도 없이 방해받지 않고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작업을 해서 뿌듯한 채로 온민박 야간개장.


어제 보름을 하루 앞둔 달이 커다랗고 밝아서 오늘의 달을 내심 기대했지만, 아침부터 비가 왔다. 조금은 기대를 내려놓고 도착했던 온민박에 들어서자마자 심장 바운스....... 카페 온양으로 가기 전 전통 결혼을 하는 무대터에 노란 나무 조명 주렁주렁! 언제나 설레게 하던 그 조명! 청년허브에 갔다가 설치된 그 조명을 보고, 단대 호수에 그 조명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섬잔치를 기획했던. 줄 전구를 사면 되는걸 돈 아낀다고 굳이 알전구와 전선을 사서 일일이 만들던 그 줄 조명이 아름답게 주렁주렁.

이것을 보고(왼) 요것을(오른)
갑자기 그리운 성대한 섬잔치...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카페 옆 체험공간에 갔는데, 세상에, 하얀 종이로 만들어낸 오브제들이 다소곳하니 적절한 장소에 전시되어있다. <한지_시대와 생활, 사물과 재료>. 하얀 한지를 보면 내 이름에 들어가는 '소(素)'자가 생각나는데 이 글자는 마주할 때마다 다르게 읽힌다. 어떤 날엔 하얗게, 어떤 날엔 시시하게, 어떤 날엔 소박하게, 어떤 날엔 널리 차분하게 읽히는 글자인데, 오늘의 전시를 보면서 느낀 글자는 하얀 바탕 그 자체. 모든 것이 꾸밈없이 잘 어우러지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뭐든 너무 귀엽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친절하신 안내 선생님께서 워크숍을 못한 아쉬움을 엽서로 달래주셨다.




다시 한번 마음을 부여잡고 바로 옆 구정아트센터로. <일상의 기록>. 영혼, 돌, 소리, 숯, 고인돌, 물, 돌, 곡교천, 이끼, 네 잎 클로버, 잡초. 하나도 빠짐없이 좋아하는 단어들을 노랑과 검정 안에. 오른쪽 공간에는 <연결점>이란 작품이 걸려있었는데, 인스타에서 이 연결 사이를 요리조리 다니는 영상을 보아 그리해보았다. 셋이 요리조리 다니니 오갈 때마다 구심점의 모양이 달라졌다.


안쪽 공간을 들어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바깥 모양과 안의 모양이 이렇게나 닮은 건물은 처음인 듯했다. 건축은 잘 모르지만, 곡선의 빈틈없음이랄까? 일러스트에서 펜툴을 만지다 보면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곡선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느끼는데, 심지어 건물을 만들면서도 성기는 부분 없이 해내다니... 나선 계단의 각은 또 모야 정말,,,, 안에 앞으로 봐도 옆으로 봐도 대각선으로 봐도 일렬을 세운 전시까지. 뭐 이런 천재들이 다 있남,,,, 이런 생각을 하면서 또 두근 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왔는데..!



뭐라 뭐라고 적혀있지만.. 그냥 김뜻돌의 이름뜻이 생각났다. 돌하나에도 뜻이있다...



비 오는 밤, 나무 조명, 젖은 숲길을 걷는 것은 정말이지, 삐져나가는 환희를 감출 수가 없었다. 배롱나무와 장승을 보면 시내 생각이 나고.. 히히. 조명을 따라 너와집으로 갔는데 여기서부터는 이제 세상에 이걸 보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생각나는 단 한 사람...

너와집에선 <나무 틈 사이>라는 전시. 그래, 너와집에 사는 일은 나무 틈에 사는 일이겠구나. 나무 틈 사이로 바람이 불고, 바람에 날리는 비단에 대나무 잎을 닮은, 버드나무 잎을 닮은, 세상 모든 휘날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닮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고 바람이 부는 때마다 그것들이 흩날리는 게... 시....발........ 이것은 내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네. 옛날 옛날 할머니 집에서 나던 냄새, 아궁이, 흙벽과 이런 아름다움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한 큐레이터분들, 박주영 작가님 저는 악몽을 꾸어도 좋으니 오늘 밤의 평안을 모두 가져가셨으면 해요.





빗방울도, 빛방울도, 심지어 의도가 아니었을 풍선초도 씨앗도, 방울방울의 절정인 순간. 바람이, 비가, 구름이 만들어낸 밤! 실패 실패 실패 실패, 를 연달아 보았지만 마음이 하나도 접어지지 않았던 좋은 순간들





돌아오는 길엔 또 느낌의 공동체를 나누곤. 만춘 얘기를 하면서 갑자기 그 순간처럼 두근거려서 그 붉은 조명이 그리워졌다. 풍경을 가지고 산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구나. 봄에 만춘을, 겨울엔 몽도를 가야지. 주말에 일해도 하나도 억울하지 않게 막 채워야지. 미안할 정도로 좋은 풍경을 담고, 나누어야지!








ps. 아! 일희일비하기로 했으니, 슬픔도. 어제는 조르바와 니나의 생일이었나보다. 아침부터 조르바가 엄청 보고 싶더니만 n년 전 사진이 마구 드라이브에 올라와서 챙겨보고 또 한참을 울었네. 신부동에 길 고양이 카페에서 니나의 덤으로 데려온 너. 딱봐도 아프고 몬 생겼던 너. 데려오자마자 삼일은 숨어서 얼굴도 안 보여주던 너. 술 먹고 들어갔더니 죽어가던 너. 가난한 살림에 100만원 들여 살렸던 너. 그게 고마웠던지 사는 동안 평생 껌딱지였던 너. 너를 사랑하며 웃었던 순간이 더더더더 많은데, 왜 이렇게 너 아팠던 것만 생각이 나는지. 그런 날은 그냥마냥 울어제끼는 날. 그리고 어쩌면, 기쁜날과 슬픈날을 예고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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